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카이로의 민주화 시위를 전하는 외신 화면이나 사진을 접하다 보면 너무도 익숙한 장면을 만나 흠칫 놀라게 된다. 대표적인 것이 광장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고가도로, 그리고 광장과 고가도록 위를 가득 메운 인파가 보이는 장면이다(첫번째 사진). 오랜 압제를 무너뜨리려는 힘찬 돌팔매질까지 어쩌면 그리도 똑같을 수가 없다. 1987년 6월 집권을 연장하려는 전두환 독재정권에 맞서, 서울역 고가도로와 그 아래 광장에는 지금 카이로와 비슷해 보이는 규모의 인파와 성난 표정들, 그리고 최루가스 속에서도 가슴 뛰는 열망들이 대기를 달구고 있었다(두번째 사진).
2011년 2월 카이로의 민주화 바람과 함께 서울 여의도 정치권에는 때아닌 개헌 바람이 불고 있다. 5년 단임제 대통령제인 지금의 정치권력 구조를 바꾸자는 청와대와 한나라당 일각의 쇳소리가 여의도를 휘감는 늦겨울 한강 바람 같다. 대통령 직선제를 되살린 현행 헌법은 1987년 6월 항쟁의 과실이었다. 카이로에 부는 민주화의 모래바람처럼 거세게 독재자의 목을 눌러 만들어낸 헌법이다. 거기에는 특정 정치세력의 장기 집권을 막자는 일차원적인 요구 외에도 성난 거리를 메웠던 대중의 다층적인 갈구가 배어 있다.
항쟁과 혁명이 그렇듯, 개헌 또한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미래를 여는 일이다. 항쟁과 혁명이 구체제에서 쌓여온 울분과 아픔을 한꺼번에 터뜨리며 새 시대를 목놓아 부르는 일이라면, 개헌은 점진적으로 변화한 국민의 권리의식과 진화한 시대정신을 차분히 갈무리해 역사의 새 국면을 펼치는 일이다. 방식은 다르되 본질은 비슷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1987년 헌법의 정신을 충분히 소화한 뒤 새로운 시대정신을 찾는 단계에 와 있을까?
몇 가지만 살펴보자. 우선, 87년 헌법에 담긴 정신은 국민 위에 군림하는 폭압적인 권력의 부정이다. 이는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점차 채워지는 듯했으나, 이명박 정부는 이 점에서 87년 이후 가장 퇴행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하나, 87년 헌법은 그해 7~8월 노동자의 권리 요구가 본격적으로 표출된 노동자 대투쟁의 산물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의 노동 현실은 비정규직화의 수렁 속을 헤매고 있고, 이명박 정부는 이에 가장 둔감한 대응을 하고 있다. 그 밖에 87년 헌법이 표방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국민의 기본권과 복지제도 등에서도 이명박 정부는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느라 여념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개헌을 하자는 주장은 어떤 시대정신을 염두에 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87년 체제를 뛰어넘자는 것인지, 그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의 카이로처럼 끓어올랐던 그해 서울의 항쟁에 대해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어떤 성찰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게 표출됐던 국민의 열망에 대해 성찰을 해보기는 하는 것일까?
2월10일 ‘퇴진 불가’를 천명한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에서 권력에 취한 자의 헝클어진 정신을 안타깝게 지켜봤다. 권력은 그렇게 달콤한 독약인가 보다.
한겨레21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