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 사태를 보며 천안함을 다시 생각한다. 지난 3월 그 비극이 서해 바다에 가라앉은 뒤 8개월간 정부는 어떤 일들을 해왔나 되짚어본다.
먼저 침몰 원인을 조사했다. 그러나 신중하고 철저하지 못했다. 초기 조사 과정에서 놀랄 만큼 계속되는 말바꾸기로 군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갔다.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서둘러 조사결과를 발표한다는 오해도 샀다. 이후에도 의문은 계속됐고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은 의혹을 키웠다. 그러나 북한의 소행이라는 정부의 결론은 신속하고도 끈질기다.
정부의 결론대로라면 어이없는 작전의 실패와 장병들의 허망한 죽음에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할 텐데, 지휘관들은 모두 무사했다. 감사원까지 나서 일부 지휘관에게 형사처벌 여지가 있다고 밝혔지만, 군검찰은 4명만 입건한 뒤 지난 11월 초 모두 형사처벌하지 않기로 결론 내렸다. 전투준비 태만, 허위 보고 등의 혐의가 있지만, 군의 사기와 향후 작전 활동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처벌하지 않겠다고 했다. 향후 작전 활동에서는 전투준비 태만이나 허위 보고를 해도 좋다는 것인지, 이렇게 실패한 지휘관들에게 책임조차 지우지 않아야 군의 사기가 높아진다고 보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
국방부 장관 해임 문제에서는 더욱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천안함 사건에서는 군의 지휘 공백을 이유로 자리를 보전시키더니, 이번 연평도 포격 뒤 갑작스럽게 부실 대응 책임을 물어 경질했다. 따져보면, 서해 한-미 연합훈련 등으로 일촉즉발의 긴장이 고조된 지금이야말로 지휘 공백이 더 우려되는 상황이 아닌가.
확성기를 이용한 대북방송 재개 등 대책은 요란했지만, 제대로 실행된 게 없다. 천안함 국면이 안보 불안감만 키우는 말잔치로 속절없이 흘러간 사이, 군이 북한의 또 다른 도발에 대한 대비 태세를 어떻게 다졌는지는 알 수 없다. 연평도 포격 전 이상징후를 발견하고도 묵살했다는 보도를 보면, 대략 짐작은 간다.
그리고 김황식 국무총리를 임명해 고위 공직자 명단에 또 한 명의 병역미필자를 추가했다. 그렇잖아도 넘쳐나는 고위직 병역미필자에 대한 원성이 자자한 나라에서, 천안함 사건을 북한의 소행이라고 단정짓는 대통령이 어떻게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도무지 앞뒤도 맞지 않고, 거친 말만 앞세우고, 평화 관리를 위한 냉철한 전략이란 찾아볼 수 없는 이런 행태들을 지켜보며 솔직히 ‘이 정권 핵심부의 내심 깊은 곳엔 군과 안보에 대한 경시 또는 무지가 자리잡고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연평도에 대포알이 날아왔다. 우왕좌왕, 책임 회피, 강경론 말잔치가 또 반복된다.
민간인과 군에서 희생자가 나왔고 수많은 연평도 주민이 피란민이 되어 울고 있는 마당에 이렇게 뼈 있는 말만 풀어놓는 게 경우에 맞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아니다. 이건 나와 가족의 목숨이 달린 문제가 됐으니 말이다. 어느새 그렇게 됐다. 서울에 사는 평범한 가장은 11월26일 북한 쪽에서 또 포성이 울렸다는 뉴스 속보를 보며 정말로 가슴이 철렁했다. 이 공포의 어둠을 지우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퇴근길, 그 어느 때보다 진심 어린 고민에 빠져들었다.
한겨레21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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