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6월18일 코스피는 사상 첫 9000을 돌파하며 한국 자본시장의 역사를 새로 썼지만, 3개월 만인 9월 말 6800선까지 밀려나는 등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세계는 이제 한국을 다르게 본다.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의 화장품 매장에는 한국 스킨케어 제품이 따로 진열되고, 남미의 젊은이들은 한국 드라마를 보며 한국어를 배운다. 케이(K)뷰티, K팝, K드라마, K푸드. 한국이라는 이름 앞에 붙는 알파벳 K는 하나의 품질보증서가 되었다. 한국에서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이 먼저 지갑을 열고, 먼저 찾아오고, 오래 머문다.
그런데 K가 아직 붙지 못한 곳이 있다. 바로 주식시장이다. 한국 주식시장은 세계 투자자들에게 여전히 ‘신흥시장의 한 귀퉁이’로 취급된다. 좋을 때 잠시 들렀다가 나쁠 때 가장 먼저 떠나는 곳. 오래 머물 이유가 없는 곳. 이것이 지금 한국 주식시장이 받는 대접이다.
최근 수치가 이를 보여준다. 외국인 투자자는 2026년 들어 9월 초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169조원이 넘는 주식을 순매도했다. 2025년 연간 순매도의 36배에 이르는 규모다. 매도는 그 뒤에도 멈추지 않았다. 9월1일부터 10월2일까지 한 달 남짓한 기간에만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20조3050억원을 순매도했다. 이 기간 외국인이 순매수한 날은 7거래일에 불과했고, 9월28일 하루에만 3조원 넘게 팔아치웠다.
매도는 반도체 대형주에 집중됐다. 같은 기간 에스케이(SK)하이닉스 순매도액은 12조원, 삼성전자는 5조원을 넘었다. SK하이닉스의 외국인 보유율은 49.76%로 3년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까지 떨어졌다. 코스피 전체 시가총액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중도 39.66%로 줄었다.
지수는 그대로 반응했다. 6월 9000선을 넘었던 코스피는 9월 말 6800선까지 밀려났다. 6월23일 하루에만 10% 가까이 빠지는 사상 최대 낙폭을 겪었고, 그 뒤로도 외국인이 대규모로 파는 날마다 지수는 힘없이 주저앉았다. 9월30일에도 외국인이 2조원 넘게 순매도하면서 코스피는 사흘 연속 하락했다. 개인과 기타법인이 1조원 넘게 사들였지만 지수를 지키지 못했다.
주가가 떨어진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미국 금리 인상, 국제유가 상승, 미국과 이란의 전쟁 장기화, 상반기 급등에 따른 차익 실현.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모든 변수가 결국 하나의 통로를 거쳐 주가에 전달된다는 점을 봐야 한다. 그 통로가 외국인 매도다. 대외 변수가 흔들릴 때마다 외국인이 한국 주식을 가장 먼저, 가장 많이 판다는 사실. 이것이 한국 주식시장의 가장 큰 약점이다.
왜 외국인은 한국 주식을 가장 먼저 팔까? 한국 주식시장이 ‘오래 들고 있을 시장’이 아니라 ‘현금이 필요할 때 꺼내 쓰는 시장’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한국 주식은 거래가 활발하고 유동성이 풍부하다. 위기가 오면 팔기 쉽다. 반대로 말하면, 팔지 않고 버틸 이유가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버틸 이유는 신뢰에서 나온다. 내가 산 주식의 가치가 대주주의 이해관계 때문에 훼손되지 않으리라는 믿음. 회사가 번 돈이 배당과 자사주 소각으로 주주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원화 가치가 흔들려도 기업의 이익 성장이 그 손실을 메워줄 것이라는 믿음. 이 믿음이 약한 시장에서 투자자는 손님일 뿐 주인이 되지 못한다. 상반기 코스피가 크게 오르는 동안에도 원화는 주요국 통화 가운데 가장 약한 모습을 보였다. 지수는 올랐지만 신뢰는 그만큼 쌓이지 않았다는 증거다.
다행히 변화는 시작됐다.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상법은 세 차례 개정됐다. 1차 개정은 이사가 회사뿐 아니라 주주에게도 충실해야 한다는 원칙을 법에 새겼다. 2차 개정은 이사 선임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목소리를 키웠다. 그리고 2026년 2월25일, 코스피가 사상 처음 6000을 넘은 바로 그날,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새로 사들인 자사주는 1년 안에, 기존에 보유한 자사주도 1년6개월 안에 소각해야 한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의 의미는 크다. 그동안 한국 기업의 자사주는 주주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대주주의 경영권을 방어하는 무기였고, 인적분할 과정에서 지배력을 키우는 이른바 ‘자사주 마법’의 재료였다. 주주의 돈으로 산 주식이 대주주를 위해 쓰인 것이다. 이제 그 길이 막혔다. 미국 증시가 장기간 강세를 이어온 배경에도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있다. 미국 기업들은 번 돈으로 자기 주식을 사들여 없앴고, 그 결과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가 꾸준히 줄었다. 주식 공급이 줄어드니 하락기에도 주가가 버틸 힘이 생겼다.
그러나 법 하나로 문화가 바뀌지는 않는다. 3차 개정을 앞두고 일부 기업은 소각 의무를 피하려 자사주를 서로 맞바꾸거나 임직원 상여금으로 처분하는 꼼수를 보였다. 자사주 비중이 30%에 육박하는 기업들이 여전히 처분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법의 취지를 존중하기보다 빈틈을 찾는 관행이 남아 있는 한, 외국인 투자자의 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개혁은 계속돼야 한다. 상법 개정은 출발점일 뿐이다. 연기금과 자산운용사가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하도록 스튜어드십 코드를 강화해야 한다. 배당소득 분리과세를 안착시켜 기업이 배당을 늘릴 유인을 만들어야 한다. 주가가 낮아야 상속세를 덜 내는 구조, 이른바 ‘주가 누르기’ 유인도 걷어내야 한다. 이 모든 개혁의 결과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지수 편입이라는 문을 열어야 한다. MSCI 선진지수 편입은 단순히 지수 하나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한국 시장을 ‘들렀다 가는 곳’에서 ‘반드시 담아야 하는 곳’으로 바꾸는 일이다. 신흥시장 자금이 빠질 때 함께 빠지는 시장이 아니라, 선진시장의 장기 자금이 꾸준히 머무는 시장으로 바뀌는 것이다.
제도만큼 중요한 것이 문화다. K뷰티와 K팝이 세계를 사로잡은 것은 정부 정책 덕분만이 아니었다. 한국 소비자가 먼저 까다롭게 고르고, 오래 쓰고, 깊이 사랑했기 때문이다. 안에서 단단하게 다져진 팬덤이 있었기에 밖에서도 통했다. 주식시장도 마찬가지다. 한국 사람이 한국 주식을 믿고 오래 보유하지 않는데, 외국인에게 오래 머물러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한국 가계 자산의 4분의 3 가까이는 부동산에 묶여 있다. 2026년 7월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내려다본 잠실르엘, 잠실래미안아이파크 단지 전경. 한겨레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금 한국의 투자 문화는 어떤 상황인가? 많은 개인투자자에게 주식은 여전히 ‘단기간에 큰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고팔고, 테마를 좇아다니고, 빚내어 레버리지를 키운다. 최근에는 개별 종목의 하루 등락을 두세 배로 키우는 레버리지 상품까지 인기를 끌고 있다. 이런 시장에선 작은 충격에도 쏠림이 생기고, 쏠림은 다시 급락을 부른다. 외국인 입장에서 이런 시장은 기회일 수는 있어도 안식처가 되기는 어렵다.
투자 문화가 바뀌려면 무엇보다 돈의 흐름이 바뀌어야 한다. 한국 가계 자산의 4분의 3 가까이는 부동산에 묶여 있다. 한국 사람에게 재산을 불리는 방법은 오랫동안 집이었다. 집을 사서 기다리면 값이 올랐고 전세를 끼고 한 채 더 사면 더 큰 돈이 됐다. 이 공식이 수십 년 동안 통했기 때문에 주식은 늘 곁가지였다. 월급을 모아 집을 사고, 남는 돈으로 주식을 ‘해보는’ 것. 이것이 한국 가계의 전형적인 자산 운용 방식이었다.
그 결과는 무엇이었나? 집값은 청년세대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올랐고, 기업은 국민의 돈이 아닌 외국인의 돈에 기대어 성장했다. 한국 기업의 이익이 커져도 그 과실의 상당 부분은 외국인 주주에게 돌아갔다. 반대로 외국인이 떠날 때 생긴 손실은 고스란히 한국 시장 전체가 떠안았다. 국민은 집에 돈을 묶어두고, 한국 기업의 주인 자리는 외국인에게 내준 셈이다.
이제 구조를 바꿔야 한다. 부동산 보유세를 정상화하고,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은 단지 집값을 잡기 위한 것이 아니다. 부동산에 묶인 돈이 생산적인 곳으로 흐르게 하는 길을 여는 일이다. 그 생산적인 곳이 바로 주식시장이다. 국민이 한국 기업의 주주가 되면 기업이 성장할 때 국민의 재산도 함께 늘어난다. 외국인이 대규모로 팔아도 그 물량을 받아낼 든든한 국내 투자자가 생긴다. 9월 한 달 외국인이 20조원을 팔았을 때, 그 물량을 받아낼 장기 자금이 충분했다면 코스피는 지금과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물론 주식투자를 권하는 것은 투기를 권하는 것과 다르다. 단타와 빚투가 아니라 좋은 기업을 골라 오래 보유하는 투자, 배당을 받고 다시 투자하는 투자, 연금계좌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를 통해 꾸준히 적립하는 투자가 자리 잡아야 한다. 세제 혜택은 장기 보유에 집중하고, 금융 교육은 ‘얼마나 빨리 버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잃지 않느냐’를 가르쳐야 한다. 기업은 주주를 존중하고, 투자자는 기업과 함께 성장하는 문화. 이것이 K주식시장의 바탕이 돼야 한다.
가까운 일본이 좋은 참고가 된다. 일본 역시 오랫동안 가계 자산의 절반 이상이 예금에 잠겨 있던 나라였다. 기업은 현금을 쌓아두기만 했고, 주가가 장부가치에도 못 미치는 상장사가 수두룩했다. 변화는 거래소에서 시작됐다. 도쿄증권거래소는 2023년 주가순자산비율이 1배에 못 미치는 기업에 자본 효율 개선 계획을 내라고 요구했다. 정부는 2024년 소액투자 비과세 제도(NISA)의 한도를 크게 늘린 신NISA를 도입해 가계의 장기 적립 투자를 끌어냈다. 기업 개혁과 가계의 자산 이동이 동시에 일어나자 닛케이지수는 35년 만에 1989년 거품기 고점을 넘어섰다. 핵심은 순서가 아니라 동시성이었다. 기업이 바뀌니 국민이 들어왔고, 국민이 들어오니 기업이 더 바뀌었다. 한국도 상법 개정이라는 기업 쪽 변화를 가계 쪽 변화와 함께 맞물려 돌려야 한다.
K뷰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한국 소비자가 까다롭게 고르고, 기업이 그 기대에 맞춰 품질을 높여온 결과다. K주식시장도 같은 길을 가야 한다. 기업은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바꾸고 이익을 주주와 나눠야 한다. 정부는 상법 개정 이후의 개혁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국민은 부동산이 아닌 한국 기업에서 미래를 찾아야 한다.
외국인이 팔 때마다 흔들리는 시장이 아니라, 외국인이 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시장. 한국 사람이 먼저 믿고 오래 머무는 시장. 그런 시장이 만들어질 때 세계는 한국 주식에도 K를 붙여줄 것이다. K주식시장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이 그 시작이다.
이광수 경제평론가·‘광수네, 복덕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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