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러시는 19세기 중반 미국 캘리포니아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1930년대 조선은 황금광 시대로 불릴 만큼 골드러시 열풍이었습니다. 선구는 평안북도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최창학으로 1923년 고향 인근에서 거대한 금광을 발견합니다. 조선 3대 금광 중 하나인 삼성금광의 탄생입니다. 최창학은 금을 채굴해 수백만원을 번 것에 더해 5년 뒤 일본 대기업 미쓰이에 금광 자체를 300만원에 양도해 일약 600만원의 거금을 지닌 벼락부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금광 개발 열망의 불을 붙였습니다.
채만식의 <금의 정열> 도입부에 일본 유학파 지식인 서순범이 금광으로 거부가 된 친구 주상문을 소개하는 대목은 이렇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해두, 알구 보면 광자 붙은 친구라네. 금광을 한다는 광(鑛)자가 조선말로 미칠 광(狂)자하고 발음이 같으니.” 黃金鑛(황금광) 시대는 동시에 黃金狂(황금광) 시대였던 것입니다. 금광 개발에 몰두하던 주상문은 광주시 임곡동 백산금광에서 노다지를 발견한 뒤 거부가 되고 금광 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합니다. 그는 야박한 성품은 아니나 사업에는 치밀하고 수완이 좋습니다. 청주에서 300만 평이나 되는 대규모 사금 광구를 개발할 때입니다. 다들 하는 것처럼 광부를 고용해 손으로 파게 하는 수굴 작업을 접고 트렌처라고 하는 첨단 장비를 도입합니다. 가격이 70만원이나 하는 초고가 장비입니다. 수작업과 기계화의 장단점을 비교하는 대목은 마치 회계사의 보고서만큼이나 수치가 정확하고 빈틈이 없습니다.
광주 건달 김봉식은 성매매업으로 번 전 재산 2만원을 털어넣어 백산금광 옆에 100만 평짜리 광구 개발에 나서지만, 1년 내내 허탕을 쳐서 파산 위기에 몰려 있습니다. 주상문은 속으로 이 광구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고 실비인 2만원을 쳐줄 테니 넘기라고 하지만 욕심난 봉식은 계속 튕깁니다. 상문이 가격을 5만원까지 올리자 10만원을 내라며 큰소리칩니다. 괘씸하게 생각한 상문은 파격적인 조건으로 동업을 제안하고 봉식은 이를 덥석 물지만 이것은 함정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봉식은 사정사정해서 2만원만 받고 손을 터는데, 이렇게 뛰어난 수완을 소설가가 어떻게 알았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공부 욕심이 많았던 서순범은 중학을 졸업한 다음 보통학교 교사로 6년간 근무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읍니다. 그렇게 학비를 마련해 도쿄의 사립대학을 졸업하고 돌아왔지만 그의 이력서를 약장사 광고지 취급하는 세태에 절망합니다. 상문은 순범에게 자신과 같이 금광업을 하자고 제안하고 순범은 망설입니다.
어느 날 순범은 변호사 민씨, 의사 신씨, 보험판매원 최씨와 함께 고급 요정에서 기생을 여럿 불러놓고 술판을 벌입니다. 민씨가 300원을 들여 개발권을 딴 남원 금광을 1년 만에 3만5천원에 신씨에게 넘기고 거래 성사를 축하하는 자리입니다. 최씨는 이 거래를 중개한 이고, 순범은 두루 아는 사이라 같이 낀 것입니다. 얘기하다보니 순범을 빼고 기생까지 죄다 금광에 투자한 상태입니다.
순범은 신씨에게 ‘병원까지 넘기고 금광으로 전업한 심경’을 묻습니다. 신씨는 돈도 돈이지만, “갑갑해서 그랬다”고 답합니다. 그러자 민씨가 자신도 갑갑해서 금광에 뛰어들었다고 공감을 표합니다. 의사 신씨는 ‘밤이나 낮이나 그놈의 낑낑 앓아쌓는 병자들’ 만나는 게 지겹고, 변호사는 ‘그놈의 야박스런 쌈꾼(소송인)만’ 상대해야 하는 게 질렸던 차에 가슴이 확 트이는 일확천금 금광 사업에 혹했다고 합니다. 순범은 과거에 이들의 인간성이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고향 친구의 우정을 느꼈으나, 세속적이고 의식주의 노예라 생각해 경멸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열정에 전염돼 이내 존경과 경이감을 느끼게 됩니다.
1939년 조선에서 1원의 가치는 얼마였을까요? 소득과 재산,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중요한 소설이기 때문에, 소설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화폐 가치에 대한 감이 필요합니다. 우선 인플레이션이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박기주와 김낙년이 2011년 발표한 장기소비자물가지수 추계에 의하면 1936년의 1원은 2009년의 6294원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더해 실질경제성장에 따른 소득수준 상승, 경제구조의 변화, 사람들의 부에 대한 인식 등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국문학자 전봉관은 역사서 <황금광시대>(2005)에서 직접 비교는 불가능하다고 단서를 달면서도,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1930년대와 현재의 화폐가치를 일괄적으로 1원 대 10만원으로 단순 환산해 서술했습니다. 대략 성장 효과를 15배 정도로 한 것입니다. 딱 맞지는 않겠지만 소설 속 금액을 느끼는 데는 적절한 것 같습니다.
당시 경제 환경도 조선의 황금광 시대 개막의 중요한 계기입니다. 1913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주요국은 모두 금본위제를 채택하고 있었습니다. 금본위제는 금으로 만든 정화(正貨) 또는 금태환 지폐를 사용하는 통화체제입니다. 지폐를 금과 교환할 수 있고 국제 거래 결제 등을 위해 금을 자유롭게 수출입할 수 있습니다. 전쟁이 발발하자 일본을 포함한 각국 정부는 금의 지나친 국외 유출을 우려해서 금태환과 금 수출을 금지했습니다. 1918년 종전과 함께 미국이 금 수출을 다시 허용했고, 일본을 제외한 각국이 뒤를 이었습니다. 국내외에서 금본위제 복귀 압력을 받은 일본은 결국 1930년 1월 금 수출 금지를 해제했고(金解禁, 금해금), 뒤이어 일본에서 막대한 금태환과 국외 유출이 벌어졌습니다. 사태가 더 악화하자 일본 정부는 1931년 말 금 수출을 다시 금지합니다(金再禁, 금재금).
<금의 정열>에는 이 시기 일본 정부가 조선에 강력하게 부가한 금 생산 확대, 민간 보유 금 회수 및 국외 유출 방지 조처와 함께 이를 피해나가는 금 밀수 조직의 활동도 잘 서술돼 있습니다. 말단은 방물장수들입니다. 바느질 도구나 화장품 판매의 주업은 뒷전이고 아녀자들이 가진 금가락지, 금비녀를 사들이는 데 더 열심입니다. 수익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크기 때문입니다. 방물장수에서 접주로, 또 접주에서 대접주로 이어지면서 모인 금은 압록강 넘어 중국과 만주로 몰래 밀수출됩니다. 일본 순사들은 이를 잡기 위해 혈안입니다.
현실에서 채만식의 형들은 금광 개발에 많은 경력을 가진 덕대(광산주와 계약을 맺고 광산 일부를 떼어 맡아 광부를 데리고 채광하는 사람)였습니다. 일본 유학을 다녀온 지식인 작가 채만식은 소설을 쓰는 한편 광산 투자자를 모으는 일에도 열심이었습니다. 주경야독은 아니고 주광야작이라고 해야 할까요. 순범의 모습에서 채만식이 지녔던 생각의 흐름이 느껴집니다.
채만식은 1902년 전라북도 옥구군(현재 군산시에 편입) 부농 집안에서 태어난 작가입니다. 고향에서 보통학교를 다니고 서울의 중앙고보를 졸업해 와세다대학 유학길에 오르나 학업을 마치지 못했습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 전업 작가의 길에 나섰고 소설, 희곡, 수필 등 수백 편의 작품을 발표하였습니다. 친일작가 논란이 있으며 1950년 49살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국문학자들이 가장 많이 연구하는 근대 작가 중 한 명이며 대표작은 <태평천하>와 <탁류>입니다. <금의 정열>은 1939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뒤 1941년 영창서관에서 출간했는데, 문단에서는 다소 격이 떨어지는 통속소설로 취급한다고 합니다. 당시 최대 현안이었던 황금광 열풍을 소재로 삼고 경향 각지의 풍속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통속이라고 하는 것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묘사하는 사회·경제적 모습은 논픽션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생생하고 풍부합니다. 채만식의 작품 중 가장 사실주의적 전통을 잘 구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신현호 이코노미스트·<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저자
*일반인이 경제현상에 쉽게 다가가고 동시에 경제와 금융 종사자가 소설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소설 속에서 경제를 발견하는 연재입니다. 2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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