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기 없는 고층 아파트’라니, 생각만 해도 숨이 차오른다. 스페인 일간지 는 지난 7월 스페인 남부도시 베니도름에 그런 건물이 있다고 보도했다. 47층 높이의 호텔 겸 아파트를 목표로 공사 중인 고층 건물 ‘인템포’에 설계자의 실수로 23층 이후로 승강기가 빠졌다는 것이다. 그나마 공사 중에 뒤늦게 발견한 사실에 위안을 찾아야 할 판이다.
아찔한 상상은 ‘화장실 없는 아파트’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의 상황이 딱 그렇다. 쉴 틈 없이 돌아가는 국내 핵발전소 23곳에서는 핵분열을 끝낸 핵연료봉(노심)이 나온다. 핵물질을 꾹꾹 채워둔 연료봉은 먼지처럼 사라지지 않으니 말이다. 원자력발전을 시작한 지 35년이 넘었지만, 우리는 다 쓴 핵연료를 치우는 ‘화장실 없는 아파트’에 살고 있는 셈이다. 핵발전소를 가진 다른 나라의 사정도 비슷하다.
그 많은 사용후 핵연료는 다 어디로 갔을까. 100% 핵발전소 부지 안에 머물고 있다. 보관법에 따라 핵연료봉을 수조에 임시로 담가놓는 습식과 발전소 안 부지에 쌓아두는 건식 방식으로 나눈다. 이 저장 공간도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2016년 고리 핵발전소를 시작으로 저장 공간이 포화 상태에 이르게 된다.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에 있는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에는 방사능에 노출된 작업복·자재 등 사용후 핵연료(고준위폐기물)보다 방사능이 적은 중·저준위 폐기물을 묻는다. 정부는 오래전부터 고준위와 중·저준위 폐기물을 함께 묻는 처분장을 물색해왔다. 그러나 지반이 불안하고 안면도·부안 등에서 주민들의 반대 등을 겪으면서, 2004년 이해찬 당시 국무총리가 고준위와 중·저준위 처분장을 구분해 추진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지난 10월30일,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인 고준위 핵폐기물(사용후 핵연료) 문제를 어떻게 할지 논의하는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이하 공론위)가 출범했다. 공론위에서는 민간단체·국회·전문가·원전 지역 주민대표 등 15명의 위원이 사용후 핵연료를 앞으로 중간저장을 하느냐 직접 처분하느냐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어떤 종류의 화장실을 지을지부터 토론하겠다는 것이다. 공론위는 내년 말까지 논의를 마치고 정부에 권고 보고서를 제출하며, 정부는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앞으로 사용후 핵연료 정책을 추진한다.
사실 공론위는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7월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을 공론위원장으로 임명하고 현판식까지 앞두었는데 갑자기 출범이 취소된 바 있다. 뚜렷한 이유 없이 공론위를 막아선 뒤 원전 확대 정책을 펼친 이명박 정부는 임기 말인 2012년 11월이 되어서야 공론위 출범 준비를 시작했다.
4년을 돌고 돌아 간판을 내건 공론위지만 출발부터 삐거덕거리고 있다. 출범 당일 시민사회단체 추천 위원 2명이 위원회 구성에 이의를 제기하며 탈퇴했다. 애초 시민사회단체가 추천한 위원 대부분이 배제되고, 산업통상자원부·원자력산업계와의 연관성을 의심할 만한 인사가 대거 위원으로 발탁됐다는 게 이유였다.
이들의 우려는 공론위가 애초 역할과 달리 정부의 거수기에 그칠 것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환경단체 등은 공론위가 핵발전의 지속 여부등부터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지만, 정부가 최근 발표한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을 보면 핵발전 건설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박근혜 정부가 한-미 원자력협정을 고쳐서라도 사용후 핵연료의 중간저장을 통해 재처리를 하는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 공법)을 꾸준히 추진한다는 점을 보면 그렇다.
김익중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동국대 교수)은 최근 펴낸 에서 사용후 핵연료를 둘러싼 논쟁을 ‘열린 수도꼭지 이론’에 빗댔다. 수도꼭지를 타고 흐른 물이 아파트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그렇다면 물을 퍼내는 게 먼저일까, 수도꼭지를 잠그는 게 먼저일까. 공론위는 위기의 아파트에 어떤 해법을 내놓을까.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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