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9월1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와 삼성전자, 에스케이(SK)하이닉스 주가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주식시장 저평가 해소, 모두가 함께 해야 한다. 한국 주식시장은 오랫동안 제값을 받지 못했다. 같은 매출, 같은 이익, 같은 자산을 가진 기업이라도 한국에 상장돼 있다는 이유만으로 더 싸게 거래됐다. 저평가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오래된 이름이고, 오래된 숙제다. 최근 저평가는 오히려 더 깊어졌다.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5.1배까지 떨어지며 역사적 저평가 구간에 들어섰다. 앞으로 1년 동안 벌어들일 이익을 기준으로 주가를 매겨도 그만큼 싸다는 뜻이다. 주가순자산비율(PBR)도 다르지 않다. 코스피는 1배 근처인데, 선진국 주요 증시는 1.5배에서 2배 사이다. 시장 전체로 보면 글로벌 동종 기업 대비 30~40% 낮게 평가받아왔다. 같은 물건에 다른 값이 매겨진 셈이다.
반드시 짚어야 할 대목은 저평가가 깊어진 이유다. 같은 기간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주당순이익(EPS) 추정치는 큰 폭의 하향 조정 없이 유지됐다. 앞으로 기업이 벌어들일 이익에 대한 기대는 꺾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PER은 주가를 이익으로 나눈 값이다. 분모인 이익 전망이 그대로인데 PER이 5.1배까지 내렸다면, 낮아진 것은 이익이 아니라 주가다. 이익 전망이 나빠져 주가가 내린 것이 아니라, 이익 전망은 그대로인데 주가만 눌렸다.
지금의 저평가는 실적의 문제가 아니라 평가의 문제다. 실적이 문제라면 손쓸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평가가 문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평가는 신뢰의 함수이고, 신뢰는 기업과 정책과 투자자가 함께 만들어갈 수 있다. 열심히 버는데도 값을 못 받는다면, 남은 과제는 이익을 늘리는 일이 아니라 그 이익을 주주와 어떻게 나누는가를 증명하는 일이다. 저평가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한두 해의 부진이 아니라 구조적이고 반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다. 싸게 거래되는 이유가 시장 안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인을 그대로 둔 채 주가만 오르기를 바라는 것은 순서가 틀린 기대다.
저평가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지배구조다. 소수의 지배주주가 회사를 좌우하고, 일반주주의 이익은 뒷전으로 밀리는 구조가 오래 이어졌다. 둘째는 낮은 주주환원이다. 기업이 벌어들인 돈을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으로 주주에게 돌려주는 데 인색했다. 곳간에 현금을 쌓아두고도 주주와 나누지 않으니, 시장은 그 현금을 제값으로 쳐주지 않았다. 두 가지 모두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원인이다. 지배구조와 주주환원은 기업의 선택이고, 제도의 설계이며, 투자자의 요구가 만들어내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저평가가 실적이 아니라 평가의 문제라면, 두 가지를 바꾸는 것이 해법의 핵심에 놓인다. 저평가 해소는 투자자만의 과제가 아니다. 투자자가 좋은 기업을 알아보고 오래 보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업이 이익을 주주와 나누겠다는 원칙을 세워야 하고, 정책이 그 원칙을 뒷받침하는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투자자와 기업과 정책, 셋이 같은 방향을 볼 때 비로소 저평가는 풀린다. 한 축만 움직여서는 나머지 두 축이 발목을 잡는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변화의 앞자리에 반도체 기업이 있다. 에스케이(SK)하이닉스는 2026년 8월 이사회에서 40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사들여 전량 소각하기로 결정했다. 발행주식의 약 3.3%에 해당하는 물량으로, 국내 상장사가 결의한 자사주 소각 가운데 역대 최대 규모다. 환원은 소각만이 아니다. 2025~2027년 주주환원 목표를 잉여현금흐름(FCF)의 ‘50% 이내'에서 ‘50% 이상'으로 올렸고, 배당도 함께 늘리기로 했다.
자사주 소각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자사주를 사서 없애면 시장에 남는 주식 수가 줄어든다. 같은 이익을 더 적은 주식이 나눠 갖게 되므로, 주당 가치가 올라간다. 배당이 현금을 나눠 주는 방식이라면, 소각은 주식이라는 몫 자체를 키우는 방식이다. 미국 증시가 오랜 상승을 이어온 배경에도 같은 원리가 있다. 꾸준한 매입과 소각으로 상장 주식 수 자체가 줄면, 남은 주식의 값어치는 올라간다. 소각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주주가치를 구조적으로 끌어올리는 장치다.
삼성전자도 방향은 같다. 삼성전자는 2026년 총 90조~110조원 규모의 주주환원 계획을 밝혔다. 3분기에만 약 30조원의 현금배당이 포함된다. 2024년부터 3년간 잉여현금흐름의 50%를 주주에게 환원하는 정책을 이어왔고, 그 안에서 자사주 소각도 여러 차례 실행했다.
두 회사가 택한 방식은 다르다. SK하이닉스는 소각에, 삼성전자는 배당에 무게를 뒀다. 방식이 갈린 데는 지배구조와 법률상 제약이라는 배경이 있다. 방식의 차이는 본질이 아니다. 사상 최대 실적으로 벌어들인 돈을 공장에만 쏟아붓지 않고 주주와 나누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벌어들인 돈을 주주에게 돌려주겠다는 원칙이 반도체에서 먼저 자리를 잡고 있다. 이익 전망은 그대로인데 값을 못 받아온 시장에서, 그 이익을 주주와 나누겠다는 선언이 시장을 이끄는 두 기업으로부터 나왔다. 이 변화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대한상의 제공·청와대사진기자단
우리가 가는 길을 먼저 걸어간 나라가 있다. 일본 증시는 오랫동안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말과 함께 저평가의 대명사였다. 흐름을 바꾼 것은 도쿄증권거래소의 개혁이다. 거래소는 2023년부터 PBR 1배에 못 미치는 기업에 저평가의 원인을 스스로 진단하고 개선 계획을 공시하도록 요구했다. 개선 계획을 낸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을 공개하는 방식으로 압박도 더했다.
결과는 숫자로 나타났다. 프라임 시장에서 PBR 1배 미만 기업의 비중은 2022년 7월 50%에서 2026년 3월 27%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저평가 기업의 절반이 저평가에서 벗어난 셈이다. 주주환원도 급증했다. 2024회계연도 도쿄증시 상장기업의 주주환원 총액은 41조엔에 이르렀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합한 규모로, 전년보다 42% 늘어난 수치다.
저평가 기업의 변화를 요구하는 행동주의 투자자의 목소리도 더해졌다. 거래소와 기업과 투자자의 삼박자가 맞물렸다. 주가는 변화를 따라 움직였다. 2012년 말 9600선에 머물던 닛케이225지수는 2024년 4만 선을 넘어섰고, 2025년 말에는 5만 선을 돌파했다. 지배구조 평가에서도 일본의 위상은 달라졌다.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 평가에서 일본은 2012년 공동 4위에서 2023년 2위까지 올라섰다. 일본의 교훈은 분명하다. 저평가는 방치하면 그대로 굳어지지만, 거래소와 기업과 투자자가 함께 움직이면 풀린다. 교훈은 하나 더 있다. 일본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았다. 2013년부터 10년 넘게 꾸준히 개혁을 이어온 결과다. 저평가 해소에 지름길은 없다.
대만의 사례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대만과 한국은 닮았다. 두 나라 모두 증시를 반도체가 이끈다. 2026년 예상 기준으로 정보기술(IT) 산업이 전체 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만이 약 75%, 한국이 약 70%다. 산업 구조가 이토록 비슷한데, 시장의 평가는 크게 다르다. 티에스엠시(TSMC)의 PER은 약 24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합친 PER은 6.7배 수준에 그친다. 같은 반도체인데 왜 차이가 날까? 답은 신뢰다. TSMC는 반도체 경기가 나쁜 시기에도 주당 배당금을 줄이지 않았다. 좋을 때만 주주를 챙기는 것이 아니라, 어려울 때도 주주를 우선한다는 사실을 오랜 시간 숫자로 증명했다. 안정적인 수익성,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의 독점적 지위, 글로벌 자본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상장 구조가 더해졌다. 이익이 크다는 이유만으로 프리미엄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익이 꾸준하고 그 이익을 주주와 나누는 태도가 일관됐기 때문이다.
시장은 이익의 규모만 보지 않는다. 이익이 얼마나 꾸준한지, 그 이익을 주주와 나눌 의지가 얼마나 일관된지를 본다. 한 번의 큰 환원보다 매년 이어지는 환원이 더 큰 신뢰를 만든다. 한국 반도체 기업은 이미 인공지능(AI)과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갖췄다. 선행 EPS 추정치가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이 실력을 뒷받침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꾸준함을 증명하는 일이다. 이번 자사주 소각과 배당 확대가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원칙으로 이어진다면, 한국 반도체도 대만이 받는 평가에 다가설 수 있다. 실적은 이미 증명했다. 남은 것은 태도다. 변화는 반도체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업가치 제고 계획, 이른바 밸류업 공시에 참여한 기업은 꾸준히 늘고 있다.
2024년 5월 이 제도가 시행된 뒤 공시를 완료한 기업은 750여 개에 이른다. 공시 기업의 시가총액을 합치면 코스피와 코스닥 전체의 80%를 넘어선다. 시장의 대부분이 기업가치를 스스로 끌어올리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오랫동안 저평가받던 금융 업종의 변화가 특히 두드러진다. 케이비(KB)금융지주는 금융지주 가운데 처음으로 PBR 1배를 넘어섰고, 신한금융지주는 주주환원율 상한을 없앤 밸류업 계획을 내놓으며 속도를 높였다. 한 기업의 변화가 같은 업종의 다른 기업을 움직이는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다.
정책도 뒷받침하고 있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 전체의 비례적 이익'으로 넓히는 상법 개정이 추진됐다. 이사가 회사만이 아니라 모든 주주를 위해 일해야 한다는 원칙을 법에 새기는 일이다. 자사주를 사들이면 소각하도록 유도하는 규칙, 2026년부터 시행되는 배당소득 분리과세도 배당을 늘릴 유인을 구조적으로 키우고 있다. 투자자의 요구, 기업의 실행, 정책의 설계가 처음으로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
성과도 이미 나타났다. 2025년 코스피는 75.6% 상승하며 주요 20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주주환원과 지배구조 개선을 기준으로 선별한 밸류업 지수는 2026년에도 코스피 상승률을 웃돌고 있다. 기업 실적 개선, 주주환원 확대, 자본시장 제도 변화가 함께 만들어낸 결과다. 저평가 해소가 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는 현실이라는 증거다. 저평가 해소는 어느 한 주체의 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업은 벌어들인 돈을 주주와 나누는 원칙을 세우고, 좋을 때뿐 아니라 어려울 때도 원칙을 지켜야 한다. 정책은 일반주주를 보호하고 주주환원을 장려하는 규칙을 촘촘히 만들어야 한다. 투자자는 주주환원을 실천하는 기업을 알아보고, 오래 머무르며, 필요할 때 목소리를 내야 한다. 셋 중 하나라도 빠지면 변화는 다시 멈춘다. 이익은 이미 나오고 있다. 선행 EPS 추정치가 유지된다는 사실이 말해준다.
지금 부족한 것은 실적이 아니라, 그 실적을 주주와 나눈다는 신뢰다. 일본은 10년 넘게 길을 걸어 지금의 자리에 섰다. 대만은 흔들림 없는 꾸준함으로 프리미엄을 얻었다. 한국의 변화는 이제 막 반도체에서 시작돼 시장 전체로 번지고 있다. 시작이 늦었을지는 몰라도, 방향은 옳다. 변화가 한 번의 유행으로 끝나지 않고 원칙으로 뿌리내린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오래된 이름은 언젠가 코리아 프리미엄으로 바뀔 것이다. 변화는 이미 우리 눈앞에서 시작됐다. 이제 남은 일은 투자자와 기업과 정책이 함께 끝까지 걸어가는 것이다. 함께 가야 멀리 간다.
이광수 경제평론가·‘광수네, 복덕방’ 대표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노인 무임승차’ 적자 이유 70살로?…초고령 일본은 어떨까

김상욱 재산 50억, 넉달 새 12억 늘어…추경호 42억, 추미애 36억
![[인터뷰] 구글 떠난 연구원 “AI는 스스로 자란다, 해결책도 없다” [인터뷰] 구글 떠난 연구원 “AI는 스스로 자란다, 해결책도 없다”](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929/53_17906322842319_20260928503585.jpg)
[인터뷰] 구글 떠난 연구원 “AI는 스스로 자란다, 해결책도 없다”

생방 중 “대통령 모시고 식사하러”…송영길, 인터뷰 갑자기 끊더니

이 대통령 “지뢰사고 철저히 조사…음모론 부추기면 안보 위태”

친러 언론인 “우크라, 한국 패트리엇 못 받아 보복…비밀 깨고 포로송환 공개”

영화 ‘암살자(들)’ 제작진, 경찰에 고발돼…명예훼손 혐의

“부엉이바위 ‘미는자(들)’”…국힘, ‘암살자(들)’ 비판하다 음모론 제기

북, 유엔서 “핵보유국 지위 되돌릴 수 없어”…한국 핵잠수함 추진은 비난
![[단독] 불법 촬영한 5급 외교관도 감경…이유는 “성실히 근무해서” [단독] 불법 촬영한 5급 외교관도 감경…이유는 “성실히 근무해서”](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929/53_17906445034842_20260929500937.jpg)
[단독] 불법 촬영한 5급 외교관도 감경…이유는 “성실히 근무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