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투표는 항상 진보 쪽에 기울었다. 갤럽 조사 결과를 보면, 2002년 대선에서 그들 대부분이 속했던 20대의 67.7%가 범진보 후보(노무현·권영길)에게 투표했다(30대는 68.4%). 예외적으로 보수가 강세였던 2007년 대선 때 그들은 20대와 30대로 나뉘어, 20대는 40.6%가 범진보 후보(정동영·문국현·권영길)를 찍었고 30대는 46%가 그랬다. 2012년 대선 출구조사 결과에선 그들 대부분이 속한 30대의 66.5%가 범진보 후보(문재인)에게 투표했다(20대 65.5%, 40대 55.6%).
2007년 실시된 한 조사 결과를 보면, 그들의 이념 성향은 분명하다. 0이 가장 진보, 10이 가장 보수라 할 때, 5보다 낮은, 곧 진보 쪽으로 기운 집단은 1970년대생뿐이었다(1960년대생 5.45, 70년대생 4.95, 80년대생 5.07). “‘그들’은 진보다. 지난 10년간 줄곧 진보를 떠받치고, 진보의 길을 개척한 주춧돌이자 견인차이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은 진보의 꼭짓점이다.”(김종배, 55쪽)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이하 )는 그들의 대학 시절에 대한 이야기였다. 새해에 20주년이 되는 ‘94학번 대학 입학’을 기점으로 오늘날까지가 배경이었다. 1970년대생, 90년대 학번 세대가 꽃답던 젊은 시절이 드라마의 소재가 되는 것은, 그들의 나이를 생각하면 자연스럽다. 그들의 선배인 ‘386세대’를 전격적으로 다룬 드라마 는 1995년 방영됐다. 는 강한 정치성을 띠었지만, 386세대보다 오히려 더 진보적인 ‘그들’의 정치적 성향을 는 설명하진 않았다.
따지고 보면, 그들은 경험적으로 역사 발전을 믿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과 삼촌, 이모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했던 군사독재는 쫓겨나듯이 물러갔다. 10대 시절 대통령은 최연소 국회의원의 기록을 지금도 유지하는 민주화 투사였다. 투표권을 얻은 뒤 처음 실시한 대선에선 반독재 투쟁 과정에서 세계적 명성까지 얻었던 민주화운동가가 당선됐다. 그다음 대선에서는, 최근 개봉한 영화에서 보듯 영화 주인공이 될 만한 인권변호사 출신 정치인이 당선됐다. 그리고 그다음 대선에서는 세계적 기업의 성공 신화를 이끌었던, 또 그걸 기반으로 정치인이 되어 서울시를 바꿔놨던 인물이 대통령이 됐다. 비록 지지하는 인물이 늘 당선되는 건 아니라 해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세상 좋아졌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기업인 출신 전임 대통령이 당선될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진보 성향의 한 원로 인사는 최근 언론 인터뷰를 고사하고 있다. 그는 얼마 전 자신을 찾아온 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분간은 지금보다 더 좋은 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야 1960년대, 70년대, 80년대를 다 겪어봤지만, 젊은이들이 걱정이다. 나도 하고픈 말은 많지만, 젊은이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서 좋을 게 뭐가 있겠나.” 그는 ‘좋지 않은 날’에서 ‘좋은 날’로, 그리고 간난신고 끝에 ‘더 좋은 날’로 올라가는 상승의 흐름을 경험했다. 그런 그가 보기에, 일찍부터 ‘좋은 시절’만 보았던 젊은 ‘그들’이 생각지도 못했을 내리막이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그들의 상황을 비유하자면, 용을 모두 그린 뒤 절정의 눈동자를 찍어 그림을 완성(화룡점정)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눈동자를 먼저 찍어놓고 꾸역꾸역 용을 그려가야 하는 ‘점정화룡’의 처지인 셈이다.
열풍은 이 지점과도 맞닿아 있다. 역사의 퇴행이 거론되는 시대가 되면서, 역사의 발전을 의심치 않았던 그들이 쓰린 배신감을 안고 그들 자신의 ‘벨 에포크’를 추억하는 시절이 왔다. 드라마를 통한 화려한 신고식은, 10대 시절 서태지의 등장으로 대중문화의 주인공으로 떠올랐던 세대답다. 물론 성숙했을 것이다. 그들이 완성할 용 그림은, ‘좋은 세상’이었다며 다음 세대에게 보여줄 만한 것이기를 기대한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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