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결혼식의 계절이었다.
토·일요일엔 결혼식 가기에 바쁘다. 5만원의 입장료(축의금)를 내면 식권을 받고 주례사, 축가로 이어진다. 비슷한 기념사진을 찍고 비슷한 뷔페 음식을 먹고 ‘신랑·신부는 어떻게 만났냐’는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 1시간여의 결혼식이 끝난다. 돌아가는 길에 생각해보면 두 사람을 위한 축복을 한 게 아니라, 해야 할 ‘눈도장’을 찍고 퇴근한다는 기분이다.
“신랑·신부가 다른 결혼식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죠.” ‘대지를 위한 바느질’의 이경재 대표는 “강남을 거치지 않으면 결혼식을 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고 진단한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은 서울시 시민청 결혼식과 마을결혼식을 진행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마을결혼식은 서울 강남 청담동에서 결혼식을 맞추는 것이 아닌, 자신이 살았던 지역에서 지역분들의 도움과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하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강남 스타일’을 깨고 싶어 하는 이경재 대표를 지난 9월16일 만났다.
‘색다른 결혼식’은 실패한다?‘강남을 거치는 결혼식’이란 웨딩플래너와 함께 이른바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로 결혼식 준비를 하는 것을 말한다. 웨딩플래너를 통해 청담동 주변에서 결혼사진을 찍을 스튜디오를 고르고, 신부 드레스를 보러 다니고, 결혼식 당일 메이크업을 해줄 미용실을 선택하는 것이다.
결혼을 준비하는 소비자가 이게 싫다고 마음대로 하기는 쉽지 않다. 일단 비싸진다. “‘워킹가’(웨딩플래너를 끼지 않은 경우의 비용)와 ‘업체가’가 정해져 있는데, 워킹가가 더 비싸다. 우리 상식으로는 내가 직접 가서 고르면 도움을 안 받으니 싸야 하잖아. 그런데 더 비싸다. 시장이 이렇게 만들어져 있다.” 또 신부가 드레스를 청담동에서 대여하지 않고 ‘친환경 드레스’를 입고 싶어도 스드메 단위로 계약하다보니 고집을 부리면 비용만 더 든다. 웨딩플래너가 드레스만큼의 비용을 빼주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대형 웨딩컨설팅 업체들이 한국의 결혼시장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스튜디오·드레스숍·미용실·한복집 등과 계약을 맺어 소비자가 이런 구조에 따라오게 만든다. “전부 수수료를 뒷거래로 받는 거죠. ‘신랑·신부를 소개해주면 금액의 몇%를 받는다’ 이런 식으로 뒷돈이 숨겨져 있어요. 강남 쪽은 평균 수수료가 25~30% 정도 된다고 들었어요.” 대형 웨딩컨설팅 업체에 소속된 웨딩플래너들은 수수료를 받아야 하므로 신랑·신부가 청담동에서 준비하는 것과 달리 색다르게 하는 걸 권하지 않는다.
예식장 또한 마찬가지다. 예식장은 결혼식 대관료가 아닌 하객을 대접하는 음식으로 돈을 번다. 잔칫날 식당 앞에서 식권에 민감한 이유다. 일반 음식점처럼 ‘테이블 회전율’이 높아야 돈을 버니, 공장처럼 결혼식을 정형화해서 찍어낸다. “예식장은 일반화된 식순을 좋아한다. 결혼식 25분에 사진 촬영 15분, 식 교대시간 10분 이렇게 진행하면 더 많은 사람에게 밥을 팔 수 있다. 그런데 독특하게 결혼식을 하겠다고 하면 저 시간을 맞출 수 없다. 그래서 예식장에서는 신랑·신부에게 ‘다르게 하면 실패한다’고 설득해서 일반적인 결혼식을 하게 만든다.”
이런 구조에서 소비자와 협력업체는 언제나 ‘을’일 뿐이다. 신랑·신부는 싫든 좋든 똑같은 결혼식을 치러야 한다. 보통 한 번만 하는 결혼식이라 불합리한 점을 발견해도 고치지 못한다. 협력업체 역시 결혼시장 규모가 커져도 돈을 벌지 못한다.
“청담동에서 한복집을 하던 사장님이 나를 찾아온 적이 있어요. 한복만 30여 년 하신 분이었죠. 최근엔 청담동을 떠났어요. 대형 웨딩업체의 하청업체로 버티다 버티다 못해 손을 든 거죠.” 이 업체는 그동안 대형 웨딩컨설팅 업체로부터 신랑·신부 한복 주문을 받았다. 예를 들어 200만원에 한복을 맡으면 수수료 30%는 웨딩업체 몫이다. 그게 끝이 아니다. 웨딩컨설팅 업체가 하는 결혼박람회가 1년에 두 차례 정도 열린다. 여기에는 무조건 참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다음해에 소개 물량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참가에만 경비가 2천만~3천만원이 든다. 이렇다보니 청담동의 높은 부동산 임대료를 감당하면서 유지할 방법이 없다. 이경재 대표는 “신랑·신부도 피해자다. 200만원을 줬지만, 수수료 등을 뗀 훨씬 적은 비용으로 만들어진 한복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없애기 어려운 결혼시장의 턴키 방식이경재 대표는 컵에 든 물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쉴 새 없이 말을 했다. 지난 몇 년간 한국의 상업적인 결혼시장과 부딪히고 싸운 내용은 차고 넘쳤다. 그가 처음부터 마을결혼식을 준비했던 것은 아니다. 의상학과 출신인 그는 ‘대지를 위한 바느질’이라는 회사명처럼 친환경 웨딩드레스를 만들었다. 그는 친환경 웨딩드레스로 2010년 여성 창업가를 위한 대회인 ‘까르띠에 어워드’에서 아시아 대륙 결선에 오르기도 했다.
“처음엔 환경 쪽에서 일하거나 환경에 관심 있는 분들이 고객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친환경에는 시큰둥하고 예쁘고 독특한 것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찾아왔다. 자신만의 결혼식을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해주는 데가 없어서였다.”
이경재 대표의 관심은 자연스레 ‘다른 결혼식’으로 쏠렸다. 먼저 여성가족부 등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의 강당 등을 빌려 작은 결혼식을 하는 사업에 참여했다. 몇 년 전 가 작은 결혼식 캠페인을 할 때라 정부 부처는 쉽게 문을 열어줬다. 그런데 결혼식을 진행할 협력업체에 청담동 업체가 끼면서 사업은 어그러졌다. “청담동 업체가 비정상적으로 낮은 가격을 내걸고 신랑·신부를 다 끌고 갔는데, 나중에는 약속과 다르게 하는 바람에 탈이 나서 협력업체에 위탁하는 사업이 없어졌다.”
서울시 시민청에 제안했던 ‘작고 소박한 결혼식’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혼시장의 시스템이 전부 수수료 뒷거래가 있으니, 청담동 플래너 같은 웨딩컨설팅 업체를 빼자고 했죠. 대신 서울시가 음식, 드레스, 꽃, 스튜디오 등 분야별로 별도의 협력업체를 뽑으면 된다고 했다. 웨딩플래너 비용도 따로 책정하고요. 결국 웨딩컨설팅 업체의 반발 때문에 공무원들이 마음을 바꾸었다.” 이를테면 서울시가 시민 세금 부담을 늘린다고 없앤 턴키 방식(한 건설업체가 설계·시공 전 분야를 맡는 방식)을 결혼시장에선 바꾸는 데 실패한 것이다.
“정부가 추진한 결혼식 협력업체에 무늬만 비영리단체가 들어오고,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다른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이 대표는 요즘 마을결혼식에 집중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추억이 있는 지역에서 결혼식을 하고, 주변에서 장사하는 이웃들이 축하해주고 참여하는 것이죠. 지역에 있는 공간을 결혼식장으로 활용하고요. 요즘은 강남에 가지 않더라도 미용실의 수준이 다 높아요. 이미 프랜차이즈들도 들어왔고, 자격증도 따니까 신부 화장도 다 할 수 있죠. 아예 소개를 안 하니까 모르는 거죠.”
이 대표의 말에서 신이 나기 시작한다. “결혼식장의 뷔페 음식도 바꿀 수 있어요. (마을결혼식을 진행하는) 성북동은 다문화축제를 해요. 소시지나 커리 등 맛있고 재미나는 게 많죠. 오래된 맛집도 많고요. 이분들의 음식을 결혼식에 내놓을 수도 있죠.”
마을결혼식은 ‘추억’과 ‘맛’만을 가져오지 않는다. 마을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강남 일부 지역에서만 돌던 결혼식 비용을 지역에서 돌게 만드는 것이다. ‘대지를 위한 바느질’이 결혼식 피로연 음식을 위탁하는 성북구 장수마을이 그 예다. 장수마을 어르신들은 이 대표의 요청을 받아들여 마을결혼식의 음식을 만들어 제공한다.
“나눠가지는 게 핵심이에요”“70살이 넘으신 분들한테 찾아가 전이나 비빔밥 같은 잔치음식을 만들어주실 수 있는지 여쭤봤죠. ‘예전에 다 하던 건데 뭐가 어렵냐’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처음엔 뷔페업체 전문가를 붙여 5일 동안 음식을 만들었죠. 다음에는 전문가 없이도 3일 걸렸어요. 할머니들끼리 회의를 하신 거죠. 전은 미리 만들어놓았다가 데우면 맛이 없다면서 밤새 전을 만들어주신 거예요. 잔치음식을 따뜻하게 먹으라고요.”
‘대지를 위한 바느질’은 장수마을 할머니들에게 음식값을 지불할 뿐만 아니라 마을 발전기금도 드렸다. 결혼식 뒤 남은 깨끗한 음식은 노인정으로 가져가서 독거노인을 위한 식사로도 이용한다.
“강남을 탈환하자는 것은 아니에요. 서울 동서남북에 이런 마을결혼식이 가능한 거점을 만드는 게 목표죠. 그 지역의 역사에 맞게 결혼식 콘셉트도 짤 수 있을 거 같아요. 저렴하게 하려는 게 아니라 ‘와 예쁘다, 나도 이렇게 하고 싶다’ 이렇게 만들고 싶어요. 수익도 누군가에게 편중되는 게 아니라 지역사회와 나눠가지는 게 핵심이에요.”
이완 기자 wani@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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