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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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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블랙홀’ 옆에 산다는 것

중국발 초미세먼지로 돌아보는 중국 에너지 정책
신재생에너지 투자와 동시에 핵발전소 신설도 늘려
등록 2013-12-21 13:44 수정 2020-05-03 04:27
지난 12월4일 서울 인왕산에서 세종로 쪽으로 바라본 모습. 미세먼지가 도시를 장악했다.탁기형

지난 12월4일 서울 인왕산에서 세종로 쪽으로 바라본 모습. 미세먼지가 도시를 장악했다.탁기형

“앞으로 10년 넘게는 겨울마다 매번 이런 먼지를 봐야 할 겁니다.”

서울시가 처음으로 초미세먼지 경보(농도 85㎍/㎥ 이상)를 울렸던 12월11일, 잿빛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 대기오염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 대륙에서 서해 바다를 건너온 초미세먼지(입자 크기가 2.5㎛ 이하)는 몇 년 전부터 겨울 하늘을 위협하는 존재로 자리잡고 있다.

한반도가 ‘초미세먼지 노이로제’에 빠진 건, 중국이 엄청난 발전시설 확충에 나서면서 이른바 ‘에너지 블랙홀’이 된 것과 관련이 깊다. 세계은행의 ‘세계발전지수’(World Development Indicators) 자료를 보면, 지난해 중국 국내총생산(GDP)은 8조3584억달러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팽창하는 경제 규모답게 에너지 사용량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공장이 늘어나고 소비도 늘어나면서, 전기·난방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중국 전체의 8월 한 달 전력 사용량이 5103억kWh로, 매해 10% 이상 늘어나는 것으로 집계했다.

에너지 블랙홀이 뿜어내는 오염의 주범은 석탄이다. 어마어마한 전기를 충당하기 위해 중국은 지난해 전체 전력의 71.5%를 석탄 화력발전으로 얻었다. 중국이 전세계 석탄 생산량의 절반을 태우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중국에서 채굴된 석탄에는 유황 성분이 많아 전력·난방 등에 사용되는 석탄이 초미세먼지 같은 대기오염을 일으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 그린피스 동아시아지부 베이징사무소가 영국 리즈대학교 연구팀과 경진기(베이징·톈진·허베이) 지역의 초미세먼지 실태를 조사한 보고서에서는 “중국 정부가 경진기 지역의 초미세먼지를 5년 동안 매해 25%씩 줄여나가겠다고 했지만, 2030년 전까지 정부의 공기질 기준(농도 35㎍/㎥ 이하)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결론을 내놓았다.

그런 탓에 중국에서는 석탄을 대체할 에너지원을 찾느라 정신이 없다. 중국의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는 우리보다 한참 앞서 있다. 에너지 블랙홀이라 말에 걸맞게 엄청난 규모로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늘리고 있다. 중국 국가에너지관리국(NEA)이 발표한 올해 에너지 현황을 보면, 풍력(7.9GW), 태양광(3.6GW), 핵발전(2.2GW) 순서로 설비가 늘어났다. 중국은 2035년까지 미국·유럽·일본의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넘어서는 것을 목표로 삼고 설비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러나 신재생에너지가 늘어난다고 해서 초미세먼지 같은 에너지 블랙홀의 고통이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석탄 발전이 줄어드는 대신, 핵발전소의 위험성이 고개를 들 가능성이 높다. 현재 중국에 있는 핵발전소 13기(설비용량 1080만kW)가 차지하는 발전 비중은 1.1% 수준이다.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핵발전소가 새로운 대체재로 떠오르면서 중국 정부는 2015년까지 핵발전소 34기를 더 지어 발전 비중을 5.5%까지 끌어올리기로 했다. 현재 건설 중인 핵발전소는 대부분 중국 대륙의 동쪽 해안가를 따라 세워지고 있다. 서해안과 가까운 중국 산둥성의 웨이하이·하이양 2곳에도 핵발전소가 들어선다. 10년, 20년으로 끝나지 않을 에너지 블랙홀의 공포가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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