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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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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저 짐승이란 누구인가

등록 2024-01-19 20:20 수정 2024-01-25 20:42
너는 머리를 예쁘게 치장한 채 사람들을 맞았지.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은 너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먼저 돈을 냈어. 때론 네 등에 작은 의자가 얹히고 아이들이 거기에 앉았지. 너는 아시아코끼리라고 불렸지만, 이곳 아시아는 너희가 살던 그 아시아와는 정말 달랐을 거야. 2008년 서울 어린이대공원.

너는 머리를 예쁘게 치장한 채 사람들을 맞았지.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온 아이들은 너에게 먹이를 주기 위해 먼저 돈을 냈어. 때론 네 등에 작은 의자가 얹히고 아이들이 거기에 앉았지. 너는 아시아코끼리라고 불렸지만, 이곳 아시아는 너희가 살던 그 아시아와는 정말 달랐을 거야. 2008년 서울 어린이대공원.


호불호를 떠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별난 나라다.

우리는 북한을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는 고집불통의 고립 노선을 추구하는 꽉 막힌 폐쇄집단으로 여기곤 하는데, 북한의 외교력은 사실 만만치 않다.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는 미국을 상대로 반세기 넘는 세월 동안 맞짱 뜬 나라가 몇이나 될까. 외톨이였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누군가는 북한을 ‘밀(고)당(기기) 외교의 귀재’라 부를 정도다.

북한은 소련과 중국, 동유럽 등 사회주의권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식민지로 고통받다가 독립한 아프리카, 아시아의 여러 나라와 폭넓게 교류했다. 그 과정엔 언제나 상호신뢰를 확인하는 진귀한 선물이 오갔다. 평안북도 향산군에 자리한 묘향산은 산세와 단풍이 아름다운 명산으로 유명하지만, 마치 공상영화에나 나올 법한 거대한 지하궁전 ‘국제친선전람관’으로도 유명하다. 김일성관과 김정일관으로 나뉜 두 개의 초대형 박물관은 북한의 절대군주가 국제사회와 교류하며 선물받은 진품명품으로 가득하다. 모든 전시품에는 누가, 언제, 왜 이 선물을 줬고 얼마나 진귀한지 칭송하는 설명문이 붙었다. 내 눈을 붙든 것 중 하나는 동물들이었다. 어떤 녀석은 박제된 채 받았지만, 또 어떤 녀석은 산 채 받았으나 죽은 뒤 북한에서 박제했다. 금은보화만이 보물인가. 동물 또한 보물이었다.

외교 과정에서 ‘동물 보물’을 주고받는 건 동서고금에 흔한 일이었다. 1411년 일본왕 아시카가 요시모치(원의지)는 조선 태종에게 검은 코끼리 한 마리를 선물했다. 반가우나 당황스러운 선물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그 당혹감이 배어 있다. “살가죽은 굼벵이처럼 쭈글거리고 꼬리는 돼지와 흡사하며 만삭의 암소 걸음처럼 둔했다. 큰 소리로 우니 도성 전체가 흔들리는 듯했다. 길고 거대한 코 옆에 커다란 귀가 붙어 있으나 귓구멍이 없고 대저 짐승이란 털이 있어야 함에도 털이 하나도 남김없이 빠져 있어 몰골이 흉측하기 짝이 없더라.”

코끼리는 임금의 애완동물이었지만 너무 많이 먹는 탓에 기르기 만만찮았다. 급기야 이듬해 코끼리를 놀리며 침을 뱉은 양반네가 밟혀 죽는 참사가 벌어졌다. 국법에 따르면 사형감이었으나 전라남도 벌교의 작은 섬으로 귀양 보냈다. 그 먼 길을 어찌 내려갔을까 생각하면 아찔하다. 코끼리도 사람도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많이 먹는 코끼리를 모든 고을이 부담스러워했기에 여기저기 전전해야만 했다. 나중엔 먹이를 거절해 야위고, 사람을 만나면 눈물을 흘렸다. 귀한 보물이었으나 외로운 천덕꾸러기였던 코끼리에 관한 기록은 1421년을 끝으로 사라졌다.

조선왕조에 박제 기술이 발달했고 국제친선전람관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코끼리는 죽어서도 산 것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만났으리라. 국제친선전람관은 이름만 다를 뿐, 세계 도처에 있다. 호불호를 떠나 우리 호모사피엔스는 지구사에 유례를 찾기 힘든 별난 종자다.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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