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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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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봉제산업 그 짜릿한 화학작용

쇠락해가는 봉제노동의 터전에 사회적 기업의 뿌리 내린 ‘000간’의 신윤예·홍성재 대표
등록 2014-08-22 13:26 수정 2020-05-03 04:27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봉제공장 골목에 자리잡고 다양한 공동체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자투리 천을 활용해 제품 등을 만들어 파는 ‘000간’의 신윤예(왼쪽)·홍성재 대표.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봉제공장 골목에 자리잡고 다양한 공동체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자투리 천을 활용해 제품 등을 만들어 파는 ‘000간’의 신윤예(왼쪽)·홍성재 대표.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꼭대기, 성채처럼 아파트 단지가 둘러쳐져 있다. 그 아래 꼬물꼬물 골목길이 이어져 있다. 성채를 향해 시선을 두면 골목과 마을은 보이지 않는다. 부러 보이지 않게 감춰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숨겨진 것처럼 보인다. 숨겨져 있던 골목에서 새로운 기운이 움트고 있다. 그 기운 역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골목 안 반짝 빛나는 소박한 공간에서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사회적 기업 ‘000간’(‘공공공간’이라 읽는다)에서다.

산뜻한 출발 뒤 마주친 녹록지 않은 현실

창신동은 1960~70년대 봉제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당시 형성된 봉제노동자의 터전이다.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자재와 완성 옷을 나르는 자전거가 쉼없이 오가던 곳이다. 시끌벅적하던 골목은 이제 자주 조용하다. 중국와 동남아로 일감이 넘어가면서부터다. 창신동 바로 옆 동대문 의류도매시장에 기대어 때로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지만, 예전만 못하다. 그곳에 2011년 예술가 2명이 둥지를 틀었다. 신윤예(29)·홍성재(32) 000간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000간은 자투리 천을 이용한 방석, 자투리 천이 나오지 않는 의류 등을 만들어 파는 사회적 기업이다. 이와 함께 창신동 여행 프로그램과 지역 공동체 교육 및 문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뭐든지’ 한다. 마을도서관 ‘뭐든지’도 있다. 신 대표와 홍 대표를 지난 8월13일 000간과 지역 봉제노동자·주민들을 잇는 플랫폼 공간 ‘000간2’에서 만났다.

“처음에는 사회적 기업을 세우려 하지 않았어요. 창신동의 문화를 재발견하자는 게 목표였죠.” 신윤예 대표는 말했다. 신 대표에 앞서 홍성재 대표는 2011년 창신동의 해송지역아동센터에서 미술 강의를 한 인연이 있다. 창신동을 캔버스 삼아 신 대표와 함께 예술적 상상력을 펼쳐보려 했다. 예술가다운 발상이다. 그런데 지금은 ‘사회적 기업가’라는 정체성이 그럴듯하게 어울린다. 예술과 쇠락해가는 산업이 만나 일으킨 화학작용의 결과물이다.

홍 대표는 말했다. “처음에는 거창하게 ‘산업’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다. 창신동에 오니 저임금을 받으면서 쇠락해가는 산업에 종사하는 개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예술가도 개인으로 활동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길이 녹록지 않다. 다른 길에 놓인 개인이지만 둘 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렴풋이 처음에는 아이디어나 디자인을 보태면 장당 1천원짜리가 3천원짜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산업을 바꿔야 한다는 데서 출발하지 않고, 옆 공장 사장님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거래처를 넓혀봐야겠다 싶었다.” 신 대표는 “출발은 그랬다. 그런데 진행을 할수록 산업 자체가 변화하지 않으면 무의미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 예술가로서 산업에 새로운 영향을 불어넣자 했다. 그래서 봉제공장이 가장 많은 자리에 플랫폼 역할을 하는 이 공간을 마련했다. 카페처럼 만들어서 공장 사장님들을 만나기도 하고, 외부 사람들도 편하게 올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출발은 산뜻했다. 그러나 곧 녹록지 않은 현실과 마주해야 했다. 대기업이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선정돼 실험을 해볼 기회가 생겼다. 처음으로 의류 제품을 만들기로 했다. 그래서 나온 제품이 자투리 천이 나오지 않도록 디자인해 만든 ‘제로 웨이스트 셔츠’이다. 신 대표는 “생각과 퀄리티(질)가 달랐다. 무엇보다 소통이 많이 필요했다. 상품으로 팔 수 있는 제품이라는 게 만들기도 힘들고 파는 것도 힘들구나 생각했다. 지속적으로 팔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생산자의 환경도 고려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를 꺼낼 때 만연했던 웃음기가 싹 가셨다. 그 괴로움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홍 대표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자투리 천이 안 나오게 하려면 재단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간단한 게 아니다. 봉제공장 사장님들에게 왜 이런 활동을 해야 하는지도 설명해야 한다. 시간도 두 배 더 든다. 이곳 봉제노동자들은 쇠락해가기는 해도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일감이 나오니 우리 제품이 크게 매력적이지 않은 것이다.”

계산적일 것, 매력적일 것!

투트랙으로 운영 전략을 바꾼 이유다. 000간은 각 봉제공장이 잘하는 분야를 더욱 특화할 수 있는 방향도 고민하고 있다. 봉제공장도 저마다 ‘전문 분야’가 있다고 홍성재 대표는 설명했다. “이 앞 봉제공장은 스커트를 전문으로 해요. 그것을 전제로 해서 좀더 나은 제품을 만들어보는 거죠. 봉제노동자를 장인으로 만들어야겠다 생각했는데, 현실적으로는 확산력이 필요한 거였어요.” 신 대표는 “이분들이 잘하는 부분에 우리 역량을 대입해보자고 생각을 바꿨어요. 우리도 너무 공급자 위주로 생각했던 것이죠”라며 맞장구쳤다.

조만간 선보일 앞치마 제품의 디자인 개발을 위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조만간 선보일 앞치마 제품의 디자인 개발을 위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변화는 느리다. 하지만 작은 흐름이 봉제노동자의 터전과 공동체, 나아가 산업을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 그들은 믿는다. ‘메이드 인 창신동’이라는 태그를 옷에 꼭 붙이는 이유도 여기에서 나왔다. 홍 대표는 “000간의 제품에는 모두 이 태그가 들어간다. 지역색, 창신동만의 제품이라는 것을 부각시키고자 한다”고 말했다. 단지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다. 올해 하반기에는 코엑스와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에서 열리는 다양한 전시회에 ‘메이드 인 창신동’ 제품과 프로그램을 여럿 선보일 예정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소통할 수 있는 접점을 만들기 위해서다. 홍 대표는 “새로운 콘텐츠와 제품을 제공해야 창신동의 봉제산업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봉제공장 하나하나가 각자의 브랜드를 가질 날도 올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목표는 거기서 나온 제품의 단가가 높아지는 것이다. 결국 제품 한 장당 부가가치를 높여야 이 지역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계산적이어야 한다. 그래야 확산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계산적일 것 그리고 매력적일 것. 000간의 당면 과제다.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그렇게 여겨져야 한다. 신 대표는 “창신동의 제품과 000간의 제품이 시장에서 계속 살아남으려면 우리가 가장 매력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격도 싸고 디자인도 예쁘면 윤리적 소비, 할 만하다. 건강을 생각해서 윤리적 식품을 소비하는 것과 의류를 사는 것은 다르다. 식품을 제외한 옷 같은 물건에서 윤리적 소비가 일상화되는 것은 아직 힘든 것 같다”며 다소 비관적인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 포기할 그들이 아니다. 신 대표는 “마케팅을 할 때도 우리가 잘하는 것을 생각했다. 기발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을 우리는 잘한다. 그래서 미래의 소비자를 만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우리가 입는 옷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얼마의 돈이 창신동의 봉제노동자에게 돌아가는지 등을 알려주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려고 한다. 작은 키트를 만들어 어린이들을 교육하고, 키트는 별도로 팔 수도 있게 할 것이다”라며 계획을 털어놓았다.

생산자들과는 동등한 파트너십을 끈끈하게 맺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파격적인 거래 방식도 도입했다. 제품 판매비의 50%를 먼저 봉제공장 사장님에게 준다. 사장님들은 “일본에서 일감 받을 때보다 더 대우가 좋네”라고 하신단다. 방석을 만드는 데 쓰는 자투리 천은 한 포대에 2500원을 쳐서 산다. 종량제 봉투를 사서 담아 버리는 쓰레기가 쏠쏠한 벌이가 될 것이다. 홍 대표는 “이제는 사장님들이 어떤 천이 방석 만들기에 좋은지 잘 아신다. 정말 파트너라 생각하고 대화한다. 저희가 뭘 해드린다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교감을 위해 유연한 어법과 태도 가져야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직원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선 000간. 그저 일방적인 공급자가 아니기에 부닥치는 어려움도 많다. 신 대표는 “시드머니(종잣돈)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게 이상적일 것이다. 000간도 현대·기아차그룹이 사회적 책임 활동의 일환으로 펼치고 있는 ‘H-빌리지 프로젝트’의 도움을 받았다. 거부하고 피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우리는 대기업의 책임과 생산자 공간을 매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 대표는 이해관계자와 소통할 때 그 대상마다 어법을 달리해야 한다는 고충을 꺼냈다. 그는 “지역 내·외부 활동가, 주민과 아이들, 직원들의 사기와 의욕, 결합하고자 하는 외부 아티스트들, 디자이너 등이 결합된 사업이고 공간이다. 예를 들면 1개의 발표문을 10개로 바꿔낼 수 있어야 한다. 이들과 교감할 수 있도록 순발력 있게 어법과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글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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