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만들려면 약 10g의 커피 원두가 필요하다. 관세청이 집계한 지난해 커피 생두 수입량은 약 12만t. 이를 인구수로 나눠보면 국민 1인당 커피 소비량은 연 300여 잔으로, 도시인들이 잠을 쫓기 위해 매해 3kg의 커피 찌꺼기를 만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렇다면 도심 곳곳에 늘어선 커피전문점에서 나온 그 많은 커피 찌꺼기는 모두 어디로 간 걸까.
1990년대 퇴비 활용 미국에서 증명이현수(38) 꼬마농부 대표의 버섯농장 사업은 이런 질문에서 출발했다. “도시에서 가장 많이 버려지는 자원 가운데 하나는 커피 찌꺼기인데, 대부분 쓰레기로 버려져요. 그렇게 버리는 것보다는 재활용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게 된 거고요.” 지난 7월16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설문동 꼬마농부 농장에서 만난 이 대표는 종이상자로 만든 자신의 버섯 재배 체험용 키트를 보여줬다.
그는 3년 전 주말농장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커피 찌꺼기의 재활용을 고민하게 됐다. “친구 따라 소소하게 농사짓는 주말농장을 시작했어요. 딸이랑 같이 가서 흙 만지고 먹을거리를 수확해오는 게 즐거웠죠.” 주말농장에서는 화학비료 대신 주변의 퇴비나 값싼 거름을 활용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소일거리였지만 농사와 관련한 책도 찾아보면서 뭔가를 수확하는 묘미에 빠져들었다.
다양한 자료를 찾아보던 중 이 대표는 커피 찌꺼기가 거름으로 좋다는 내용을 접했다. 그러나 커피를 내린 뒤 버려지는 커피 찌꺼기에는 카페인이 남아 있다. 이를 그대로 동물 사료나 식물 퇴비로 사용하면 카페인의 각성 효과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좀더 자료를 찾던 중, 커피 찌꺼기가 버섯을 잘 자라게 하는 데 도움을 주며, 버섯균이 카페인 성분을 분해하기 때문에 거르고 남은 커피 찌꺼기를 퇴비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게 이미 1990년대 미국에서 실험으로 확인됐다는 내용을 접했다. 인터넷을 통해 미국 버클리대에서 커피 찌꺼기로 버섯을 손쉽게 기를 수 있는 ‘백 투 더 루츠’(Back To The Roots)라는 교육용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호기심으로 그는 해외 인터넷 사이트를 보며 집에서 버섯을 키우기 시작했다. 5~6개를 키워봤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실패했다. “뭐가 문제인지 잘 몰랐어요. 내 실수였는지, 아니면 커피 찌꺼기에 문제가 있었는지도 몰랐으니까요.” 결국 주변 커피전문점을 돌아다니며 브랜드별로 다양한 커피 찌꺼기를 걷어와 실험을 이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키운 300여 개 화분 가운데 절반 정도에서 느타리버섯을 틔우는 데 성공했다. “정말 신기했죠. 해보고 나니까 자신감이 생겼고, 그다음에는 더 해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버섯 재배 교육까지 받았어요. 그 뒤 양을 늘리면서 창업을 하게 됐어요.” 경기도 여주의 영농조합 교육 프로그램에서 버섯 배양을 배우고, 커피 찌꺼기로 버섯을 키울 수 있도록 종이상자로 만든 체험용 키트를 만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과학교재·기념품 시장, 새로운 시장으로그렇게 자연스럽게 뛰어든 버섯 재배는 그의 삶이 됐다. 체험용 키트는 사회적 기업 콘테스트에 나가 입상했다. 상금은 시설을 키우는 자본금이 됐다. 처음 1년 동안 수작업으로 진행하던 생산 작업을 대량생산 체계로 바꿨다. “처음에는 생산성이 너무 떨어졌어요. 수작업 공간을 소독해야 하는데, 그런 부분도 잘 몰랐고요. 100% 커피 찌꺼기로 배양을 했는데 성장이 더디고 버섯도 튼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존 버섯 재배에 사용하는 재료인 면실피·비트펄프를 커피 찌꺼기에 섞고, 대량 재배 시설을 갖춰서 원가를 절감했죠.”
그는 애초에 9천원 수준이던 체험용 키트도 5천원으로 낮출 수 있었다. 또 기존 농가들이 이미 경쟁하고 있는 대형마트 등에 느타리버섯을 납품하지 않고 유치원·어린이집·초등학교 등의 학교 교육용이나 과학교재, 기념품 시장 등을 공략하며 새로운 시장을 발굴했다.
그는 요즘에도 매주 두세 번씩 근처 스타벅스 매장을 찾아가 커피 찌꺼기를 가져온다. 그때마다 50~60kg의 커피 찌꺼기가 모인다. 다른 커피전문점과 다르게 스타벅스에서는 커피 찌꺼기를 따로 모아둬 위생 상태가 좋다. “다른 커피전문점에서는 일반쓰레기와 함께 커피 찌꺼기를 모아놔요.” 찌꺼기가 오염돼 있으면 버섯을 키우기도 난감하다. 그는 “커피전문점에서는 커피 찌꺼기를 버리는 데 별도의 비용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굳이 재활용해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죠”라고 덧붙였다.
사실 그에게는 ‘사회적 기업’이 낯선 개념은 아니었다. 그의 첫 직장은 ‘아름다운가게’였고, 그 뒤 ‘희망제작소’와 소셜벤처투자회사 SOPOONG 등에서 사회적 기업과 관련한 업무를 했다. “당시만 해도 사회적 기업에 관심을 갖고 한번 일해보면 좋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옆에서 조언·지원하는 일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원하는 만큼의 성과로 이어지지 않던 찰나에 내가 직접 해봐야겠다 싶어서 뛰어들게 됐죠.”
사회적 기업의 위기는 지금그러나 밖에서 보던 것과 달리, 사회적 기업의 운영은 쉽지만은 않았다. 그의 사업 3년차 성적표는 아직까지 ‘마이너스’다. 시설 투자는 꾸준히 이뤄졌지만 제품 매출이 곧바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업 아이템의 확장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으로서) 위기는 지금인 것 같아요. 여러 지원으로 시설투자가 이뤄졌는데, 그만큼 결과물이 좋지 않아 상황이 어렵죠. 사업 기반을 갖춘 지금은 판로가 고민입니다. 판매 방식이나 체험용 키트를 교육용 교재로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지 등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체험용 키트에 참여한 이들을 매핑으로,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는 이벤트 등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 봄가을에만 집중돼 있는 교육용 교재 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노루궁뎅이버섯, 허브, 태양광 깻잎 등 다양한 식물 키트를 만들어 관상용·인테리어용으로 보급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
그는 버섯 재배를 통해 커피 찌꺼기 활용의 선순환을 시도하는 것이 단순한 아이디어에 그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제안이 분명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최근에 소셜벤처 가운데 커피 찌꺼기를 활용한 사업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방향제나 퇴비를 만드는 것, 그리고 지난해 소셜벤처 입상자 가운데에는 커피 찌꺼기를 친환경 성형제로 굳혀 숯을 만드는 사례도 나왔습니다. 요즘 이런 소셜벤처가 많은 것을 보면 뿌듯합니다. 제가 던진 메시지에 반응을 한 것이니까요.” 그는 이처럼 집단화된 메시지가 있다면 커피 찌꺼기를 배출하는 업체들이 문제의식을 갖게 되고 그것이 정책적으로도 반영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이런 인터뷰를 한다고 해도 얼마나 파급력이 있겠어요.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다보면 성과가 나오지 않을까요.”
그의 장기적인 꿈은 자연생태적인 농장을 꾸리는 것이다. “‘꼬마농부’라는 이름은 우리 아이들 세대가 10~20년 뒤 정말 재미있고 신나게 농사지을 수 있는 직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지었어요. 농사를 짓는 것도 대량생산 시설투자 방식이 아니라 유기농·생태농사 등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는 방식으로 한다면 미래에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커피 찌꺼기에서 버섯을 재배하면 퇴비로도 쓸 수 있지만, 더 나아가서는 지렁이·장수벌레·사슴벌레 먹이로도 쓸 수 있거든요. 그렇게 만든 사료로 소도 키우고 닭도 키우고 커피 찌꺼기를 통해 자연생태적으로 순환하는 체험농장을 만들고 싶어요.”
커피 찌꺼기로 방향제, 퇴비, 숯까지그는 농부의 역할에 대해 “인간이 만든 생태계 교란을 자연이 소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소 몇천 마리를 키우는 방법보다, 소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를 고민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게 제 꿈입니다.”
고양=글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박선희 인턴기자 starking0726@naver.com·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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