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3일, 윤석열이 발포한 비상계엄령으로 빚어진 내란사태는 불과 11일 후인 12월14일,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 결의안 가결로 제1막을 내렸다. 윤석열의 대통령직은 정지됐고, 내란 관련자들은 속속 구속되고 있으며, 수사의 칼날은 윤석열을 겨누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중대한 위기에 처했지만, 동시에 세계가 놀랄 정도로 빠른 회복탄력성을 보여주고도 있다. ‘윤석열의 난’에 우리는 분노하고 좌절했지만, 동시에 전국의 광장은 거대한 연대의 물결로 이어졌다. 이제 우리는 제2막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지켜본 다음, 제3막 대선의 승리를 기다리기만 하면 될까?
두 알고 있듯이 이 모든 경과는 박근혜 탄핵 사태의 반복이다. 최순실의 국정농단 등의 사유로 박근혜가 탄핵소추된 날이 8년 전인 2016년 12월9일이었다. 헌법재판소가 박근혜를 파면할 때까지 전국의 광장을 가득 메운 거대한 촛불은 한국 민주주의의 강인함을 세계에 알렸다. 이어서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승리했고, 지방선거와 총선에서도 민주당이 압승을 거뒀다. 1987년 이래 가장 강력한 집권세력이 등장했다. 그사이 새누리당은 영남당으로 쪼그라든 채 수차례 당명을 바꿔가며 연명을 도모했다. 향후 20년은 집권할 수 없으리라는 전망도 드물지 않았다.
그다음도 모두 알고 있다. 민주당 정권의 개혁은 지지부진했고 부동산값 폭등에서 보듯 서민의 삶은 곳곳에서 파열음을 울렸다. 정권의 도덕적 위선 앞에서 사람들의 가슴은 차갑게 식어갔다. 그러자 탄핵당한 세력이 다음번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보란 듯이 승리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박근혜를 능가하는 윤석열이라는 괴물을 탄생시켰다.
12월14일의 탄핵소추안 결의 당시 국민의힘 소속 의원 중 불과 12명만 찬성했다고 한다. 박근혜 탄핵에 찬성한 새누리당 의원이 최소 62명이었으니, 내란 수괴 윤석열 탄핵에 대한 찬성이 박근혜 때의 5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든 것이다. 국민의힘이 희망 없는 정당임을 보여주는 장면이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들의 희망이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들은 안다. 잠시만 견디면 민주당이 알아서 곧 지지율을 반납하고 자신들의 입지가 회복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왜 이 끔찍한 역사를 되풀이하는 것일까? 국민이 어리석어서 다시 보수세력을 찍는 탓일까? 하지만 촛불로, 응원봉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위대한 국민이다. 민주주의의 회복탄력성이 바로 이들에게서 나온다. 어떻게 폄하할 수 있으랴. 그렇다면 정치인이 어리석어서일까?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처럼 위대한 국민이 어떻게 이토록 어리석은 정치인을 계속 선출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바로 이 아이러니 속에 지금 한국 정치의 비극적 모순이 집약돼 있다. 이 모순의 기원을 찾으려면 우리는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987년 6월항쟁은 철권통치를 자행하던 전두환 군부정권을 굴복시킨 위대한 승리였다. 동시에 군부와의 불철저한 타협이기도 했다. 노태우의 6·29 선언 직후 전개된 상황은 오늘날까지 장기 지속하는 구도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었다. 개헌 협상은 집권당이던 민정당과 김영삼, 김대중이 이끌던 두 야당 간 밀실협상으로 진행됐다. 협상 과정은 공개되지도, 토론되지도 않았다. 그렇게 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지방자치제 등 절차적, 형식적 민주주의를 뼈대로 하는 제6공화국의 헌정질서, 이른바 87년 체제가 성립했다.
6월항쟁의 또 다른 지도부인 재야(민중운동·시민사회)는 협상에서 배제됐다. 이들이 내건 민중적 요구는 체제에 반영되지 않았다. 항쟁의 참여자는 실로 다양했지만 투쟁 주체라는 상징자본은 ‘넥타이 부대’에게로, 즉 1980년대에 부상한 중산층 (남성) 시민에게로 돌아갔다. 이 시민이 직선제 수용이라는 소식을 듣고 싸움을 멈춘 곳에서 노동자들이 싸우기 시작했다. 7, 8, 9월을 지나며 전국에서 파업투쟁이 들불처럼 타올랐다. 노동이 제 몫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개헌 협상은 재야도, 노동도 배제한 채 이뤄졌다. 대통령 선거 승리로 정권을 연장한 집권세력은 1990년의 3당 합당으로 지역주의에 기반한 보수 우위 구도를 구축하는 한편, 재야민중운동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통해 중산층 시민과 민중 사이의 분리를 꾀했다.
87년 체제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조정되고 진화했다. 최초로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가 일어났고, 전교조, 민주노총 합법화 등 배제됐던 노동에 대한 포용도 일부 진행됐다. 기초생활보장법 등 복지제도도 구축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신자유주의 개혁이 전면화됐다. 김대중·노무현 두 정권 10년 동안 전면적인 대외 개방, 시장화, 노동시장 유연화가 진행됐고, 능력주의 경쟁체제가 사회 곳곳으로 확대됐다. 안정적인 1차 노동시장에 속한 대기업, 공공부문 노동자 계층이 선진국 수준의 중산층 시민으로 상승하는 동안, 대다수 중소기업,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자 계층의 삶은 위태로워졌다. 중산층 시민과 시민이 못 되는 이들 사이의 불평등이 구조화됐다. 요컨대 87년 체제는 1997년을 거치며 정권교체의 정규화 등 형식적 민주주의 측면에서 진전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민주주의 정치의 내용 면에서는 불평등 심화로 귀결됐다.
형식적 민주주의의 진전은 역설적이게도 두 거대정당의 정치독점을 강화했다. 중도든 진보든 제3당이, 더 다양한 대안이 등장할 가능성을 허용하지 않는 선거제도 아래서 유권자는 양당에 대한 지지를 강요받았다. 0.1%라도 이긴 승자가 모두를 독식하는 양당제는 정치를 양극화하고 상호 증오를 증폭했다. 적에 대한 증오로 지지가 유지되는 부정적 경쟁 구도가 고착됐다. 정당의 대변 기능은 좀더 고른 세상,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비전 제시가 아니라 지지자의 증오와 분노를 담아내는 데 주로 투여됐다. 여기서는 정치에 실패해도 괜찮다. 상대의 실책과 과오를 자양분 삼아 증오의 힘으로 다시 집권하면 되니까.
2016~2017년의 촛불집회 이후 일각에서는 촛불시민의 행동방식을 ‘마지노선 민주주의’라고 특징짓기도 했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는 대체로 용인하되,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마지노선을 침범하면 거세게 저항하는 것이 촛불시민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마지노선을 사수하고 나면 시민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당시 촛불시위의 에너지는 대단한 것이었다. 탄핵과 촛불 이후 어떤 세상을 만들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 같았다. 놀랍게도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오히려 반감을 사기도 했다. 촛불 기간 중 ‘와글’이라는 이름의 온라인 공론장이 시도됐지만, “누가 감히 대표를 자임하느냐”라는 거센 비난에 곧 취소됐다. 촛불집회 동안 탄핵 이외의 의제는 제대로 공론화되지 못했다. 촛불 이후는 사실상 민주당에 위임됐다. 민주당은 마치 맡겨놓은 물건을 찾아가는 듯 정권을 잡았다. 그리고 실패했다. 좋은 정치에도, 정권 재창출에도.
2024년 윤석열 탄핵집회의 양상은 비슷하되 다르다. 무엇보다 구성원이 달라졌다. 민주화 투쟁을 경험한 기성세대의 참여는 여전했지만, 이번에는 촛불 대신 아이돌 응원봉을 든 젊은이가, 여성이 시위대의 다수를 차지했다. 성소수자의 깃발이 곳곳에서 나부꼈고 장애인도, 외국인도 드물지 않았다. 수많은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자가 함께했으리라. 중산층 시민이라는 범주로는 포괄되지 않는 이들, 87년 체제가 제대로 대변하지 않는 이들이다. 삶의 위기가 이들을 광장으로 불러냈다. 정치가 응답할 차례다.
87년 체제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전국민의 열망과 투쟁의 힘으로 등장했지만, 실제 경과에서는 군부와 보수야당의 밀실 야합을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에 대한 중산층 시민의 열망만이 배타적으로 반영된 체제로 귀결됐다.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며 절차적 민주주의는 진전됐지만 불평등은 심화하고 구조화됐다. 보수진영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면 국민이 응징하고 민주진영에 권력을 준다. 민주진영 정권 아래서 불평등은 딱히 나아지지 않고 때로 심화한다. 다시 실망한 이들이 민주진영을 심판한다. 그리고…. 87년 체제의 악순환 논법이다.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는 마지노선 민주주의에 관해서라면 한국은 퇴행하지 않았다. 87년 체제의 힘은 아직도 세다. 민주주의를 상속받은 젊은이들이 선배세대보다 더 훌륭하게 제 발로 서서 싸웠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내용에 관해서라면 다르다. 그렇게 싸워 지킨 민주주의가 시민이 못 되는 이들의 위태로운 삶을 개선하고 거기 존엄을 부여하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 질문 앞에서 87년 체제의 역사적 정당성은 끝났거나 최소한 매우 위태롭다. 이제부터 논쟁해야 한다.
이제 촛불 이후 이야기가 나온다. 당연히 개헌이 의제에 오를 것이다. 정치권은 대통령 임기나 중임제, 나아가 내각책임제 등 주로 권력구조에 논의를 집중할 것이다. 증오로 양극화된 정치구조를 바꾸려면 선거법, 정당법, 지방자치법 등도 전면 개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민이 못 되는 이들의 삶을 의제의 전면에 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 87년 체제에서 오래도록 배제된 이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국가에 들리고 정치체제로 들어올 수 있을지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는 이렇게 가르친다. 시민의 형식적 민주주의가 낮은 데로 내려가기를 한사코 거부한다면 분노한 대중은 민주주의라는 형식 자체를 퇴장시킬 수 있다고.
조형근 사회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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