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들어 내놓은 각종 주택 및 부동산 정책은 단기 부양책 일색이었다. 심지어 수도권 아파트 전매제한 완화 등 투기 조장책에 가까운 정책도 있었다. 수조원의 세금이나 공기업 자금을 동원해 건설업체 미분양 물량을 사들였다. 각종 다주택 투기자들을 위한 감세정책 등 부동산 부자들을 위한 정책이 넘쳐났다. 아직도 40%를 넘는 무주택 서민들을 위한 정책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가계소득이나 인구구조 변화 등에 발맞춰 중·장기적으로 한국 사회의 주택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오로지 집값 떠받치기에 목을 맨 정책 기조였다.
가계부채 폭탄, 더는 미루기 힘든 상황이럴 때마다 정부나 기득권 언론들은 ‘연착륙’을 부르짖었다. 부동산 시장이 경착륙하면 한국 경제가 위험하다면서 말이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 서민들이 더 힘들다’는 협박(?)까지 곁들였다. 하지만 정부의 미봉책 또는 미루기 대책은 사실 경착륙 조장책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계속 미룰수록 부동산 거품 붕괴의 충격은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정부의 부동산 부양책과 투기 조장책에 힘입어 2008년 이후 가계부채가 240조원 이상 늘어난 것이 대표적 예다. 주택대출 거치기간 만기를 지금처럼 계속 연장하면 분기별 대출 만기 도래액은 눈덩이처럼 커지게 돼 있다. 이런 판에 정부도, 금융권도, 가계도 계속 미루기를 선택해 90% 이상의 주택대출이 재연장되고 있다. 계속 이런 식으로 미루다가는 정말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부를 수 있다.
문제는 한국 경제 최대의 난제인 가계부채 폭탄이 더는 미루기 힘든 상황까지 이르렀다는 점이다. 선대인경제연구소의 유료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보고서 주제로 가계부채 문제를 분석해보니 이 정부 들어 가계부채 문제가 정말 심각해졌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가계부채가 202조원 증가했는데, 이명박 정부 4년(2008년 1분기~2012년 1분기) 동안에만 234조원 증가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부동산 가격이 대세하락기에 접어들고 부동산 거래 침체가 지속됐는데도 부동산 활황기였던 노무현 정부 때보다 더 많은 가계부채가 더 짧은 시간에 늘어났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 가계부채가 늘어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정상적으로 빚을 내 집을 살 수 없는, 소득 여력이 적은 사람들에게 정부가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사도록 부추긴 때문이다. 주택 거래량은 줄었어도 주택 거래당 부채 크기는 더 커졌다. 둘째, 고환율·저금리에 따른 고물가와 재벌 편중 경제 심화로 가계소득이 늘지 않아 가계들이 빚을 내 생활할 수밖에 없게 만든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때 평균 경제성장률은 4.3%였고 가계소득이 꾸준히 성장했으나, 이명박 정부의 평균 경제성장률은 3% 수준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실질 가계소득은 대기업 편중 성장과 고물가 부담 때문에 거의 정체됐다. 그런데 가계부채가 922조원을 넘어섰으니 일반 가계가 느끼는 부채 부담은 훨씬 더 커졌다고 봐야 한다.
전세제도가 불러오는 착시 현상
더구나 이명박 정부는 가계부채를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더욱 악화시켰다. 첫째, 다른 나라가 부동산 거품을 빼고 가계부채를 줄일 때 오히려 가계부채를 막대하게 늘렸다. 둘째, 보험사·대부업체·신용카드 할부까지 금리 부담이 큰 가계부채를 늘려 가계부채의 질을 악성화시켰다. 셋째, 수도권을 넘어 상대적으로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하지 않던 지방의 가계부채까지 크게 늘리고 악화시켰다.
만약 가계부채가 지금 속도로 증가한다면 5년 뒤인 2016년에 가계부채(한국은행 가계신용 통계 기준) 총액은 현재 922조원에서 1377조원으로 늘게 된다. 이에 따라 에서 보듯 개인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의 비율은 현재 135.3%에서 157.1%까지 늘어나게 된다. 지금이라도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하지 않고 ‘폭탄 돌리기’ 모드로 간다면 한국 경제는 회복하기 힘든 재앙을 맞게 된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지금 이명박 정부는 정확히 ‘폭탄 돌리기’ 모드를 지속하고 있다.
가계부채 문제는 이게 다가 아니다. 한국의 가계부채나 주택담보대출의 규모는 한국에만 있는 전세제도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아 보이는 착시현상을 불러일으킨다. 국내 전세금 규모는 최소 600조원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는 집주인이 투기적 목적이 아니라 여유 있는 주거공간을 세입자에게 전세로 준 경우도 있겠지만, 전세를 끼고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아 집을 여러 채 산 경우도 허다할 것이다. 따라서 전세금의 절반인 300조원을 주택 소유자가 금융회사 대신 세입자에게 빌린 돈이라고 보면 현재 가계부채는 920조원 수준에서 1220조원 수준으로 증가하게 된다. 주택담보대출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과소평가되는 착시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지금 주택담보대출액은 400조원에 채 못 미치지만 전세금의 절반만 포함해도 바로 750조원 수준으로 급증하게 된다.
이처럼 이미 가계부채가 폭발 직전 상황인데 마른 수건 쥐어짜듯 20~30대와 자산 가진 노후세대까지 빚내서 집을 사라며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완화책을 내놓은 게 이명박 정부다. 이 정도면 부동산 떠받치기와 가계부채 폭탄 돌리기에만 혈안인 정신이 나간 정부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다음 대통령, 정말 제대로 된 경제 대통령이었으면 좋겠다. 경제적으로 험난한 5년을 감당해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금이 마지막 기회
어쨌든 지금부터라도 단계적으로 가계부채 다이어트를 유도하고 부동산 거품을 빼서 충격을 분산해야 그나마 일시에 충격이 몰리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다. 지금 시중은행은 재무 상태가 괜찮은 편이다. 지금 단계적으로 분할해서 부동산 거품을 빼나가면 시스템적인 금융위기는 피해가며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다음 정권에서도 폭탄 돌리기 모드로 간다면 다음에는 진짜 큰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그나마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점을 대선 후보들은 명심했으면 한다.
선대인경제연구소장
* ‘선대인의 숫자 경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좋은 글을 써주신 필자와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