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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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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 전도사가 된 원자력공학자

고이데 히로아키 일본 교토대 조교수 방한 강연
‘탈핵’ 용납 않는 한국 원자력학계는 건강하신가
등록 2014-02-04 17:24 수정 2020-05-03 04:27

1월2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지하 대강당이 인파로 가득 찼다. 고이데 히로아키 교토대 조교(한국의 조교수)가 ‘공존의 과제, 탈핵’이라는 주제로 강단에 서는 행사였다. 일본에서 탈핵 전문가로 널리 알려진 그는 국내에서도 등의 책을 통해 핵발전의 이면에 담긴 문제점을 꾸준히 고발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이날 강연은 ‘아이들에게 핵없는 세상을 위한 국회의원 연구모임’과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의 초청으로 열렸다. 국내에서 처음 열린 고이데 조교의 강연은 쉬운 내용이 아니었음에도 일반인·환경전문가 등에게 큰 관심을 받았다.
그가 우리나라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받은 이유에는 그의 ‘특이한 이력’도 한몫했다. 그는 스스로 “한때 원자력 기술에 기대를 걸었던 사람 가운데 한 명”이라고 말하는 ‘원자력공학도’다. 그러나 그는 강연 다음날, 한국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핵발전의 위험성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멈추지 않았다. “이른바 ‘방사성 쓰레기’(사용후 핵연료)를 영구적으로 처분할 방법이 없는 현 상황에서 핵발전을 계속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36년 동안 핵발전 시설을 가동해온 일본의 방사성물질 배출량은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 130만 발분에 해당하는 양이다.”
고이데 조교가 걸어온 길은 우리나라 원자력학계의 시선으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지 모른다. 1949년생인 그는 원폭의 공포를 경험하면서 자랐다. 일본의 첫 핵발전소인 도카이 1호기가 가동하고 2년 뒤, 그 역시 원자력을 ‘꿈의 에너지’라고 생각하며 도호쿠대 원자핵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일본에서 가장 중요한 탈핵 전문가로 불리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가 벌어진 뒤 눈코 뜰 새 없는 활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도 꾸준히 강연 요청이 있었지만, 2년이 지나서야 한국 땅을 밟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가 핵발전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게 된 것은 원자력이 철두철미하게 차별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깨닫고 나서다. “핵발전소는 전기를 필요로 하는 도시에 세울 수 없어서 한산한 곳에 밀어붙여왔다. 핵발전소 현장에서 피폭 노동의 90% 이상은 하청·재하청 노동자에게 몰려 있다. 핵발전소가 사고를 일으키지 않아도 핵발전을 시작한 이상 핵분열 생성물이 나오고, 인류에게는 이 핵폐기물을 무독화할 힘이 없다.” 탈핵운동에 뛰어든 그는 핵발전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이카타 핵발전소 재판 등에 참여하며 피해 주민들을 도와 전문가로 활동했다.
그의 이력에서 놀라웠던 것은 ‘원자력학계의 이단아’로 불릴 만한 그가 여전히 학문의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이다. 도호쿠대에서 원자핵공학 석사과정을 밟은 그는 지금도 교토대 원자로실험소 조교로 일하며 원자력시설의 환경오염·사고 등 안전 문제에 대한 연구를 한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문득 예전에 취재차 만났던 원자력공학과 출신 탈핵 활동가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대학 동기들 대부분은 한국수력원자력에서 일하죠. 저를 만나면 대놓고 ‘배신자’라고 부르며 적개심을 숨기지 않아요.” 원자력학계 안에서 ‘핵발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다양성조차 인정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원자력학계는 언제쯤 한국의 ‘고이데 히로아키’를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김성환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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