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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 원베일리와 10평 원룸, 정치는 누구 편에 서야 하나

10평 원룸 월세가 26억원 아파트 보유세의 1.6배…존 롤스의 ‘최소 극대화 원칙’이 정책 기준 돼야 할 때
등록 2026-03-26 20:15 수정 2026-03-29 16:40
서울 남산에서 내려다본 마포구 일대 아파트들. 한겨레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서울 남산에서 내려다본 마포구 일대 아파트들. 한겨레 류우종 선임기자 wjryu@hani.co.kr


요즘 답을 찾고 있는 질문이 하나 있다. “정치는 왜 하는가?” 주식과 부동산 시장을 이야기하고 투자와 경제를 공부하는 사람이 갑자기 정치라니, 독자가 의아해할 만하다. 6·3 지방선거가 다가오기도 하고 뉴스를 봐도 온통 정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도 정치적 선택이었다.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정치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갑자기(?) 하게 됐다. 경제에서도 정치의 역할이 크다. 중요한 경제 제도, 법률, 규칙 등도 정치가 결정한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정치가 미치는 영향이 크다.

 

가장 어려운 사람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선택

 

내란을 극복한 이후 한국 사회에서 좋은 정치에 대한 기대가 점점 커지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정치가 안정되고 신뢰를 얻을수록 오히려 사람들이 정치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내서 실시간 국무회의 생중계를 찾아보고 정치 기사를 열심히 읽는다. 대통령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관심을 갖고 정치인들의 영상을 즐겨 찾는다. 그렇다면 다시 답을 찾아야 할 시간이다. “정치는 왜 하는가?”

답을 찾기 위해서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롤스는 우리에게 한 가지 가상의 상황을 제안한다. 우리가 사회의 규칙을 정하기 위해서 모인 설계자라고 상상해보는 것이다. 이 상태를 ‘원초적 입장’이라 부른다. 설계자들은 회의실에 들어간다. 다만 이때 설계자들은 ‘무지의 베일’(The Veil of Ignorance)을 써야 한다. 무지의 베일을 쓰면 자기 정보를 전혀 알 수 없게 된다. 나의 재산, 학력, 능력 그리고 지위 등을 모르는 상태로 변한다. 이 상태에서 사회를 설계해야 한다.

가정해보자. 설계자들은 상위 10%가 부의 90%를 가지는 불평등 사회 혹은 모두가 평등하지만 전체적으로 조금 가난한 사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무지의 베일을 쓴 설계자들이 불평등 사회를 선택할 가능성은 작다. 베일이 걷혔을 때 내가 하위 90%에 속할 확률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최소 극대화 원칙’(Maximin Principal)이다. 자연스럽고 당연한 선택이다. 최소 극대화 원칙은 가장 불리한 사람들의 상태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그들의 상태를 최대한 끌어올리는 방향을 선택하는 것을 말한다. 롤스의 최소 극대화 원칙은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선택이 가장 최선임을 말해준다.

 

정치란 최소를 극대화하는 행위

 

 

롤스의 최소 극대화 원칙은 정치철학을 넘어 경제학, 특히 후생경제학에서 중요한 분석틀로 사용된다. 경제학자들은 사회 전체의 행복(후생)을 측정하기 위해서 사회후생함수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사회후생함수에 따르면 사회의 후생은 개인들의 효용을 어떻게 집계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가장 단순한 형태는 개인 효용의 합이다. 모든 사람의 효용을 더한 값이 클수록 좋은 사회라고 본다. 이 접근은 효율성을 중시한다. 총생산이 증가하면 사회후생도 증가한다. 성장 중심의 정책과 잘 맞는다. 하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한계효용 체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부유한 사람에게 추가 100만원의 소득이 주는 효용은 작다. 반면 가난한 사람에게 같은 소득은 훨씬 큰 효용을 만든다. 그래서 사회후생함수는 다른 형태로 확장된다. 개인의 효용에 가중치를 두는 방식이다. 저소득층의 효용에 더 높은 가중치를 부여한다. 분배를 고려한 후생 평가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롤스의 접근법 최소 극대화의 원칙이 적용된다. 사회후생을 가장 낮은 효용 수준으로 정의한다. 즉, 사회후생함수를 ‘최솟값’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사회후생 = min(U₁, U₂, …, Uₙ)

즉, 가장 불리한 개인의 효용이 사회 전체 후생을 결정한다. 이 경우 정책 방향은 명확해진다. 최저 소득층의 효용을 높이는 것이 최우선이 된다. 결국 사회후생함수의 선택은 가치 판단이다. 총합을 극대화할 것인가, 혹은 불평등을 고려한 가중합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가장 불리한 사람의 상태를 기준으로 할 것인가. 선택이 달라지면 정책도 달라진다. 같은 경제라도 전혀 다른 사회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후생경제학은 단순한 계산이 아니다.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정치는 왜 하는가?” 이 질문의 답은 선택에서 나온다. 정치는 선택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떤 기준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존 롤스가 말한 최소 극대화 원칙은 분명하다. 가장 불리한 사람의 상태를 끌어올리는 것. 그 기준을 사회의 목표로 삼는 것. 그래서 정치는 최소를 극대화하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2026년 3월17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보유세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2026년 3월17일 서울 송파구 잠실동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보유세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실효세율 0.18%, 감당 못할 수준인가

 

이렇게 되면 질문은 더 선명해진다. 한국의 정치는 어떤 기준을 선택하는가? 최소를 끌어올리는가 아니면 반대로 가는가?

최근 일간지에 실린 뉴스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공시가격이 오르면서 보유세 부담이 커졌다는 이야기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서울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18.67% 상승했다. 공시가격이 오르자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도 함께 늘었다. 서울에서 아파트를 보유한 사람들 사이에서 세금 부담이 크다는 불만이 이어진다. 심지어 부담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목소리도 크다.

실제 부담은 어느 정도일까?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84㎡)를 보유한 경우 2026년 보유세는 약 2850만원 수준이다. 월로 환산하면 약 238만원이다. 성동구 행당동 서울숲리버뷰자이(84㎡)는 약 480만원, 월 약 40만원 수준이다. 세금은 누구에게나 부담이다. 줄이고 싶은 마음도 자연스럽다. 그렇지만 숫자를 차분히 볼 필요가 있다. 래미안원베일리는 약 60억원에 거래된다. 이를 기준으로 보면 실효세율은 약 0.48% 수준이다. 서울숲리버뷰자이는 약 26억원에 거래된다. 실효세율은 약 0.18% 수준이다. 수치를 이렇게 보면 보유세가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인지를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국제 비교도 중요하다. 한국의 보유세 실효세율은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은 편이다. 일부에서는 보유세 증가율이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보유세 비율(1.0%)이 OECD 평균(0.95%)과 엇비슷한 수준이라는 이유로 보유세 인상이 과도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증가율이 아니라 절대 수준, 그리고 자산 가격과의 관계를 함께 봐야 한다.

 

정치는 중립이 아니다, 선택하라

 

시선을 바꿔서 이 쟁점을 살펴볼 필요도 있다. 집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아직 가지지 못한 사람의 관점에서 이 사안을 보는 것이다. 서울에서 아파트를 사기 위해서는 월평균 약 500만원을 25년 동안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 현실과 거리가 멀다. 많은 무주택자에게 내 집 마련은 사실상 닫힌 문이 됐다.

더 보자. 2025년 12월 기준, 서울 전용면적 33㎡ 이하 연립·다세대 원룸의 평균 월세는 약 64만원이다. 10평 남짓한 공간으로 방 하나, 작은 주방, 욕실 하나면 끝나는 그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매달 내는 돈이다.

그렇게 같은 서울 하늘 아래서 한쪽에서는 26억원 아파트를 보유하며 월 40만원 수준의 보유세를 내고, 다른 한쪽에서는 집이 없어 10평 남짓한 공간에 살며 월 64만원의 월세를 낸다. 이 대비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사회가 어떤 기준을 선택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정치는 결국 방향이다. 누구의 부담을 줄이고, 누구의 삶을 끌어올릴지에 대한 선택이다. 롤스의 최소 극대화 원칙을 따른다면 답은 분명하다.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의 삶을 먼저 끌어올려야 한다. 그러니 보유세를 둘러싼 논쟁도 같은 기준에서 다시 봐야 한다. 자산을 가진 사람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우선인가? 아니면 가격 상승으로 주거조차 불안정한 사람의 삶을 안정시키는 것이 먼저인가?

정치는 중립이 아니다. 언제나 누군가의 편에 서야 한다. 그렇다면 물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묻는다. 정치는 왜 하는가? 좋은 답을 찾기 위한 기준을 기억하자. 바로, 최소 극대화 원칙이다.

 

이광수 경제평론가·‘광수네, 복덕방’ 대표

 

*소수의 성취보다 다수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꾸며 투자와 경제를 이야기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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