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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는 ‘돈로 독트린’ 막을 보루로 남을까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1차 투표서 예상 밖 1위… 청산 못한 군사독재 잔재가 또다시 발목
등록 2026-10-09 10:01수정 2026-10-11 08:37
극우 성향의 자유당 소속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후보가 2026년 10월4일 치른 브라질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득표율 1위로 확정된 직후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AFP 연합뉴스

극우 성향의 자유당 소속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후보가 2026년 10월4일 치른 브라질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득표율 1위로 확정된 직후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다. AFP 연합뉴스


 

하나의 유령이 아메리카를 배회하고 있다. 유령의 정체는 극우다. 그 배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내세운 이념은 ‘먼로 독트린’의 트럼프식 변주로 불리는 ‘돈로(도널드+먼로) 독트린’이다. 라틴아메리카 좌파의 보루 브라질마저 위태로워졌다. ‘유령’이 아메리카 대륙을 집어삼킬 기세다.

2026년 10월4일 브라질에서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선거에 앞선 여론조사에선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현 대통령(노동자당)이 38~41%의 지지율로 1위를 유지했다. 그의 최대 경쟁자인 극우파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자유당 후보는 33~37%를 기록했다. 선거 결과는 달랐다. 룰라 대통령은 45.16%를 득표했다. 보우소나루 후보는 47.03%를 얻었다. 과반 득표자가 없어 10월25일 룰라 대통령과 보우소나루 후보는 결선투표를 벌이게 됐다. ‘보우소나루’는 낯익은 이름이다.

 

낯익은 이름 ‘보우소나루’

 

플라비우 보우소나루는 1981년 4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군부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 현역 장교였다. 그는 대학 입학 직후부터 정치인으로 변신한 아버지의 소속 정당에서 ‘정규직 당직자’로 일했다. 스물두 살 때인 2002년엔 아버지의 ‘텃밭’인 리우데자네이루 주의회 의원으로 당선됐다. 2018년엔 연방 상원에 진출했다. 아버지의 후광 속에 인생의 절반 이상을 정치인으로 살았다는 뜻이다. 보우소나루 후보의 아버지는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1955년 상파울루의 이탈리아계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친미 군사독재의 황금기였던 1974년 브라질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한 그는 1980년대 중반 군사독재가 몰락하고 민간정부가 들어서자 1988년 대위로 전역했다. 전역 직후 치른 지방선거에서 리우데자네이루 시의원에 당선된 그는 1991년 연방 하원으로 정치무대를 옮겼고, 당적을 계속 바꿔가며 선수를 늘렸다.

애초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정치권의 주류가 아니었다. 극단적 발언과 극우적 행태 탓이다. 하지만 룰라 대통령의 후계자인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이 2016년 보수 진영의 ‘헌정 쿠데타’로 탄핵당한 직후부터 상황이 바뀌었다. 그는 극우정치 세력의 구심점으로 떠올랐고, 2018년 대선에서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 ‘남미의 트럼프’를 자처한 보우소나루 집권과 때를 같이해 ‘쿨한 독재자’를 자처한 나이브 부켈레가 엘살바도르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돈로 독트린’의 서막이었다.

부패 혐의로 투옥됐던 룰라 대통령이 복귀된 뒤 치른 2022년 대선 결선투표에서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은 1.8%포인트(약 210만 표) 차로 패했다. 그는 지지자와 군부를 동원해 ‘친위 쿠데타’를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임기를 마치기도 전에 미국으로 도주했던 그는, 귀국 뒤 내란 혐의로 기소돼 2025년 9월 징역 27년3개월형이 확정됐다. 보우소나루 후보는 이번 대선 과정에서 부친의 석방과 정치적 복권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극우 구호 쉽게 먹힌 이유

 

브라질 헌법은 대통령의 3연임을 금한다. 다만 중임은 허용한다. 재선 뒤 물러났던 룰라 대통령은 80살 고령이다. 이번이 마지막 연임일 터다. 보우소나루 정권의 총체적 코로나19 대응 실패를 딛고 집권한 그는 브라질 경제를 안정적 ‘회복성장’의 길로 이끌었다. 그가 재집권하기 직전인 해인 2022년부터 2025년까지 브라질의 경제 규모는 약 8.9% 커졌다. 2022년 9.3%였던 실업률은 2026년 2분기에 5.4%까지 떨어졌다. 빈곤율도 2022년 31.3%에서 2024년 말 23.1%까지 떨어졌다.

특히 룰라 대통령과 집권 노동자당은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정책에 집중했다. 최저임금법을 개정해 최저시급을 높였고, 공공부문 고용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우대 정책을 확대했다. 성별에 따른 임금차별도 금했다. 출산휴가도 확대했고, 비정규직 소액대출 지원 사업을 도입해 지지층의 환호를 끌어냈다. 하지만 청산하지 못한 군사독재 잔재가 그의 발목을 또다시 붙잡았다. 기득권층은 끊임없이 정권을 흔들어댔다. 극단적으로 갈린 여론이 그 결과다.

브라질 보수의 ‘3대 기둥’이 있다. 이른바 ‘3비’(3B)다. 첫째, 비프(Beef·소고기)다. 브라질은 농축산업이 국내총생산(GDP)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농업대국이다. 거대 농축산 기업의 로비력은 막강하다. 이들은 룰라 정부의 환경보호와 확장재정에 맞서, 무한 개발과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극우세력을 지원한다. 둘째, 바이블(Bible·성경)이다. 브라질은 여전히 ‘세계 최대 가톨릭 국가’지만, 한때 80~90%를 넘나들던 가톨릭 인구는 현재 50% 안팎까지 줄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인구의 25~30%로 추산되는 이른바 ‘복음주의 개신교’다. ‘가족의 가치’를 내세운 이들은 낙태와 동성애 등을 악마화하는 보수적 이념의 온상이다. 셋째, 불릿(Bullet·총알)이다. 마약조직이 기승을 부리는 브라질은 강력범죄가 만성화했다. ‘범죄와의 전쟁’과 ‘법과 질서’ 등 극우의 으뜸 구호가 쉽게 먹혀드는 이유다.

2026년 10월4일 치른 대선 1차 투표에서 극우 성향의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자유당 후보에게 밀려 2위를 기록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개표 뒤 지지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2026년 10월4일 치른 대선 1차 투표에서 극우 성향의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자유당 후보에게 밀려 2위를 기록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개표 뒤 지지자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 미국 대선에서 패한 뒤에도 남미에선 ‘트럼프주의’가 횡행했다. 극우 성향인 산티아고 페냐(파라과이), 하비에르 밀레이(아르헨티나), 다니엘 노보아(에콰도르)가 2023년 차례로 집권에 성공했다. 그 뒤를 이어 로드리고 페레이라(볼리비아), 호세 카스트(칠레), 나스리 아스푸라(온두라스), 라우라 델가도(코스타리카), 아벨라르도 에스프리에야(콜롬비아), 게이코 후지모리(페루)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들 모두 트럼프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내세워 꾸린 ‘아메리카의 방패’의 주요 구성원이다.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의 내란재판 최종심을 앞둔 2025년 트럼프 대통령은 브라질 대법원을 향해 ‘무죄 석방’을 강요한 바 있다. 룰라 대통령은 ‘관세 협박’ 때와 마찬가지로 “주권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란 말로 맞받았다. ‘룰라의 패배’는 ‘브라질의 패배’에 그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25일 결선도 ‘흐림’… 투표율 관건

 

결선은 어떨까? 대선 1차 투표와 함께 치른 총선에서도 집권 노동자당은 크게 밀리며 의회 권력을 극우 연합에 내줬다. 결선투표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건 대선 1차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유권자가 제법 많다는 점이다. 브라질은 참정권 행사가 ‘국민의 의무’다. 투표에 불참하면 1천원 수준의 ‘상징적 벌금’을 내야 한다. 이번 대선 1차 투표율은 78.92%, 2022년 대선(79.05%)보다 약간 낮다. 등록된 유권자 약 1억5870만 명 가운데 약 3340만 명(21.08%)이 투표하지 않았다. 결선투표는 통상 1차 투표 때보다 투표율이 높다. 브라질을 구할 수 있는 건 이들의 참여뿐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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