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1층 정론관은 언론사별로 공간을 구획해서 쓰는 ‘기자실’과 정치인들이 카메라 앞에 서서 회견을 하는 ‘기자회견장’을 통칭하는 말이다. 기자실에는 보통 ‘부스’(Booth)라고 부르는 언론사별 공간에 2~8명의 소속 기자들이 있다. 한쪽에 놓인 TV는 기자회견장이나 본회의장의 상황을 실시간 중계해준다. 기자회견이 있어도 대부분의 기자들은 직접 회견장까지 가지 않고, 부스 안에서 듣고 있다. 기자회견장에도 기자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매체 규모나 인원 등 여러 사정 탓에 부스 자리가 없는 경우다.
회견 자체가 별 의미 없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중요한 내용의 기자회견이면, 끝난 뒤 회견장 문 앞으로 기자들이 여기저기서 몰려든다. 이른바 ‘백브리핑’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백그라운드브리핑(Background Briefing)의 한국식 줄임말인 백브리핑은, 취재원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배경 및 구체 사항을 설명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오프더레코드’처럼 비보도를 전제로 한 건 아니어서 기사로 쓸 수는 있다. 마이크를 켜면 브리핑, 마이크를 끄면 백브리핑이라는 식으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지만, 마이크 유무와 관계없이 취재원이 기자들에게 익명을 요구하며 백브리핑이 이뤄지기도 한다.
취재원이 아예 인용하지 말라고 할 때도 있다.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 좀 하자는 의도가 깔린, 이른바 ‘딥백’(Deep Background의 준말)이다. 이를테면, 한 정부 부처 장관이 마이크를 켜고 브리핑을 한 뒤, 마이크를 끄고 백브리핑을 하고, 다시 단상에서 내려와 일부 기자들과 함께 ‘딥백브리핑’을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브리핑에서 한 얘기는 장관의 실명을 거론하고, 백브리핑에서 한 얘기는 ‘당국자’라고만 하고, 딥백브리핑에서 한 얘기는 “~로 알려졌다”는 식으로 기사에 등장한다. 공식 브리핑은 인터넷 등을 통해 공개되지만, 백브리핑과 딥백브리핑은 기자들에게만 공개된다.
최근 국회의 백브리핑에선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 기자회견장 바로 앞 복도에서 백브리핑을 하지만, 방송사 카메라가 이미 진을 치고 있을 때가 많다. 종편은 더러 생중계를 하기도 한다. 사진기자들도 가득이다. 매체 수가 늘어나 기자 수도 많아진데다 스마트폰 녹음 기능 사용도 보편화했다. 정치인들로선 말만 백브리핑이지, 브리핑 때와 전혀 다르지 않은 긴장감을 요구받는다. 기자 출신 신경민 민주당 의원은 당 대변인으로 영입된 2012년 초 “여기서부터는 딥백”을 요구한 적이 있었지만, 기자들은 사실상 무시했다.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은 인수위 시절 복도에서 “사진 찍지 말라”며 기자들과 몇 차례나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유정복 의원(전 안전행정부 장관)은 3월5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인천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사진). 그리고 관례대로 복도로 나와 백브리핑을 하면서 기자들에게 질문을 받았다. ‘결심을 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지역 연고성이 당내 다른 후보들보다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한 생각은?’ ‘경선에 참여할 것인가?’라는 3개의 질문 뒤, 한 기자가 “(장관직) 사의 표명할 때 대통령은 뭐라고 하시던가요?”라고 물었다. 유 의원은 잠시 머뭇거린 뒤, “대통령께서는 ‘인천이 국가적으로 중요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정말 능력 있는 사람이 (당선)됐으면 하는 게 (국민의) 바람일 것이다. 결단했으면 잘되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했다. 문제가 된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개입 논란 발언이다. 바로 직후 브리핑에 나선 박광온 민주당 대변인이 이를 문제 삼으면서 논란은 확산됐다.
국회의원 3선에 두 차례 장관을 역임한 유 의원이고 보면, 요사이 국회의 백브리핑 원칙이 무너진 걸 몰라서 실수했을 리는 없다. 그럼 고의로 ‘박심’을 팔려고 한 것일까.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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