1년 전 10월5일, 2012년 국정감사 첫날의 일이다. 19대 국회 첫 국감이라 초선 의원들의 마음은 설레었다. 강은희 새누리당 의원(비례 ·사진)의 심정도 그랬다. 그는 나름대로 많은 준비를 했다. 교육과학기술부(지금은 교육부와 미래창조과학부 일부로 나뉨)를 상대로 따져보려고 마련한 자료엔 △ 수도권-지역 교육 격차 △외국인 유학생 △교권침해와 학교폭력 등 다양한 주제가 담겨 있었다. 진로교육 등 교육 주제를 다룬 정책자료집도 내놨다.
모두 무용지물이 됐다. 대선을 두 달 앞둔 여야가 정수장학회를 놓고 초장부터 거세게 맞붙으면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최필립 당시 이사장의 증인채택 여부, 박근혜 당시 후보의 영향력 등이 관건이었다. 국감은 시작도 못하고 파행을 거듭했다. 공방 끝에 정회를 선언하기 두 차례, 의원들은 7시간 동안 교과부를 상대로 한마디 질문도 못했다. 강 의원은 속상했다. 의욕만큼 실망도 컸다. 울어버렸다.
국감을 앞두고 넘치는 의욕은 초 ·재선 의원들 사이에 흔히 목격된다. 사무실에선 밤새워 준비하고, 국감장에선 매섭게 질의한다. 국감이 끝나고 언론이나 시민단체가 꼽은 ‘국감 스타’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 크나큰 훈장이 된다. 강 의원도 올해는 울새 없이 열심이다.
‘다선’으로 ‘중진’이 되면 태도가 달라진다. 국감을 앞둔 의원들은 원래 정부 부처 ·기관에 숱한 자료를 요청하는 게 일반적이다. 여당 소속으로 5선인 ㄱ 의원은 올해 아무런 자료 요청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한 측근은 “국감 때마다 국회의원들한테 시달리면서 자료 준비하는 공무원들한테 미안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자료집용 목록으로는, 같은 상임위에서 가장 많은 자료를 요청한 같은 당 초선 의원의 것을 그대로 베끼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ㄱ 의원의 의도가 얼마나 순수할지는 견해차가 있겠지만, 자료 요구는 실제 구설의 원인이 된다. 지난해 한국은행 국감 뒤, 한 통신사는 “경제학자 출신인 한 야당 의원이 한국은행 측에 500쪽에 달하는 경제 전문서적을 번역해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익명의 취재원을 인용해 “의원의 품격을 떨어뜨렸다” “개인 편의를 도모했다는 의혹” 등의 지적도 덧붙여졌다.
지목된 ㄴ 의원 쪽 얘기는 달랐다. “지난해 여름 가계대출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약탈적 대출’이란 개념을 둘러싼 각종 이론을 아느냐고 한은에 질의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미국 정부기관 웹사이트에 자료가 많으니 참고하라고 했는데, 잘 안 됐다. 할 수 없이 한은에 그중에 의미 있는 걸 추려서 번역을 해오라고 요구했다. ㄴ 의원이야 이미 다 알고있는 내용이니, 본인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확인하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결국 한은이 제출한 분량은 30여 쪽이었다. 국감 전의 일인데, 누군지 기자에게 과장된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의원실과 부처 ·기관 사이엔 이런 알력이 항시 존재한다. 지난 10월17일 건설근로자공제회 국감에선 전직 이사장 ·감사의 업무추진비가 평일에 골프장 및 인근 식당에서 쓰였다고 이종훈 새누리당 의원이 의혹을 제기했다. 공제회 쪽에선 “여야 전·현직 보좌관들하고 썼다”는 ‘대담한’ 답변이 나왔다. ‘을’인 정부기관이 ‘갑’인 국회 보좌진에 대한 ‘접대 골프’를 까발린 셈이다.
여러모로 국감 기간에 기자들은 할 일이 많다. “ ○○부가 아무개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를 인용한 기사가 각 매체에서 쏟아진다. 여야 각 의원에게서 하루 수백 통의 전자우편이 날아와 지워도 지워도 우편함은 금세 다시 채워진다. 국민을 대표한 국회가 정부를 감사해 언론에 폭로하는, 가히 ‘민주주의의 명절’이다. 올해도 누가 눈물을 보이진 않을지, 짓궂게도 괜히 기다려진다.
김외현 oscar@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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