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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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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받는 스트레스 테스트

안전성 검사 과정에서 고장나 멈춰서버린 고리 1호기
노후화 논란과 핵발전소 안정성 우려는 점점 커져만 가고
등록 2013-12-07 14:31 수정 2020-05-03 04:27

130번. 11월28일 또다시 멈춰선 부산 기장군의 고리 핵발전소 1호기가 그동안 고장을 일으킨 횟수다. 우리나라 최초의 핵발전소이기도 한 고리 1호기는 이미 2007년 6월에 설계 수명(30년)이 만료돼 ‘은퇴 여부’가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그러나 정부는 ‘계속 운전’을 허용하기로 해, 현재 고리 1호기는 10년이 늘어난 2017년까지 수명이 연장됐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이날 고장 원인에 대해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다만 터빈 설비 쪽 고장으로 짐작될 뿐이다. 고리 1호기는 올해 들어 발전기를 세우고 점검을 실시하는 이른바 ‘계획예방정비’를 176일 동안 받고, 11월5일부터 발전을 다시 시작한 상태였다. 수명이 늘어난 고리 1호기는 최근엔 ‘스트레스 테스트’라는 것도 받았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일반적으로 최악의 상황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를 확인해보는 작업을 뜻한다. 금융권에서 한 금융기관의 재무 건전성을 따지는 작업도 스트레스 테스트라고도 부른다.
핵발전소에서 말하는 ‘스트레스 테스트’는 지진·해일·홍수 등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때 핵발전소가 이를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면밀히 따지는 작업이다. 핵산업계에 이 말이 생긴 건 얼마 되지 않는다. 그동안 30년 넘게 해오지 않던 이 작업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보편화됐다. 자연재해로 타격을 입은 핵발전소가 엄청난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핵발전소에 스트레스 테스트를 가장 먼저 시행한 건 유럽연합(EU)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오래된 핵발전소의 안전관리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예 선거 공약으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한 핵발전소 관리 강화를 내걸기도 했다.
정부는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의 스트레스 테스트를 EU 스트레스 테스트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독일 검사기관 ‘TUV 라인란트’에 맡겼다. 원전 비리 등으로 국내 핵산업계에 대한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탓에, 아예 해외 기관에 재검증을 맡겨 신뢰도를 높이겠다는 의도였다. 구조물·계통·기기의 변형과 노후화 여부 등을 직접 확인하는 현장 점검을 끝낸 독일 업체는 현재 분석 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TUV 라인란트가 한수원에 보고서를 제출하면, 그 내용을 바탕으로 올해 말부터 원자력안전위원회 산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과 민간 검증단이 고리 1호기에 대한 민관 합동 검증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고리 1호기가 멈춰서는 ‘악재’가 발생함에 따라 스트레스 테스트의 결과물이 빛을 보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수명 연장 뒤에도 4번이나 가동이 중단되면서 고리 1호기의 노후화 논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스트레스 테스트만으로 이를 잠재우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 가동 정지로 국내 원전 23기 가운데 6기가 멈춰서면서 겨울철 전력난 우려까지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고리 1호기가 멈춰서던 날, 환경운동연합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주목할 만하다. 환경운동연합이 여론조사 전문기관을 통해 전국 19살 이상 성인 남녀 1천 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77.8%가 핵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해 ‘우려한다’고 답했다. ‘우려하지 않는다’는 응답자는 17.5%였다. 국민 여론이라는 ‘스트레스 테스트’의 가장 높은 관문이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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