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사가 불행한 이유는 역대 대통령을 거치면서 매번 ‘이래서 이런 사람은 안 돼’라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점이 아닐까. 더러 치적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분명한 건 집권 당시에 비해 퇴임 때의 세평이 좋았던 적은 없었다는 점이다. 시민 대다수가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전임 대통령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임 대통령에 대한 평판에 힘입어 재집권에 성공한 대통령도 없다. ‘군인 출신’들이야 말할 나위도 없고(물론 군인 출신이 정치권에 입문한 뒤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대통령이 되는 것까지 반대할 일은 아니지만, 최근 제2롯데월드 허용 논란을 지켜보니 안보와 관련한 사안에서도 줏대 없는 군인들의 모습에서 군인 출신 대통령은 앞으로도 위험한 선택지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정치인 출신’의 대통령들도 뽑아준 이들에게 많은 상처를 줬다.
대기업 최고경영자(CEO)와 지방자치단체장 경력을 주된 발판으로 삼아 대권을 쥔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가. 집권 1년 만에 그의 말을 귀담아듣는 시민은 별로 없어 보인다. 대선에서의 압도적 지지에 보답이라도 하듯 숱한 비판 속에서도 종합부동산세를 완화했건만, 독보적 지지 기반이라 할 서울 강남의 주민들도 이제 시큰둥하다. 시민적 자유를 조여드는 이 정부의 행태에 그들도 시민으로서 불편함을 느끼고 있음을 여론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권위적 대통령’ ‘제왕적 대통령’ ‘독선적 대통령’이라는 과거 대통령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아예 한 몸에 육화한 듯하다. 이명박 대통령도 역시 유권자들의 마음에 ‘이런 사람은 안 돼’라는 후회를 새기는 대통령이 될 확률이 높아 보인다.
그럼, 다음엔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 또 다른 대통령의 요건은 무엇일까? 성급한 측면이 있지만, ‘국제적 안목’을 꼽고 싶다. 국제사회의 합의된 기준과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신, 다른 나라를 이끌고 나갈 새로운 가치 등에 민감한 대통령 말이다. 그런 대통령을 뽑는다면 적어도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낯부끄러운 일들이 반복되지는 않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한 나라의 정보기관장 내정자가 ‘정치 사찰’을 하겠다고 공언하는 일, 도심 한복판 재개발 과정에서 저항하던 철거민과 강제 진압에 동원된 경찰 6명이 목숨을 잃는 일, 그러고도 검찰은 모든 책임을 힘없는 철거민들에게 전가하는 일, 국가인권위원회 조직을 30% 축소하겠다고 나서는 일(세계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의 부의장국인 우리나라는 2010년 의장국이 될 예정이다), 국제적으로 사실상의 사형폐지국으로 인정된 나라에서 집권 여당이 사형 집행을 재개하자고 목청을 높이는 일, 장애인을 위한 방송 수화·자막 제공 의무를 규제랍시고 무력화하려는 일….
최근 한 언론사의 여론조사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차기 대통령감 2위에 올랐다는 뉴스를 봤다. 그를 정치인으로서 지지하는 건 아니지만, 인권·평화와 같은 국제사회의 가치를 구현하는 국제무대 경험이 앞으로는 대통령에게 필요한 자산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꼭 국제정치 무대에 진출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늘 국제적 흐름과 우리 현실을 조화시키려는 고민을 하면 그만이다. 4년 뒤 유권자들이 어떤 성숙함을 보일지는 예단하기 어려운 일이다. 대한민국을 세계적으로 창피한 ‘경제 동물의 나라’로 만들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과 집권 세력의 행태에 대해 대통령을 꿈꾸는 이들이 지금 어떤 행동을 보였는지가 그때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박용현 편집장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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