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처음에) 돈을 벌겠다고 생각을 못했다. 악성 댓글을 해결하면 삶에 도움이 되겠지 정도였다. 미련했다. 돈을 벌 방법은 생각 안 한 거지.”(김미균 시지온 공동대표)
사회적 기업, 소셜벤처를 꿈꾸는 이가 많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정부와 대기업의 지원은 점차 늘어왔고, 박근혜 정부도 ‘창조경제’를 내세워 벤처업계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 젊은이들도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며 돈도 벌 수 있다는 ‘일거양득’을 매력적으로 느낀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이나 소셜벤처의 길은 쉽지 않다. 벤처업계는 창업 뒤 2~3%만 겨우 살아남는다는 곳이다. 보람 있는 일을 하는 자원봉사와 이익을 내야 하는 기업을 꾸리는 것은 차이가 크다.
‘수익’ 중심의 사회적 기업?소셜벤처로서는 흔치 않은 ‘장수기업’ 시지온을 7월29일 찾았다. 3년을 버티기 힘들다는 이곳에서 시지온은 지난 7월7일 7번째 생일잔치를 치렀다. 서울 동교동 사무실에서 김미균 시지온 공동대표를 만났다.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등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것을 먼저 풀어보자. ‘사회적 기업이 좋은 것은 알겠다. 운영하는 데 어려운 점은 없나.’ 김미균 대표는 “지속 가능성 면에서 가장 어려웠다”고 답했다. “돈이 없으니 어려웠다. 한국의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에 관심이 많지, ‘기업’에 관심이 없다. 수식어에 더 매달리고 있다. 기업으로 마음을 바꾼 뒤 수익 중심으로 경영을 했다.” 직원 26명의 기업으로 키워낸 김 대표의 말은 당차다.
‘수익 중심으로 경영한다면 굳이 사회적 기업, 소셜벤처일 필요가 없다. 기존 기업이 하기엔 수익이 크지 않지만 의미 있는 영역이 있어 필요한 게 사회적 기업 아닌가.’ 다시 질문했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수익 창출을 해야 하는 거다. 내 생각에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게 수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다. 요즘 벤처의 성공률이 왜 떨어지냐면 ‘비타민’ 같은 것을 만들기 때문이다. 있으나 마나 한 것들이다. 비타민은 여유가 있으면 먹는 것이고, 백신같이 꼭 필요한 게 아니다. 니즈(수요)를 정확히 파악해서 해결해야 하는데, 핵심적인 니즈는 사회적 가치와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 20대 후반의 나이지만 7년차 경영자인 김 대표에게서 답변이 술술 나온다.
시지온이 찾아낸 ‘백신’은 악성 댓글을 없애는 ‘소셜댓글’이었다. “2007년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악성 댓글로 사이버테러를 당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일반인 등 누구나 공격 대상이 되면 안 되겠다 생각했다.” 김 대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온라인 토론 플랫폼을 만들었다가 실패를 맛봤다. 첫 아이템을 접고 2009년 말 김 대표는 페이스북·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아이디로 로그인해 댓글을 남길 수 있는 ‘라이브리’를 만든다.
‘세부’ 비행기표와 함께 날아든 3년 만의 첫 매출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라이브리’는 온라인 누리집 기사에 댓글을 쓸 때 페이스북·트위터·카카오톡 등 자신의 아이디로 로그인한 뒤 쓸 수 있는 서비스다. 기존에 요구됐던 온라인 의 아이디가 필요 없다. 누리꾼들은 보통 회원 가입을 하는 게 귀찮아 댓글을 쓰는 것을 포기한다.
“온라인 누리집에서 댓글을 달려는 이들은 두 부류다. 정말 화가 난 사람 아니면 팬클럽이다. 로그인 하기가 귀찮기 때문이다. 그러니 극찬성과 극반대 의견만 댓글에 달려 반응이 격렬해진다 ”
김 대표는 이를 소셜댓글 ‘라이브리’가 무너뜨렸다고 평가한다. “로그인이 쉬워지니 중도적 입장을 가진 사람도 댓글을 쓰는 거죠.” 여러 의견이 뒤섞이게 만들어 댓글을 공론장으로 기능케 한다는 것이다.
소셜댓글의 기능은 또 있다. 자신의 SNS 아이디로 로그인을 하면서, 댓글이 자신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도 자동으로 올라갈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동안 내가 쓴 댓글을 누구도 알 수 없었지만, 이제는 친구들이 볼 수 있게 됐다. 이렇게 하면 정신 차리고 댓글을 달겠다 생각했다.”
김 대표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최근 기사 데이터를 분석했을 때 생산적인 댓글이 많이 달리고 있다. 꼭 소셜댓글의 효과라고만 볼 수는 없지만 온라인에서도 책임지는 커뮤니케이션이 늘어났다.” 현재 소셜댓글 서비스를 이용하는 곳은 언론사와 기업, 공공기관 등 700여 곳에 이른다. 지난해 7월부터 올해 6월까지 라이브리를 통해 달린 댓글은 약 500만 개였다.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 누리집에서도 소셜댓글을 쓴다. 기업들은 스팸이나 악성 댓글이 달려 기업 이미지가 훼손되는 것을 막는 효과를 얻었다.
이만큼 성장하기까지 고생도 많았다. “3년간 아무런 매출이 없었으니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적도 많았다. 공동창업자가 ‘딱 한 달만 더 하자’ ‘더 하자’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다”고 김 대표는 웃었다. 처음에는 그냥 의기투합한 개발자들과 함께하다가, 책임감 있게 만들기 위해 월급 22만원을 주기 시작했다. 월급은 김 대표와 공동창업자 김범진 대표가 틈틈이 고액 과외와 카페 아르바이트 등을 뛰며 마련했다.
첫 계약은 무턱대고 지른 ‘세부 워크숍’ 비행기표와 함께 날아들어왔다. “2010년 4월에 세부행 비행기표를 샀죠. 매출도 없고 회사 분위기가 암울한 상황인데, 왕복 14만원에 나오니까 직원들이 가자는 거예요. 저는 당시 월급이 40만원인데 ‘무슨 해외여행이냐, 미친 거 아니냐’며 반대했죠.” 김 대표의 반대를 무릅쓰고 한 직원이 비행기 티켓을 할부로 끊으며 일은 시작됐다.
주주가치 극대화 대신 임직원 행복 좇다“엄청 열심히 일했다. 세부 가서 먹고 잘 돈이 필요하고, 가서 신나게 놀 생각이 있어서 그런지 직원들이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2010년 7월 첫 계약이 성사됐다. 세부행 비행기를 타기 두 달 전이었다. “돈을 벌려고 한 게 아니라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니 돈이 오고, 꿈을 가진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니 돈이 모이고, 이 믿음이 맞았구나.” 김 대표는 그때 생각을 굳혔다. 그 뒤 시지온은 매해 세부로 워크숍을 간다. 물론 세부로만 가는 이유는 성공의 추억 때문이 아니라 “거기가 제일 싸서”라고 했다.
“소셜벤처에 관심을 가지고 시작했다기보다, 기존 기업과 다른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기존 회사는 주주가치 극대화를 위해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데, 나는 그것 말고도 회사가 추구할 게 많다고 생각했다. 임직원의 행복, 서비스의 가치, 이런 게 회사를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라고 생각했다.”
시지온 같은 기업의 출현은 소셜댓글처럼 어쩌면 또 다른 변화를 낳을지 모른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직원의 행복을 추구한다는 경영이론은 많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를 구현하는 기업을 찾기란 쉽지 않다. 더구나 일반인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어 하는 국내 대기업에선 이런 모습을 찾기 어렵다.
사업 아이템뿐만 아니라 기업이 커가는 과정 자체가 ‘체인지 메이커’ 실험인 셈이다. 김 대표는 이날 인터뷰를 하며 함께 일하는 직원들을 ‘식구’라고 불렀다. ‘밥을 같이 먹는 입.’ 처음부터 이렇게 불렀다는 이 입들과 시지온은 월급을 함께 나눈다. 영업이익이 향후 3개월 동안 오를 거라 생각되면 월급을 조금씩 올리는 식이다. 올리는 액수는 직원 모두 같다. 이렇게 초봉 22만원(2010년)으로 시작했던 월급은 현재 일반 기업 수준까지는 됐다. 그래도 지난해 신입 월급 초봉은 아직 100만원이었다. “고용노동부가 최저임금으로 맞춰야 한다고 해서 올렸죠. 그 전에는 40만원이었는데 소셜벤처인데 왜 이러냐고 해서, 하하.”
임금이 낮다고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지는 않는다. “애초 월급만 봤다면 우리 회사로 안 왔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한 이들이 시지온에 온 것이다.” 벤처기업은 사업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규모가 작다보니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협업이 중요하다. 함께 꿈을 좇는다는 생각의 공유가 다른 노동조건을 감수하게 만든다.
기업 문화 탄탄해질 때까지 외부 투자는 ‘노’“7년여 동안 (외부로부터) 투자받을 기회는 아주 많았다. 그러나 안 받았다. ‘자체 매출이 확고해지기 전에 투자를 받으면 안 된다’ ‘우리의 기업 문화가 형성될 때까지 외부에 기대지 말자’고 생각했다. 돈 벌어본 경험이 없는데 투자자한테 돈을 벌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사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김 대표는 “직원 월급 많이 주는 대표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다.
직원 평균 나이 28.5살의 젊은 기업 시지온.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아래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잿빛 기업으로 자라지 말고, 어두움 아래 밝은 빛을 비추는 초창기의 그 뜨거웠던 비전을 잊지 않는 연둣빛 기업으로 쭉쭉 성장하자.” 시지온의 한 직원이 워크숍 뒤 쓴 소감이다.
글 이완 기자 wani@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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