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정보통합센터엔 1988년 이후 상봉 신청자와 사망자 수가 집계돼 있다. 지난 1월 기준 신청자는 12만9287명이지만, 절반에 육박하는 5만7784명(44.7%)이 이미 세상을 뜬 것으로 나타난다. 2004년 1월 자료(사망자 수 1만9488명, 15.9%)에 견주면, 10년 사이 4만 명 가까이가 불귀의 객이 됐다. 이산가족은 모래시계처럼 시간이 정해져 있는 문제다.
엎어놓은 모래시계는 끝이 가까워올수록 속도가 빨라진다. 남은 신청자 7만1503명 가운데 70살 이상이 81.5%(5만8258명)다. 시간 안에 해결하지 못하면 불합격이다. 남북의 지도자들은 누구도 합격점을 내지 못하고 많은 시간을 잡아먹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죽어갔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그리고 김일성과 김정일은 모두 불합격이다. 이들은 모두 인권 수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 유엔 세계인권선언은 “가정은 사회의 자연적이고 기초적인 단위이며, 사회와 국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제16조 3항)고 하고 있다. 국가 지도자였던 이들은 전쟁 관련 혐의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제네바협약 제1의정서는 “무력 충돌의 결과로 이산된 가족들의 재결합을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제74조) 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가능한 방법을 다 했다고 그 누가 자신하는가.
위정자들이 분단 현실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서 이산가족의 현실은 더욱 비참해졌다. 이산가족은 월남한 사람과 북쪽에 남은 가족(월남 사례), 그리고 월북한 사람과 남쪽에 남은 가족(월북 사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 현황을 보면 생존한 신청자 가운데 64%는 북쪽이 고향이고, 36%는 남쪽이 고향이다. 남쪽에선 월남 사례의 상봉 신청이 2배가량 많다는 뜻이다.
이는 월북 사례, 곧 가족 중 누군가 전쟁 시기에 여러 가지 배경에서 자발적 또는 비자발적으로 북쪽을 택한 경우엔, 남쪽에 남은 많은 이들이 침묵과 망각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빨갱이 가족’으로 불리기 십상이었다. ‘반공’을 국시로 내건 남한 정부는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런 가족을 ‘요시찰인’으로 분류해서 감시했다. 선거 때나 시국이 혼란할 때, 간첩이 내려왔다는 소식이 나돌 때는 밀착 감시를 받았다. 말로만 폐지됐을 뿐인 연좌제에서 벗어나고자, 가족은 월북자를 ‘납북됐다’고 하거나 사망·실종 신고 처리를 해버렸다. 이들의 경우, 2000년 이후 북에서 상봉 신청을 해와서 재회하기도 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걸 보고, 어떤 이는 “은근히 자긍심이 생겼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월남 사례의 경우엔 정반대다. 북에 남은 가족이 체제의 핍박을 받았다. 1959년 북한에서 나온 문건 내용을 보자. “원수들에게 가족을 학살당한 세대들이 적지 않은 반면에, 적들의 기만선전에 의하여 월남한 가족들의 세대도 있었다. 적들의 허위선전에 기만되어 월남한 가족이 있는 사람들과는 가까이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 결과 상대방은 안정되지 못하고 조합 일에도 열성을 내지 않았다.” 남은 가족은 갖은 핑계로 손가락질을 받았고, ‘반동’의 가족이라는 멍에를 지고 출세를 제한받으며 살아왔다. 북쪽에서 이들을 상봉장에 내놓기 꺼리는 건, 이런 배경도 무시할 수 없다. 반면 남쪽에 온 ‘실향민’들은 극렬한 반공주의자로서의 정체성을 강화하며 둥지를 틀었다. 반공이 국시였던 남쪽 사회에서는, 이들이 이산가족 문제의 유일한 주인공처럼 인식됐고, 곧 상봉장에 나온 가족 다수의 모습이 됐다.
이산가족 상봉은 더 늦기 전에 이뤄져야 할 가족의 재회일 뿐 아니라, 남북 양쪽에서 국가의 이름으로 집행된 억압에 대한 책임 있는 반성과 대답이기도 하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는 아무쪼록 합격하기를 바란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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