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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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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제대로 소비하라/ 류동민

등록 2003-11-06 00:00 수정 2020-05-02 04:23

연구 명목으로 일본에 머문 지 몇달째, 날마다 부딪히는 낯선 사회의 단면과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어설픈 문화비평을 다듬는 버릇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다. 아마도 이런 맛에 기껏해야 2~3년 지내다 돌아간 이들이 따위의 용감무쌍한 책들을 쓰곤 하였던 모양이다.

일본은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가끔 텔레비전에서나 보던 정치인들이 전철역 광장에서 어깨띠 두르고 넙죽 절하는 낯익은 모습도 보인다. 지난주엔가는 난생처음 실물로 접하는 공산당(!) 당수의 거리연설을 들을 기회도 있었다.

일본 정치에 무지한 이방인의 눈에도, 우리 사회에도 이미 나타났거나 조만간 나타나리라 짐작되는 여러 가지 현상이 관찰된다.

사실 정책상의 차이라고 해보았자 소비세율은 몇% 올리느냐 따위의 사소한 문제뿐인 집권여당과 제1야당 사이의 논쟁에 일반 시민들이 별다른 관심을 나타내지 않은 것은 당연해 보이기조차 한다.

연예계 같은 일본 정치계

언제까지 미국이 시키는 대로만 할 수는 없으며 평화유지를 위해서는 헌법개정은 절대로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일본에 대한 민족주의적 본능을 가슴속 깊이 간직한 한국인이라면 박수를 쳐줄 만도 한, 공산당의 ‘큰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청중이래야 고작 열댓명 남짓한 노인들뿐인 것도 ‘역사의 종언’이라는 세계사적 추세를 반영한 것이라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정치가 마치 연예계처럼 되어가는 현상이다. 3대째 거물정치인 집안에서 ‘총리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다는 아베 자민당 간사장. 그가 나타나는 곳이면 어김없이 카메라 달린 휴대전화기로 사진 찍어대며 사인 받으려는 여성팬들이 모여들게 마련이고, 그 옛날 ‘선생님’이나 ‘총재님’과 찍은 사진 한장이 선거홍보물의 전부이다시피 하던 우리의 의원들처럼 간사장과 함께 찍은 사진이 중요한 선전수단의 하나가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개각을 비롯한 최근의 인사가 매파 대표들만 모아놓았다는 비아냥에도, 특히 20~30대 젊은층의 정치적 무관심에도, 아니 오히려 그 때문에 온화하게 잘생긴 부잣집 도련님 인상이 끌어올 표의 위력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보인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예의 버릇대로 지난 겨울 대선 이래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던 우리의 정치를 떠올린다. 국외자의 입장에서 잠깐 지낸 경험으로 일본이 어떻고 하는 것이 우습고 부질없는 만큼이나, 우리는 혹여 몇 가지 단편적 사실이나 인상비평에 의해 정치를, 또는 정치가를 판단하지는 않았을까?

기꺼이 홍위병이 되어 끝까지 싸우겠다는 열성적 지지세력은 차치하더라도, 무능하고 과격한 대통령 때문에 나라 말아먹게 생겼다며 당장 하야하라는, 그 옛날 ‘전·노 일당’에게도 차마 하지 못하던 요구를 해대는 이들조차 그저 막연한 불안감을 스스로 증폭하다가 너무 나가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상품’ 이미지에만 집착하면…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모든 정치가의 목표는 득표 극대화에 있다. 어느 초선의원의 말마따나 정치인은 표를 먹고사는 동물일진대, 잘생긴 얼굴을 팔건 웃음을 팔건 나름대로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셈이다. 정치인이 표를 얻어가는 대가로 제공하는 것은 정치 서비스라는 일종의 상품이다. 그러므로 너무도 당연한 말에 지나지 않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소비자인 유권자의 역할이다.

현대 기업이 막대한 물량의 광고공세를 통해 판매하는 것이 상품의 실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이미지인 것과 마찬가지로, 아마도 정치 서비스 또한 때로는 가공적인 이미지의 생산과 소비가 내실을 압도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듯하다. 물론 소비자 스스로 환상적인 이미지의 소비를 원하는 것이 포스트모던한 세태에 어울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가 과연 그 정도로까지 발전(?)한 것일까?

제도나 구조보다는 영웅적 개인의 카리스마나 지도력, 구체적 정책노선보다는 인상이나 인간적 신뢰감, 심지어 막연한 분위기에 집착하다 보면, 기껏 애써 행사한 투표권에 대해 포퓰리즘 운운하며 매도당하거나, 인정하기 싫은 현실 앞에 발버둥치며 고작 흘러간 독재자에 대한 향수에나 젖어 있기 십상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작금의 혼란은 제대로 된 정치 서비스 소비를 위한 최후의 기회일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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