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후반부터 20대의 소득 증가율이 다른 연령보다 높아졌지만, 부채 증가율은 더욱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벌이가 늘어났지만 빚은 더 많이 늘었다는 얘기다. 특히 코로나19 대유행을 거치면서 부채 증가율은 더욱 높아져, 이른바 ‘엠제트(MZ)세대’의 삶이 갈수록 궁핍해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2024년 1월25일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를 보면, 2016~2022년 가계의 실질 평균 처분가능소득의 증가를 이끈 두 연령대는 20·30대 청년층(각각 1.8%, 2.2%)과 60대 이상 고령층(3.4%)이었다. 특히 코로나19 위기 전후(2019~2022년)로 좁히면 20대(2.3%)와 60대 이상(5.0%)이 두드러진다. 이를 반영하듯, 가계의 실질 평균 소비지출 증가율 역시 20대(2.7%)와 60대 이상(3.2%)에서 높았다.
특히 20대에서는 연평균 3천만원 이상을 소비하는 가구 비중이 2016년 5%에서 2022년 16.6%로 급증해, 같은 연령대 안에서도 소비지출 격차가 커지고 있음을 보였다. 5천만원 이상을 소비하는 20대도 같은 기간 0.2%에서 1.9%로 늘었다.
부채는 이보다 더 빨리 늘었다. 2016~2022년 평균 부채의 연평균 상승률은 젊을수록 높았다. 20대가 9.8%로 가장 높았고 30대(6.4%), 40대(4.3%), 50대(1.6%), 60대 이상(1.0%) 순이었다. 코로나19 대유행 전후로 따져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늘어나는 빚은 20대의 원리금 상환액 상승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원리금 상환액의 연평균 상승률도 20대가 11.6%(2016~2022년), 15.1%(2019~2022년)로 다른 연령보다 훨씬 높았다.
20대 청년의 가계부채 증가는 저금리에 따른 대출 증가가 한몫했다. 특히 2017년 8·2 부동산 대책 이후 청년층의 신규 청약시장 참여가 사실상 배제되면서 갭투자와 전월세 수요 증가, 주식투자 열풍, 온라인 비대면 신용대출 확대, 청년층 전월세 자금 지원 등은 청년층의 부채 증가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8·2 대책은 부동산시장 안정화를 위해 다주택자 중과세와 투기과열·투기 지역을 추가 지정하는 동시에, 청약 1순위 자격을 청약통장 가입 2년이 지나는 것으로 했고 청약가점제 비중을 늘렸다.
청년층의 대출 증가는 최근 주택가격 상승 제약과 고금리 지속으로 전세자금 대출의 원리금 상환 부담 가중은 물론 고물가로 인한 생계비 급증, 경기침체와 취업난에 따른 소득 증가 제약 등으로 청년층이 더욱 궁지로 내몰리고 있음을 뜻한다.
실제 2023년 2분기 20대의 주택담보대출 연체율이 0.44%로 가장 높다(금융감독원). 취약계층에 최대 100만원까지 대출할 수 있는 소액생계비대출의 경우도 2023년 9월 현재 20대의 이자 미납률이 27.4%로 가장 높다(서민금융진흥원). 한편 최근 불거진 전세사기 피해자의 약 70%(20대 21.5%와 30대 48.2%)가 청년층이며(국토교통부), 2022년 기준 20대(65.8점)의 금융이해력 점수가 성인 전체(66.5점)보다 낮다(한국은행·금융감독원). 따라서 사회 경험이 적은 청년층은 전세사기와 불법 주식 ‘리딩방’ 등과 같은 사기성 거래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청년층의 재무건전성이 악화한 것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미국 뉴욕 연방준비제도에 따르면, 2023년 3분기 기준 가계부채는 17조2900억달러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코로나19 대유행 전인 2019년 3분기 13조9400억달러에 비해 24% 늘었다. 연령별 증가율은 30대가 32.0%로 가장 높았고 40대(26.6%), 20대(22.8%), 60대 이상(21.7%), 50대(16.4%) 순이었다. 20·30대 미국 청년의 부채도 과거보다 빠르게 늘고 있지만, 한국처럼 다른 연령에 비해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위험관리 측면에서도 주택담보대출이 가장 큰 문제인 한국과 다르다. 교육·소비와 연관된 신용카드대출, 자동차대출, 학자금대출이 더 큰 문제다. 뉴욕 연준의 소비자 신용 패널/에퀴팩스(New York Fed Consumer Credit Panel/Equifax)에 따르면, 2023년 3분기 현재 20대 부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은 모기지(45.8%), 학자금대출(26.8%), 자동차대출(17.4%), 신용카드대출(6.7%) 등의 순이다. 특히 ‘심각 연체’(serious delinquency)인 90일 이상 연체율은 신용카드(9.3%), 자동차(4.69%), 모기지(0.93%) 학자금(0.25%) 등의 순으로 낮다. 20대의 90일 이상 ‘심각’ 연체율이 경제력이 취약하므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가장 높기는 하지만, 2019년 3분기 4.19%에서 2023년 3분기 2.06%로 떨어졌다.
전반적으로 미국 청년의 재무건전성이 한국보다 나은 편이다. 모기지와 학자금대출과 같이 부채 규모가 큰 것에 위험관리가 되고 있어서다. 특히 학자금대출 연체율이 낮은 것은, 2022년 8월 이후 조 바이든 행정부가 일련의 학자금 부채 탕감 프로그램을 발표한 것에 기인한 바가 크다. 이 과정에서 2023년 6월 미 연방대법원은 대통령의 행정명령만으로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정책을 시행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함으로써 이 계획에 제동을 걸었으나, 이후에도 일련의 탕감 계획을 발표하는 후속 조치가 이어졌다. 그 결과 2019년 3분기에 20대의 ‘심각 연체’라는 90일 이상 연체율이 6.6%였으나 2023년 3분기 현재 0.25%로 떨어졌다. 모기지의 부채 비중이 높기는 하지만, 주요 부채 항목 중에서 그 연체율이 최근에는 1% 이하를 유지함으로써 위험관리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이 말 그대로 차주(돈을 빌리는 사람)의 담보에 기반한 변동금리, 이자 거치 원리금 분할 상환 대출이 많지만, 미국은 우리와 달리 소득 기반이고 은행권의 위험평가가 뒤따르는 고정금리 원리금 균등분할 상환 대출이 주종을 이룬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이런 관행이 더욱 강화됐다.
영국도 미국과 엇비슷하다. 2013년 1월 기준 영국의 ‘금융생활과 생계비 조사’(Financial Lives cost of living)에 따르면 ‘지난 6개월 동안 재무상태가 악화했다’고 답한 비율이 18~24살과 25~34살이 각각 56%와 47%로 높은 비중이기는 하지만 다른 연령대와 비슷했다. 마찬가지로 ‘월간 처분가능소득이 없거나 떨어졌다’고 답한 비율이 각각 67%, 75%로 다른 연령대와 차이가 크지 않다. 또한 ‘부채가 증가했다’고 답한 비율도 34%와 38%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작거나 비슷한 수준이다.
물론 청년층이 고통을 겪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영국의 초당파 싱크탱크인 데모스(Demos)의 2021년 보고서 ‘회복: 팬데믹 이후 청년층(18~30살)의 재무상태 개선’에 따르면, 청년층이 필수적인 소비지출에 전체 평균보다 거의 두 배나 많은 비용을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청년층은 필수 소비지출 중에서도 주거비, 공과금, 여행경비에 더 많이 지출하고 있다.
청년층에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영국 정부는 다양한 ‘금융 포용성’(Financial Inclusion)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예를 들면 부채 문제가 있는 차주에게 전문 부채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2021년 5월 이들에 대해 이자 등 채무 상환을 60일 동안 일시 유예하는 채무상환유예(Breathing Space) 제도를 마련했다. 또한 정신적 위기 진단을 받은 차주를 대상으로 치료가 지속되는 기간에 30일을 더해 채무상환유예 제도가 연장되는 정신건강 위기 유예도 있다. 최근 영국 정부는 ‘법정 채무상환계획’(Statutory Debt Repayment Plan)에 대한 검토와 협의를 통해 채무상환유예를 개선하겠다고 제안했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경제 역동성 저하와 급격한 기술변화에 따른 괜찮은 일자리 기회 제한, 고물가와 고금리로 인한 생활비 급증과 원리금 상환 부담 등으로 청년층이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채무 문제에서 미국은 학자금 탕감 프로그램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비된 가계금융 시스템으로 청년을 벼랑 끝까지 몰지는 않는다. 반면 한국은 가계금융 시스템의 개혁 없이 부실채권을 사실상 무방비로 갱신하는, 즉 빚을 빚으로 막는 에버그리닝(Evergreening) 전략으로 시간을 벌고 있다. 이는 ‘파릇’해야 할 청년을 사실상 사회생활 진입 초기부터 ‘좀비’ 또는 ‘강시’로 만들어 어려운 시기를 맨몸으로 견디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
정준호 강원대 교수·부동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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