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색양진이를 보려고 강원도 태백시의 1300여m 높이 매봉산에 있는 풍력발전단지 ‘바람의 언덕’에 올랐다. 해발 920m 지점쯤 삼수령을 빠져나와 수령이 오래되지 않은 자작나무 숲으로 이어진 매봉산길을 따라 고도를 높이면 하늘과 맞닿은 광활한 땅을 만난다. 거대한 풍력발전기 수십 기가 버티고 선 아래 고랭지 배추밭이 펼쳐진다. 수확이 끝나 텅 빈 채 바람만 거센 ‘배추고도’에 겨울 진객이 날아온다.
매우 드문 겨울철새인 갈색양진이는 주로 높은 산 정상의 암석지대에 무리지어 산다. 한번 눈이 내리면 겨우내 녹지 않을 만큼 높은 곳에서, 새들은 거센 바람에 눈이 쓸려 드문드문 드러난 맨땅을 찾아 쉴 틈 없이 날아다닌다. 경사가 심해 미처 개간하지 못한 비탈로 옮겨 다니며 먹이를 찾기도 한다. 사람 손이 닿지 않은 곳에서 자란 잡풀 씨앗을 주로 먹는다. 사람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바람이 불면, 새들은 밭과 밭 경계를 따라 쌓인 낮은 돌담 틈에서 바람을 피한다.
배추밭 갈색양진이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것도 이곳 바람 때문이었다. 연평균 풍속이 초속 8.4m로 대관령 바람보다 강하다고 알려진 매봉산 주변 백두대간 마루금에 잇따라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설 때다. 2013년 12월, 바람의 언덕에서 마주 보이는 창죽령에 새로 들어설 풍력발전단지 주변 자연환경을 조사하던 심헌섭 시민환경센터 사무국장이 갈색양진이 무리를 처음 발견했다.
삼수령에서 바람의 언덕으로 이어진 길은 고랭지 배추 농사용 도로이기에 좁고 경사가 심하다. 눈이 내리면 차량 운행이 어려워지는데, 당시에도 도로에 쌓인 눈 때문에 차를 몰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바람의 언덕에서 창죽령까지 눈길을 걸어 이 지역의 생태 변화와 조류 서식 현황을 살피던 참에 새가 눈에 띄었다고 한다. 눈 덮인 배추밭 한쪽 비탈의, 바람이 눈을 불어 드러난 땅에서 갈색양진이가 먹이를 찾던 중이었다. 갈색양진이를 보려면 무거운 탐조 장비를 메고 부산 금정산 정상이나 덕유산, 지리산 꼭대기를 올라야 하던 시절이었다. 이제 눈길만 피하면 바람의 언덕까지 차로 올라와 편하게 볼 수 있는 새가 반갑고 고맙다.
태백=사진·글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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