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이용료’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린 아이, 화면 가득 쏟아지는 선물을 볼 때마다 전화번호를 누르고 싶다는 아이. 불혹의 나이에도 상품에 눈이 멀 때가 있는데 아이들이야 오죽하랴. 어린이 프로그램의 광고에 대한 관심과 배려, 우리들의 몫이리라.

유난히 여름방학을 기다리던 초등학교 1학년 아이는 방학 동안 뭘 할 거냐는 물음에 “반둥반둥 놀고 싶다”고 했다. ‘빈둥빈둥’이 아이 귀에는 그렇게 들렸던 모양이다.
“매일 놀잖아? 너 학교 가는 거말고 하는 거 아무것도 없잖아?” 했더니 “학교에도 안 가고 숙제도 안 하고, 실컷 놀고 싶단 말이에요”라고 했다.
아이들의 실망과 분노
숙제 없이 실컷 놀고 싶어 방학을 기다렸는데 방학숙제가 있다는 사실에 실망하던 아이. 자신의 계획대로 실컷 놀기만 하던 아이는 개학을 코앞에 두고 바쁘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방학 내내 미뤄뒀던 일기를 한꺼번에 쓰느라 바빴던 내 어린 시절을 기억하니 입가에 저절로 웃음이 번져왔다. ‘청출어람’이라는 말을 여기에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림일기 쓰기를 좋아하는 아이인지라 일기만큼은 열심히 써와서 나처럼 일기로 인한 고생은 면하고 있다. 아이가 자랑스럽게 내미는 그림일기장을 펼치니 제목 중 가장 많은 것이 ‘만화영화를 보았다’였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 중에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우리 집이지만 ‘방학특집’이라는 이름으로 재방송되는, 도대체 몇탕째인지 모르는 만화영화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세 모녀가 평일 저녁 텔레비전 앞에 앉았었다. 그런데 어찌나 광고를 많이 하는지 초저녁잠이 많은 내가 깜빡 졸기까지 했는데도 광고는 계속되고 있었다.
“무슨 광고가 이렇게 많아” 했더니 작은아이 하는 말이 “한 스무개는 할 걸요”라고 한다. 만화 보는 시간보다 광고 보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이 제품은 수동으로 작동하는 완구입니다.’ 아이들 장난감 광고 화면 한 귀퉁이에 그것도 거의 눈 깜짝할 정도의 시간만큼 나타났다 사라지는 문장.
“저거 진짜로 움직이는 거 아니죠? 손으로 잡고 움직여줘야 하죠? 그런데 텔레비전 안에 있을 때는 어떻게 저렇게 혼자서 잘 움직여요? 피이, 순 거짓말.” 아이는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거린다.
말귀를 알아듣고 몇번의 경험을 통해 광고와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아이도 광고를 볼 때마다 ‘혹시 이거는?’ 하는 기대를 했다가 ‘저것도 똑같을 거야’ 하는 자조적인 말을 하는 것을 볼 때마다 너무 안타깝고 속이 상한다. 아이 키우는 부모라면 광고 속의, 혼자서 잘도 움직이는 것을 찾아 아이 손에 이끌려 장난감 가게를 돌아다녀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찾아 헤매던 것이 단지 플라스틱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얻어야 했던 상처를 난들 제대로 알까만은 아이들의 실망하는 얼굴에서, 아래로 처지며 작은 손아귀의 기운이 스르르 빠지는 것을 보면서 작은 분노를 느끼곤 했다.
요즘 만화영화 채널의 광고는 장난감, 먹을거리, 그리고 게임이나 퀴즈를 풀 수 있는 유료 전화 이용에 관한 것이 주류를 이룬다. 텔레비전을 보던 아이가 갑자기 전화번호를 크게 외쳐댈 때가 있다. 노래부르듯 리듬을 타고 흘러나오는 광고의 전화번호를 따라하는 것이다. 노래로 외우는 전화번호. 하지만 그 전화를 이용하기 위해서 비용이 든다는 것을 함께 보는 어른이 알려주지 않는 한, 아이 혼자서 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돈 안 드는 전화도 있어요?”
‘정보이용료 ×초 ××원’라는 깨알 같은 글씨가 화면 한 귀퉁이에 정말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져버린다. 몇번을 기다렸다가 읽어보려 노력했지만 너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전화요금 중 ‘정보이용료’라는 것이 2만원 가까이 나왔기에 전화국을 통해 알아보니 060으로 시작하는 전화 이용에 따른 비용이라 했다. 060이라는 말에 작은아이는 자기가 했다며 노래하듯이 전화번호를 큰 소리로 외쳐댔다.
몇번의 전화로 엄청난 정보이용료를 지불하게 되었다며 그 전화번호는 돈이 드는 것이니 엄마의 허락 없이 누르면 안 된다고 나무라는데, 아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돈 안 드는 전화도 있어요? 그럼 다른 전화는 공짜예요?”
‘정보이용료’를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린 아이, 화면 가득 쏟아지는 선물을 볼 때마다 전화번호를 누르고 싶다는 아이. 불혹의 나이에도 상품에 눈이 멀 때가 있는데 아이들이야 오죽하랴. 어린이 프로그램의 광고에 대한 세심하고 진지한 관심과 배려, 우리들의 몫이리라.
이영미 | 교사·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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