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좁아 불편하지 않으세요?” 대답은, 뜻밖에도, 무척이나 단순했다. “아니, 이 집은 침실에 불과하니까.” 건축학을 전공하는 한 대학생에게 폭이 고작 90cm에 불과한 천막에서 풍요롭게 사는 ‘집주인’은 새로운 세상에 이르는 길을 일깨워줬다. ‘집을 짓지 않는 건축가’ 사카구치 교헤가 펴낸 책 엔 ‘0엔으로 국가를 만든 한 남자의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다. 앞의 대화는 2000년 어느 날 와세다대학 건축학과 4학년이던 저자가 도쿄 스미다천을 따라 무심코 걷다가 한 노숙인을 만나 나눈 상황을 옮긴 것이다. 노숙인이 자랑스레 소개한 ‘집’은 지붕에 작은 태양열 집열판이 달린 천막이다. 건축이란 으레 벽과 기둥을 세워 공간을 나누는 복잡한 작업이라고 믿던 젊은이에게, 집주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전체가 일상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자원을 제공해줄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라는 주장을 편다. 그날 이후 젊은 건축가에게 건축이란 되레 벽과 기둥을 해체해 삶의 공간을 활짝 열어젖히는 행위로 탈바꿈한다.
도쿄 스미다천의 노숙인, 나가노구 주택가의 정원사… 이 책에 소개된 다양한 ‘괴짜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열쇳말을 꼽으라면, ‘만드는 행위’, 곧 ‘손’의 재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일상을 둘러싼 대부분의 물건들은, 온전히 화폐가치로 환산될 수 있어야만, 달리 말해 언제 어느 장소에서라도 돈과 맞바꾸어질 수 있음을 증명할 때만, 비로소 가치를 인정받는다.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상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바로 ‘교환’인 까닭이다. 저자가 새로운 실험에 ‘독립국가 만들기’란 불온한 딱지를 굳이 끌어다 붙인 이유도, 아마 견고한 현대 도시 공간 곳곳에서 손의 반란이 기운차게 일어나기를 바라는 애틋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바야흐로 ‘손’이 돌아왔다. 사람들은 원했건 아니건 간에 지난 한 주 내내 ‘돌아온 손’을 입에 올리며 시간을 흘려보내야 했다. 취임 뒤 첫 미국 순방길에 오르는 대통령과 함께했던 그 손은 결국 대통령 일행과 떨어진 채 쓸쓸히 귀환했다. 줄행랑치듯 제 나라로 돌아온 사연이 과연 누군가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 아닌지는 여전히 갑론을박 논란거리다. 분명한 건 한 가지뿐이다. 태평양 건너 미국 땅에서 그 손은 결국 몹쓸 사고를 내고 말았다는 사실. 외국 방문에 나선 대통령을 따라다니며 일거수일투족을 꼼꼼히 메모해야 했을 그 손을, 평소에도 행실을 두고 입길에 자주 오르내리던 주인은 정작 다른 쓰임새로 이용해버렸다.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오래도록 ‘나쁜 손’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로 남을 운명이다.
하지만, 우리 곁으로 돌아온 건, 반갑게도, 예의 그 ‘나쁜 손’만은 아닌 것 같다. 요란하고 시끄러운 세상을 향해 962호가 굳이 손 이야기를 꺼내든 배경이다. 가치를 잃어버린 무미건조한 노동(labor)이 아니라 깨어 있는 작업·일(work)이야말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조건이라고 철학자 해나 아렌트가 말했던가. 지금 이 땅의 삭막한 도시 공간 곳곳에서도 ‘나만의 독립국가’를 꿈꾸는 ‘좋은 손’의 반란이 꾸역꾸역 그리고 스멀스멀 일어나고 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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