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한 외국 기업이 마련한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가 깜짝 놀랐다. 모두(Modu)라는 이스라엘 기반 신생 기업은 생각지도 못했던 제품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조립식 휴대전화’였다. 신용카드보다 작은 휴대전화 본체에 원하는 기능을 끼워 쓰는 콘셉트는 무척 신선했다. 이 프로젝트는 2011년 실패로 끝났다. 디자인은 기대에 못 미쳤고, 다양한 기능으로 확장하지 못했다.
아이디어는 변주된다. 2013년 10월, 구글은 ‘프로젝트 아라’를 공개했다. 모토롤라가 구글에 인수되기 전부터 진행해온 조립식 스마트폰 프로젝트다. 2014년 4월 열린 개발자 행사 ‘구글I/O’에선 시제품도 공개됐다. ‘아라폰’은 본체와 7개 모듈(부품덩어리)로 구성됐다. 목표대로라면 2015년 1월, 이 조립식 폰을 직접 만날 전망이다. 가격도 50달러, 우리돈 6만원이 채 안 된다. 올해 ‘소비자가전쇼(CES) 2014’에선 중국 ZTE가 조립식 스마트폰 ‘에코 뫼비우스’ 시제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스마트폰 화면은 대부분 액정디스플레이(LCD)다. LCD는 10년은 탈 없이 쓸 수 있다. 스마트폰 배터리는 사정이 다르다. 대개는 길어야 2년이면 수명이 다한다. 우리는 스마트폰 1대를 쓰지만, 부품 수명은 제각각이다. 한두 부품에 문제가 생겨 스마트폰을 못 쓰게 되는 일도 잦다.
지금 같은 스마트폰이 굳이 필요한지도 생각해볼 일이다. 적잖은 기능들이 호기심에 한두 번 쓰고 잊어버리는 것이고, 아예 한 번도 쓰지 않는 기능도 있다. 그런 사람이라면 원하는 기능만 갖춘 스마트폰을 싼값에 구매하는 게 낫다. 사회 전체로 봐도 자원 낭비를 줄일 수 있어 이득이다.
조립식 휴대전화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고자 싹튼 아이디어다. 완제품 형태로 사지 않고, 원하는 모듈을 골라 퍼즐 조각 맞추듯 나만의 폰을 조립하면 어떨까. 이번엔 휴대전화 전통 강자 노키아의 나라, 핀란드에 둥지 튼 서큘라디바이스가 도전에 나섰다. ‘퍼즐폰’ 얘기다.
퍼즐폰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두뇌, 심장, 척추다. 두뇌부는 카메라와 모바일 프로세서가 내장됐다. 심장부는 배터리와 부가 전자장치를 담았다. 척추 쪽은 LCD 디스플레이와 스피커, 마이크와 조작 버튼 등을 포함한 본체로 구성됐다. 모든 부품은 표준 규격에 맞춰 제작된다. 초기 제품은 개조한 안드로이드 OS를 운영체제로 쓸 예정이다.
시제품 사진을 보면 구조가 놀랍도록 간단하다. 본체 뒷면 위·아래로 프로세서(두뇌)나 배터리(심장) 부분을 교체하면 된다. 각 구성요소를 하나하나 조립하는 구글 ‘아라’보다 훨씬 단순하다.
사진을 즐겨 찍는 이라면 프로세서와 카메라가 포함된 두뇌 부분을 고사양 모듈로 교체하면 된다. 통화량이 많고 동영상과 게임을 즐긴다면 대용량 배터리를 선택해 ‘조립’하면 그만이다. 이용자로선 필요한 기능을 중심으로 폰을 갖출 수 있어 효율적이다. 고장이 나더라도 해당 부품만 교체하면 되니 값싸고 편리하다. 개발자도 서로 다른 환경에 맞춰 부품이나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않아도 되니 일손이 줄어든다. 제조사는 전세계 단일 고객풀을 갖출 수 있어 시장 확대 효과를 얻는다.
퍼즐폰은 환경에도 이롭다. 낭비되는 부품 수는 줄어들고, 스마트폰 수명은 지금보다 늘어난다. 최신 프로세서나 카메라 모듈로 언제든 교체할 수 있으니, 늘 최신 사양을 유지할 수 있다. 서큘라디바이스 쪽은 “하드웨어 혁신을 위해선 플랫폼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모바일 표준이 나와야 한다”며 “퍼즐폰이 모바일 산업을 환경에 이롭고 지속 가능하도록 바꿀 것”이라고 했다.
더구나 퍼즐폰은 구글 아라폰처럼 ‘오픈소스 스마트폰’이다. 누구든 실력만 있다면 퍼즐폰 기능을 덧붙이거나 오류를 수정할 수 있다. 퍼즐폰을 잉태한 건 핀란드 서큘라디바이스지만, 제대로 성장하도록 키우는 건 전세계 개발자의 몫이다.
서큘라디바이스는 2015년 안에 퍼즐폰을 선보이겠다고 했다. 관건은 가격이다. 50달러 수준인 아라폰과 경쟁하려면 비슷한 가격대를 맞춰야 한다. 생태계를 넓히는 일도 숙제다. 조립폰의 특성상, 제조사가 다양한 모듈을 공급하지 않으면 금세 좌초되기 마련이다. 구글은 아라폰의 연착륙을 위해 오픈 하드웨어 프로젝트 ‘폰블록’과 손을 잡았다. 퍼즐폰의 퍼즐 맞추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희욱 기자 asadal@bloter.net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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