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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는 기본권이다

발전소 세워 에너지 빈곤층 돕는 자치단체들
등록 2014-01-04 16:26 수정 2020-05-03 04:27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의 한 가정집에 보일러가 놓여 있다.김명진

서울의 대표적 달동네인 노원구 중계본동 백사마을의 한 가정집에 보일러가 놓여 있다.김명진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에너지 공급자는 빈곤층 등 모든 국민에게 에너지가 보편적으로 공급되도록 기여해야 한다.”(에너지법 제4조 5항)

‘에너지 복지’라는 말이 있다. 인간다운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전기와 난방 등을 제공받을 권리를 뜻한다. 에너지법에서도 정부가 에너지 불평등이 이뤄지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며 에너지 복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에너지가 ‘기본권’ 대접을 받기 시작한 건, 12년 전이다. 2002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세계환경정상회의에서 유엔 회원국들은 이른바 ‘요하네스버그 선언’을 발표했다. 선언문에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빈곤층에 적정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 필수 과제”라는 내용이 담겼다. 에너지도 공기·물·음식과 같은 기본적 권리라는 점에 전세계가 처음으로 동의한 셈이다.

그러나 에너지 복지의 현실 적용은 쉽지 않다. 예산 부족에 시달리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에너지 빈곤층 지원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기 때문이다. 에너지 빈곤층 규모도 만만찮다. 일반적으로 난방·취사·조명 등 에너지 구입에 가구 소득의 10% 이상을 지출하는 계층을 에너지 빈곤층으로 보는데, 한국에너지재단의 자료에 따르면 전체 가구의 8%(약 120만 가구)가 여기에 해당한다.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에는 ‘에너지를 팔아 에너지 복지 비용을 얻는’ 방식이 등장했다. ‘태양광나눔발전소’가 대표적인 예다. 구청에서 세운 태양광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어 전력거래소에 판 뒤, 그 수익금을 에너지 빈곤층에게 지원하는 방식이다. 서울에서는 송파구와 성북구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미 2009년부터 사업을 시작한 송파구는 전남 고흥군 1호기(200kW), 경북 의성군 2호기(920kW), 송파구 장지동의 3·4호기(99kW·98kW) 등에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발전소 운영은 에너지 공익사업을 벌이는 비영리단체가 담당하고 있다. 송파나눔발전소에서는 2013년에만 1429만kW를 생산해 7억6천만원어치의 전기를 팔았다. 이 가운데 투자비 등을 제외한 발전소 수익금 3천만원이 관내 에너지 빈곤층의 밀린 전기·도시가스 요금을 대납해주거나, 오래된 냉장고·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고효율 제품으로 바꿔주는 데 쓰였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사업 초기에는 에너지 빈곤층에게 현금으로 직접 지원했으나, 장기적인 측면에서 고효율 제품 등으로 바꿔주는 방식으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성북구는 직접 나눔발전소를 세웠다. 주민참여예산제도를 통해 2억3천만원을 들여 지난해 10월 성북구의회 옥상에 용량 60kW의 태양광발전소를 세웠다. 현재 석 달간 꼬박 운영한 이 발전소의 전기는 전력거래소에 판매해 수익금을 적립하고 있다. 전력업체가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하는 태양광 신재생에너지 공급인증서(REC) 입찰에도 참여해 판매 수익을 내려 한다. 성북구 관계자는 “매해 REC 입찰이 두 차례 있는데, 지난해 10월 처음 참여했지만 값을 높게 써내는 바람에 유찰됐다. 내년 4월 입찰이 끝나야 수익금이 본격적으로 쌓일 것”이라고 말했다. 성북구는 오는 2월 에너지 빈곤층에게 지원하는 구체적인 조례를 만들기로 했다.

나눔발전소의 장점은 장기적으로 안정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데 있다. 지자체에서는 투자비 회수까지 7~8년이 걸릴 것으로 본다.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지원책이 축소되지 않는다면 말이다. 걸음마 단계인 나눔발전소의 미래 모습이 궁금해진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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