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강남 재건축을 비롯해 수도권의 주택 가격이 빠르게 가라앉고 있다. 그동안 치솟던 전세 가격도 다시 가라앉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일반 가계의 소득 대비 집값이 너무 높아진데다, 빚을 내 집을 살 수 있는 수요도 거의 소진돼 수도권 집값이 가라앉고 있는 것이다. 집값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데 소득은 늘지 않아 일반 가계의 부채 상환 능력이 떨어지면 집값 하락은 악순환의 고리에 들어가게 된다. 그 악순환이 급격히 진행되면 한국 경제에 큰 충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일본처럼 장기 침체될 가능성
문제는 주택 가격 하락 압력은 시간이 갈수록 가중된다는 점이다. 금융권은 2008년 이후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 상환 만기를 계속 연장해주고 있다. 이는 당장 집값 급락과 연체자 급증을 막는 방편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만기 도래액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된다는 점이다. 주택담보대출 만기 도래액은 2012년 하반기에 이르면 2009년의 약 2배에 이르게 된다. 그만큼 가계와 금융권의 부담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향후 유럽발 경제위기 등으로 2008년과 같은 신용경색이나 국내 증시에 들어와 있는 외국 자본의 급격한 이탈이 발생한다면 주택 가격이 폭락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2009년 시작된 건설 및 부동산 시장 부양을 위한 대규모 공공토건 사업도 거의 한계에 이르렀다. 또한 대표적 개발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를 비롯해 한국수자원공사, 한국도로공사, 서울시 SH공사와 인천도시개발공사, 경기개발공사 등 지자체 개발공기업들이 부채를 줄이려고 사업 축소에 들어가게 된다. 특히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사업 축소는 토지보상금 감소로 이어져 부동산 시장을 더욱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런 하락 압력은 시작에 불과하다.
좀더 길게 보자면 인구 감소와 저출산, 고령화에 따라 집을 줄이는 노후 세대 가구 수 증가로 전반적인 부동산 수요는 지속적으로 줄게 된다. 이 때문에 2010년대 국내 주택시장은 일본처럼 장기 침체 국면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이를 좀더 눈에 띄도록 계량화해보면 향후 인구 변화에 따른 주택 수요 감소 효과가 얼마나 큰지 놀라게 될 것이다. 통계청에서 조사한 연령대별 부동산 보유 평가액을 보면, 30대 후반~40대 전반을 중심으로 부동산 보유액이 50대 후반까지 늘다가 60대 이후로는 줄게 된다. 이는 흔히 생활에서 체감하는 현실과 일치한다. 30대 초반에 사회에 진출해 30대 후반~40대 전반에 첫 집을 장만하고 이후 자녀 출산과 성장, 승진 및 급여 증가 등에 따라 50대 후반까지는 집을 늘리게 된다. 그러다 60대에 접어들어 자녀를 출가시킨 뒤 집을 줄여가거나 집을 팔고 전세로 옮겨가는 것이다.
이런 연령대별 부동산 자산 증가액에 연령대별 가구 수 증감분 추계치를 곱해 지수화해보았다. 예를 들어 어떤 시점에 55~59살 가구 수가 10만 가구면 이는 2조8천억원(=10만x2800만원)만큼의 주택 구매력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된다. 반면 같은 시점에 65살 이상 가구 수가 10만 가구라면 이는 5조8천억원(=10만x-5800만원)만큼 주택 수요가 사라지는 효과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해당 시점에 전 연령대별 가구 수가 가지는 부동산 구매력의 총합을 더하면 총량으로 본 국내 ‘부동산 구매력 지수’를 도출할 수 있다.
MB정부,‘폭탄’넘기려 4대강 등 토건사업 남발
에서 알 수 있듯 전국의 부동산 구매력 지수는 2000년부터 이미 줄기 시작해 2010년대에는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가듯 떨어진다. 2000년을 100으로 잡았을 때, 전국의 부동산 구매력 지수가 2010년 91.5에서 2020년 67.2, 2030년 24.4로 급감하는 것이다. 쉽게 비유하자면, 2000년에 5억원짜리 집을 사줄 수 있는 가구가 100가구 있었다면 2030년에는 24.4가구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수도권의 경우에도 2010년 102.7에서 2020년 85.9, 2030년 40.7로 급감하게 된다. 수도권의 경우 2010년의 부동산 구매력에 비해 2030년의 구매력은 40%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특히 급속한 고령화에 따라 60대 이상 노후 세대가 증가하면 단순히 신규 주택 수요 감소에서 그치지 않고, 매물로 나오는 기존 주택이 늘어나 주택시장에 더블 펀치를 먹이게 된다. 이처럼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부동산 구매력이 급감하는 현상을 정부의 인위적인 부양책으로 떠받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2000년대에 이미 5년치 이상의 미래 수요를 앞당겨 써버려 잠재 수요가 바닥에 이른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해가 갈수록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부동산 구매력이 가파르게 줄면 주택시장이 어떤 길을 가게 될지는 굳이 자세히 설명하지 않아도 자명하다. 일본의 주택시장이 장기 침체에 빠진 데는 금융권 부실채권 정리와 건설업체 퇴출 등 구조 개혁이 지연된 탓도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구구조 변화로 부동산 구매력이 감소한 탓이 크다고 봐야 한다. 한국도 일본처럼 주택시장 장기 침체로 치닫는 길이 훤히 열려 있다.
이처럼 주택시장은 이미 되돌리기 힘든 대세 하락 흐름에 들어 있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다음 정권에 ‘폭탄’을 떠넘기려 온갖 부동산 부양책과 4대강 사업 등 공공사업을 남발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경제 전체적으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막대한 자원만 소진하게 될 뿐이다. 외환위기 이후 3배 이상 늘어난 건설업체 모두를 언제까지나 온 국민이 먹여살릴 수는 없다.
고통이 따르더라도
그러면 그럴수록 부동산 시장에 돈이 묶여 내수경제의 활력은 떨어지고, 일자리와 가계소득은 줄고 가계 부채 문제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지식정보화 시대, 창의경제 시대의 선진경제로 나아가는 활로만 막힐 뿐이다. 지금이라도 풍선의 바람구멍을 열어 바람을 빼나가듯 부동산 거품을 서서히 빼야 한다. 그 길만이 일시적인 고통이 따르더라도 중·장기적으로 한국 경제를 진정으로 살리는 방법이다.
선대인경제전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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