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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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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 키워 수출-내수 쌍발엔진으로 날자

수출로 먹고산다는 한국, 수출 극대화하면 되레 가계 몫 주는 상황

세계경제의 장기 침체 우려 상황서 수출·내수 병행 전략으로 가야
등록 2012-07-06 18:26 수정 2020-05-03 04:26
 정부 주장대로 수출을 늘리면, 즉 무역의존도를 높이면 더 잘살게 될까. 무역의존도 추이를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무역의존도가 낮아진 1987~96년의 10년 동안 가계 몫을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은 더 높아졌다. 부산 감만부두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정부 주장대로 수출을 늘리면, 즉 무역의존도를 높이면 더 잘살게 될까. 무역의존도 추이를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무역의존도가 낮아진 1987~96년의 10년 동안 가계 몫을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은 더 높아졌다. 부산 감만부두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흔히 한국을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라고 표현한다. 그만큼 수출을 통해 한국 경제가 성장한 측면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수출 대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합리화하려는 수사로 포장되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이래 추진된 동시다발적 자유무역협정(FTA)의 명분도 여기에서 나왔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이니 다른 나라와의 무역을 확대해 성장하도록 마치 운명지어진 나라처럼 묘사됐다. 정부가 FTA를 추진하며 ‘경제영토 극대화, 개방이익 선점’ 등을 홍보용 구호로 내건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무역의존도 낮았을 때 가계소득 높아

실제로 에서 보는 것처럼,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수출입 규모를 나타내는 무역의존도는 2010년 현재 102%로 높다. 일본과 미국의 무역의존도가 20% 전후, 영국·프랑스·러시아가 35~40%, 중국이 45%, 독일이 60%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것이다. 물론 홍콩, 싱가포르 등 국제적인 상품 및 서비스 중개무역으로 먹고사는 나라들보다는 낮다. 유럽 국가들 중에선 스웨덴,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의 무역의존도가 높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인구 300만~600만 명 정도의 도시국가로 내수만으로는 먹고살기 어렵다. 한국처럼 웬만한 경제 규모를 갖춘 나라 가운데 무역의존도가 이 정도로 높은 나라는 드물다. 같은 수출 주도 경제인 중국과 독일의 무역의존도만 비교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지금도 무역의존도가 너무 높은데, 이를 막무가내로 더 높이자는 것이다.

정부 말대로 수출을 늘리면, 즉 무역의존도를 높이면 더 잘살게 될까. 무역의존도 추이를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경제개발 초기에 이른바 수출 드라이브를 통해 경제성장이 시작됐고, 1970년대 초반까지 경제성장과 함께 무역의존도가 높아졌다. 하지만 1970년대 초반 이후로는 다른 양상이 나타났다.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를 바탕으로 소득이 늘자 내수도 성장하기 시작해 수출입 규모가 계속 늘었음에도 무역의존도는 60% 수준에서 거의 늘지 않았다. 1980년대 초반 석유파동 등으로 수입이 늘어 일시적으로 무역의존도가 높아진 적이 있으나, 오히려 1980년대 후반 3저(저달러·저유가·저금리) 호황과 민주화가 맞물리자 무역의존도가 50%대까지 떨어졌다. 반면 가계 가처분소득이 빠르게 늘었고, 계층 간 소득 격차는 역대 어느 시기보다 줄어들었다. 이때가 어쩌면 성장과 분배 양 측면에서 한국 경제의 황금기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외화위기 이후 재벌 대기업 중심으로 무역의존도가 높아졌지만 경제성장은 둔화되고 내수는 위축됐으며 가계는 늘 불경기에 시달렸다. 국민소득 가운데 가계가 급여 등으로 챙기는 몫을 나타내는 노동소득분배율이 외환위기 이후 무역의존도가 높아지며 악화돼왔음을 알 수 있다. 수출이 늘어나고 경상수지 흑자 폭이 커져도 일반 가계의 소득으로는 거의 돌아오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반면 무역의존도가 낮아진 1987~1996년의 10년 동안 노동소득분배율은 더 높아졌다. 물론 그 이전에는 무역의존도와 노동소득분배율이 대체로 함께 높아졌는데, 앞서 설명한 대로 경제발전 초기 수출과 내수의 선순환 고리가 형성됐던 시기의 얘기일 뿐이다. 적어도 외환위기 이후 그 고리는 완전히 끊어졌고, 이제 수출을 극대화할수록 일반 가계의 몫이 줄어드는 지경에 이르렀다. 인위적인 고환율 등으로 일반 국민의 부를 수출 대기업에 이전해주면서까지 수출을 비대화하고 내수를 극도로 위축시킨 셈이다. 그 결과 GDP에서 내수, 즉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 70%, 일본과 유럽 국가들은 60%대에 이르는데 한국은 50% 수준에 그치고 있다.

수출 일변도 경제의 취약성

이처럼 경제 규모에 걸맞지 않게 수출만 극도로 비대해진 경제는 안정적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비유하자면, 한국 경제는 내수와 수출이라는 쌍발엔진 가운데 수출이라는 엔진 하나만 주로 사용해 경제성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해서는 질적 성장은 고사하고 양적 성장조차 제대로 이루기 어렵다. 특히 5~10년간 세계경제의 장기 침체 또는 장기 저성장이 예상되는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2008년 말 세계경제 위기 때 그 진원지도 아닌 한국이 분기에 -20% 넘는 경기 후퇴를 경험했던 것도 수출 일변도 경제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유럽발 부채위기가 본격화하자 올해 초부터 한국 수출액이 급감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내수를 키우는 전략으로 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과 더불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및 저임금 노동자 중심의 임금 상승을 유도해가야 한다. 즉, 사람값을 높여야 한다. 이를 단순히 비용 개념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다. 사람값이 높아지면 인력들이 자연스레 안정감을 갖고 고부가가치를 올리려 노력하게 된다. 생산성이 높은 사람일수록 더욱더 대접받는 사회가 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사람값, 즉 인건비와 이들의 노력이 들어간 서비스가 비싼 이유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가계소득을 높이면 자연스레 소비가 늘고 이것은 다시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 수요로 이어진다. 결국 길게 보면 기업에도 도움이 되는 길이다. 다만 일부 수출 대기업보다 저소득층 사이에 돈이 돌아 이들을 주소비층으로 하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살아나게 된다. 밑바닥 경기가 살아나는 것이다. 그러면 국민 대다수의 삶이 개선되고, 자연스레 소득 및 산업 간 격차도 줄어들게 된다. 경제의 양적·질적 성장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삼성·현대차 특혜적 지원 없이 경쟁해야

그렇다고 수출을 인위적으로 위축시켜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한국 수출제품의 고부가가치화가 지속돼야 하고, 중소기업의 기술 개발 지원 및 수출 판로 개척 확대도 진행돼야 한다. 다만 과도한 환율과 특혜성 수출보조금 지원, 막무가내식 무역협정 추진 등을 탈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는 특혜성 지원 없이 기술경쟁력과 브랜드력으로 세계 무대에서 경쟁하게 해야 한다. 충분히 그럴 만한 수준에 들어섰다. 그들에게 지원하는 자원을 일반 가계에 돌려야 한다. 한국도 이제 수출과 내수의 병행 전략으로 가야 한다. 한국 경제는 쌍발엔진으로 날 때 훨씬 더 안정적이고 멀리 날 수 있다.




선대인경제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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