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흥미로운 소식을 접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원자로가 문화재로 등재됐다는 것이다. 그 주인공은 국내 최초의 원자로인 ‘트리가 마크-2’(TRIGA Mark-Ⅱ·등록문화재 제577호). 핵발전 운영과 방사선 연구를 하려고 이승만 정부 시절이던 1958년 미국 업체인 제너럴아토믹에 73만1천달러를 주고 사온 연구용 원자로다. 정부에서 부르는 공식 명칭은 ‘연구로 1호기’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하 연구원)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연구로 1호기가 문화재에 오른 계기는 문화재청의 제안 때문이었다. 지난해 초 근대문화재 후보군 조사를 진행한 문화재청이 연구로 1호기가 과학기술 연구시설로 보존 가치가 높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등록문화재는 대부분 일제강점기 이후의 것들로 지난해에는 금성 가전제품(라디오·세탁기·텔레비전)과 컴퓨터 프로그램인 한글 1.0도 이름을 올렸다.
‘트리가 마크-2’라는 이름은 원래 제너럴아토믹이 붙인 상품명이다. 훈련(Training)·연구(Research)·동위원소 생산(Isotope Production)·제너럴아토믹(General Atomics)의 앞 글자를 따서 지었다. 당시 ‘제3의 불’로 소개된 연구로 1호기는 연구원이 있던 서울 노원구 공릉동(현 한국전력 중앙연수원)에서 1962년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그 뒤 국내 원자력공학과 출신 연구자 대부분의 손을 거치게 된다. 10년 뒤에는 연구로 2호기(트리가 마크-3)가 추가로 도입됐다. 연구로 1·2호기는 국내 핵산업계의 역사이기도 하다. 2004년 우리 정부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은 것도 연구로 2호기에서 플루토늄이 추출됐기 때문이다. 이들의 은퇴가 결정된 건, 1995년 대전시 유성구 덕진동으로 옮긴 연구원 안에 국내 기술로 만든 연구용 원자로 ‘하나로’가 생기면서부터다.
국내 최초로 이뤄진 원자로 해체 과정도 눈여겨볼 만하다. 정부와 핵산업계에서는 연구로 1호기를 두고 ‘역사적 가치가 있으므로 최대한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와 ‘활용 가치가 없어졌으므로 안전을 위해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엇갈렸다.
논란이 이어지면서 연구로 2호기가 먼저 2001~ 2005년에 방사성물질을 제거하는 제염 작업과 시설물 해체 작업을 끝냈다. 그러나 2012년 국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연구로 2호기의 콘크리트 폐기물 가운데 일부가 도로 건설에 재활용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을 빚었다.
보존 방법을 두고 정부 부처 안에 전담부서까지 꾸려진 연구로 1호기는 결국 2011년 콘크리트 원자로만 남겨둔 채 나머지 시설을 해체하기로 했다. 당시 공릉동 주택가에서 방사능 아스팔트가 발견되면서 방사능 우려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앞서 2009년에는 이미 가동을 멈춘 연구로 1호기 원자로에 담아둔 물 13.5t이 새어나와 액체 방사성폐기물 저장시설로 들어간 일도 있었다. 당시 정부는 방사능 누출은 없었다고 발표했지만, 주택가가 밀집한 공릉동에서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올해 상반기 원자로 본체의 제염·해체 등 폐로 작업을 마치는 연구로 1호기 부지에는 기념관이 들어서기로 돼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 원자로 가동만 33년, 해체 작업은 18년 이상 걸릴지도 모른다. 연구로 1호기에서 나온 폐기물이 대전 연구원 저장시설을 거쳐, 현재 건설 중인 경주 방사능폐기물처분장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폐로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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