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는 현대의 영웅일까.
경제 저성장을 해결하고 청년 일자리 문제를 푸는 방법으로 최근 스타트업이 주목받고 있다. 스타트업은 정보기술(IT) 분야의 초기 벤처기업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창업해 산업에 새로운 피를 돌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작은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구글·페이스북 등은 전통적인 대기업을 제치고 미국 경제를 대표하는 아이콘이 됐다.
국내 스타트업의 부상은 이들의 성공 가능성을 알아본 국내외 자본으로부터 투자를 받는 것으로 확인된다. 스마트폰 배달 애플리케이션인 ‘배달의 민족’을 서비스하는 ‘우아한형제들’은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주도하는 컨소시엄으로부터 약 400억원을 투자받았다. 여러 스타트업을 거느린 회사인 ‘옐로모바일’은 미국 투자기업으로부터 약 1100억원에 달하는 돈을 받았다. 구글도 한국에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캠퍼스 서울’을 세우기로 했다.
스타트업에 줄 잇는 투자 러브콜
박근혜 정부 역시 지난해 7월 인터넷 스타트업 육성 방안을 내놨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타트업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2013년 44억원, 2014년 98억원의 예산을 투자한다고 했다. 2017년까지 계획된 예산만 500억원에 이른다.
민간과 정부 양쪽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스타트업은 현대판 영웅이 될 수 있을까. 스타트업 창업을 독려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 스타트업 네이션스 조너선 오트먼스 설립자를 지난 11월24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이 주최한 ‘스타트업 네이션스 서밋(Startup Nations Summit) 2014’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기업가정신을 교육하는 미국 코프먼재단의 선임연구원이기도 하다.
-최근 언론에서 스타트업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한국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열풍은 세계적인가.=스타트업 혁명이라 부를 만하다. 전세계 모든 국가에서 벌어지고 있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늦은 편이다. 최근 더 많은 관심을 받는 이유는 이들이 이전과 매우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벌려고 창업하는 게 아니라 새로운 생각을 실현하려고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 기존 산업을 통째로 파괴하고 전통적 제도 등 기존 가치 체계에 도전하는 변화들이 목격되고 있다.
-스타트업 네이션스를 설립한 배경은 이런 변화를 지원하기 위해서인가.=미국 코프먼재단은 스타트업 연구를 재정적으로 후원해왔다. 여러 가지 학술적인 연구가 있었는데 정책 당국은 막상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주먹구구식이 아닌 전략적 효과를 만들 수 있게 도우려고 스타트업 네이션스가 만들어졌다.
-한국 대학생들은 대학을 졸업한 뒤 창업보다 공무원이 되기를 꿈꾸는 경우가 많다. 창업 정책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실패했을 때 보호막이 없는 등 복지 정책이 미비한 이유가 크다.=코프먼재단은 창업을 준비하는 가난한 젊은 친구들을 도와주는데, 이들이 어떤 위험을 감수하는지는 각각 다르다. 우리는 지금 당장 창업하지 않더라도 위험을 감수하는 것에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인생에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성공적인 기술 기반을 가진 기업을 창업한 사람의 평균연령이 39살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 공무원이 되겠다’는 것을 인생을 결정하는 의사결정으로 보지 말고, 그곳에서 일하다가 해결해야 할 일이 보이면 창업을 하거나 다른 일을 해보는 길도 열려 있어야 한다.
‘짜증’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위험을 감수하는 게 기업가정신이라고 이해된다. 창업 준비자들이 상의하러 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는가.=창업자들의 커뮤니티는 서로서로 아는 공동체다. 창업에 관심이 있으면 비슷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커뮤니티에 참석해보는 것이 좋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동료로부터 영감을 얻을 수 있다. 또 창업자는 문제를 푸는 사람이다. ‘정말 짜증나, 답답하네’ 그런 포인트를 잡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 대화하는 게 좋은 방법이다.
이날 열린 스타트업 네이션스 글로벌 콘퍼런스에서도 이른바 ‘체인지 메이커’가 되고 싶은 이를 위한 조언이 잇따랐다. 페이스북에 약 20억달러에 인수된 가상현실 헤드셋 개발업체 오큘러스VR의 창업자 브렌던 이리브는 “좋은 학교에 가서 엘리트 코스를 밟는 게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명성 있는 학교에 들어가는 게 성공이고 창업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여러분의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는 배움을 해야 한다. 또 훌륭한 팀을 구성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디어가 성장한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팔란티르 테크놀로지의 창업자인 조 론스데일은 “투자자가 기업가 출신이기 때문에 무엇을 봐야 할지 아는 눈이 있다. 이 회사가 기술을 가지고 있는지, 인재를 확보하고 있는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지를 본다. 발표자료(PPT)를 보지 않는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인재가 있다면 투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국내외에서 전해지는 스타트업의 성공 소식이 이른바 엘리트만의 잔치이거나 뛰어난 발표를 하는 이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물론 아이디어를 가진 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작은 기업도 엄청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온 이들의 조언이라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불평등이 소득 격차에 따라 커지고 있다는 토마 피케티 교수의 이 한국에서 화제였다.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들은 성공하면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돈을 번다. 대신 그들이 내놓은 혁신적인 기술은 전통적 산업에 종사하는 많은 노동자의 일자리를 뺏는다.=기술이 진화할수록 일하는 데 필요한 사람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들은 사실 산업 자체를 바꾼다. 필요가 없어지기도 하지만 필요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나에게 창업자는 새로운 기술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특히 새로운 세대의 창업자들이 만든 회사는 과거와 다르다. 이들은 다른 가치 체계를 가지고 있다. 번 돈을 새로운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도 그렇고, 이들은 성공한 뒤에 편안하게 여생을 즐기지 않는다. 성공 이후에도 끊임없이 변화하려 하고 체인지 메이커를 만들려는 사람이다. 전세계적으로 빈부 격차가 심각해지고 있는데, 이 세대는 이러한 노력을 통해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 사람들이고 실제로 줄이고 있다.
창업가들 “불평등 실제로 줄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얼마 전 1세대 벤처 창업가들이 만든 ‘C프로그램’이라는 회사가 화제였다. 김정주 NXC(게임회사 넥슨의 지주회사) 회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 이재웅 다음 창업자가 사재를 털어 사회에 비전을 제시하고 올바른 변화를 이끌어내는 벤처에 투자하기로 했다. ‘체인지 메이커’가 될 만한 이와 단체를 찾아 성공의 ‘마중물’을 넣겠다는 것이다. 조너선 오트먼스가 제시한 새 세대 창업자의 특징과 맞닿는다.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스타트업 네이션스 서밋’ 기조연설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역설했다. “전통적인 사회 공헌은 기업이 재무적 성과가 나면 기부를 하거나 봉사를 했다. 미시적이고 일시적인 행위밖에 되지 않는다. 시각을 좀 바꿔 재무적 가치도 있으면서 사회적 의미를 꾀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면 이것은 정말 엄청난 영향력이 있을 수 있다.” 김 의장은 이런 생각을 토대로 “사회를 지속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조직은 기업이 아닐까”라고도 말했다. 성공한 창업 1세대로서 자신감은 이전 경제개발 시대의 ‘돈을 벌어 국가에 이바지한다’는 생각으로 대기업을 키운 창업가와 달라 보였다.
-최근 삼성의 스마트폰 실적이 떨어지면서 한국 기업은 기기를 만드는 기술은 뛰어나도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혁신적인 기술이 나오지 않는 것도 기업 조직문화와 관련 있다고 한다. 혁신은 어떻게 나오는가.=큰 회사들은 성장하다보면 역동적이고 수평적인 문화를 잃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델(컴퓨터 제조업체)은 코프먼재단의 파트너인데, 델이 함께 일하는 이유는 아이폰 때문에 (망한) 블랙베리처럼 되고 싶지 않아서다. 델은 스타트업 문화를 회사 안으로 가져오기 위해 노력 중이다.
‘델’도 배워가는 스타트업 문화그래서 창업 생태계를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문화를 바꾸는 것은 보텀업(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스타트업 문화 같은 새로운 혁신에 대한 갈망, 모방이 확산되면 대기업 문화도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 새롭고 역동적인 문화와 닿게 해야 한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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