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한 명의 천재가 수백만 명을 먹여살린다”고 한 말이 상징하듯, 한국 재벌들은 자신들 1%가 국민 99%를 먹여살린다는 인식을 퍼뜨려왔다. 하지만 진실은 정반대다. 이들 1%가 온갖 특혜를 누리며 99% 국민을 등쳐먹고 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재벌기업들이 누리는 ‘세금 특권’이다.
한국의 법인세율 OECD 22번째로 낮아
보도에 따르면, 2010년 법인세 실효세율(법으로 정한 세율인 명목세율과 달리 각종 세액공제 등을 통해 실제로 과세 대상자가 과세표준 대비 내는 세금 부담 비율)은 16.6%로, 2008년 20.5%, 2009년 19.6%에 이어 계속 낮아지고 있다. 2010년 법인세 명목세율은 22%였는데, 이보다 5.4%포인트나 낮은 것이다. 각종 비과세 및 감면 혜택을 받아 기업들이 실제로 내는 법인세 부담은 명목세율보다 상당히 낮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런 비과세 감면 혜택이 집중되는 대상은 재벌기업들이다. 내가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해보니, 2009년 법인세 감면세액 6조7천억원 가운데 40%가 넘는 2조7천억원이 전체 대상 기업의 0.0004%에 불과한 상위 47개 대기업에 돌아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2010년 세제 개편을 통해 연구·개발(R&D) 투자 금액의 3~6%를 세액공제해주던 것을 신성장동력 및 원천기술 R&D 투자의 경우 투자 금액 20%를 세액공제해주는 것으로 바꿨다. 신성장동력 및 원천기술엔 3D 기술, 녹색기술, 차세대 액정표시장치(LCD) 기술, 정보기술(IT) 융합기술 등이 포함되는데, 거의 대부분 대기업의 주력 투자 부문이었다. 사실상 대기업의 R&D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혜택을 3~6%에서 20%로 대폭 늘려준 대기업 특혜였던 셈이다. 이로 인해 R&D 투자 세액공제 규모는 2010년 1조8천억원에서 2011년 2조8천억원으로 1조원가량 늘어났다. 물론 그 혜택은 거의 대부분 재벌 대기업들이 독식했다.
이런 식으로 정부는 대기업에 대한 R&D 투자 비과세 혜택을 늘려왔는데, 그 결과 1998년 2천억원에서 2011년까지 14배가량 급증했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는 2012년 R&D 투자의 세액공제 혜택 역시 93%가 대기업에 집중되고, 이 가운데 42%가 상위 10대 재벌 기업에 집중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런 혜택을 집중적으로 받은 결과 2010년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법인세 실효세율은 각각 11.9%와 16.5%였다.
상황이 이런데도 기득권 세력들은 ‘한국의 법인세 부담이 높아 기업 해먹기 어렵다’고 떠든다. 예를 들어 는 ‘만일 삼성이 한국을 떠난다면’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은 22%로 대만(20%), 싱가포르(17%), 홍콩(16.5%)에 비해 높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하지만 한국의 법인세율은 2009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22번째에 불과할 정도로 낮다.
2조원 지분에 납부 증여세는 16억원뿐
경제대국인 일본과 미국이 법인세율 1·2위를 다투고 있으며, 한국보다 경제수준이 높은 나라들이 대부분 한국보다 법인세율이 높다. 일본의 주요 기업인 소니와 도요타자동차 등은 30%대의 법인세를 부담하고 있다. 오히려 헝가리·체코·터키·슬로바키아·폴란드 등 한국보다 경제수준이 낮은 나라들의 법인세율이 더 낮다. OECD 국가들 가운데 법인세율이 가장 낮은 나라는 아일랜드와 아이슬란드인데, 이 나라들은 심각한 금융위기와 재정위기를 겪었다. 과도한 감세정책으로 유입된 투기자본이 부동산 거품을 부풀려 결국 심각한 금융 및 재정 위기로 이어진 것이다.
기득권 언론들이 비교 대상으로 주로 언급하는 홍콩·싱가포르 등도 아일랜드나 아이슬란드처럼 인구 규모가 적어 내수로 먹고살기 힘든 나라여서 법인세를 낮춰 외국자본을 유치해야 하는 도시형 국가들이다. 이런 예외적 사례를 들먹이며 한국의 법인세 부담이 높다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한 왜곡이다.
이렇게 재벌기업들이 막대한 특혜와 지원을 받는 가운데 이 기업들을 지배하는 재벌 일가들 또한 온갖 탈·불법을 저지르며 세금을 회피하고 있다. 예를 들어 2008년 특별검사 과정에서 4조5천억원에 이르는 차명재산 보유 사실이 드러난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은 단 한 푼의 상속세도 내지 않았다. 정상적이라면 최소 2조원의 상속세를 내야 하지만, 과세 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단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 일가들은 정당한 상속세나 증여세를 내지 않은 채, 경영권을 탈법 또는 불법적으로 승계하고 있다. 역시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삼성그룹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불법행위가 대표적이다. 삼성에버랜드 25.1%, 삼성SDS 0.1%, 삼성전자 0.65% 등 시가로 2조원에 육박하는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지만 지금까지 납부한 증여세는 16억원에 불과하다. 1995년 이건희 회장에게서 60억원을 증여받는 과정에 납부한 증여세가 전부다.
지금 한국 재벌들은 온갖 명목으로 ‘세금 없는 경영권 승계’를 집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2010년 4월 현재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국내 대규모 기업집단(공기업 제외)의 회사 수는 모두 1222개다. 이 기업집단들의 자산총액은 1106.2조원이 넘는다. 그리고 삼성·현대·LG·SK 등 4대 재벌그룹을 포함한 상당수 기업들에서 대부분 3세 승계가 진행 중이다. 그룹에서 3세들이 이미 승계한 자산만 최소 수십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재벌 독식 지속되면 ‘멕시코형 사회’될 수도
만약 재벌가들의 3·4세가 전체 자산의 10%에 해당하는 재산을 승계할 경우 정상적으로 상속세나 증여세를 낸다면 약 44조원의 세금을 내야 했다. 하지만 2006년 이후 매년 과표 500억원 이상의 상속세를 낸 상위 4~6명의 것을 합치면 1300억~1700억원대의 세금을 내왔을 뿐이다. 이나마도 재벌기업의 승계자들이 낸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이처럼 재벌가들은 탈세를 밥 먹듯 하면서도 극히 적은 지분을 가지고 재벌그룹을 좌우하는 경영권을 승계하고 있다. 흔히 재벌가 후계자들이 대주주인 비상장 계열사를 세워 그룹 차원에서 일감을 몰아줘 회사를 키워주고 그룹 지배권을 장악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재벌 계열사들이 황소개구리처럼 그 수가 빠르게 늘어 산업생태계는 무너지고 일자리 수는 줄어들고 있다. 이대로 10년, 20년이 지나면 한국 경제는 재벌 독식으로 인한 폐해가 극심해져 ‘멕시코형 사회’가 될 수도 있다. 재벌들의 무한 증식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선대인경제전략연구소장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폭설로 지하철 몰린 시민들 “거대 인파, 이태원 공포 떠올라”
한동훈, 도로교통법 위반 신고돼…“불법정차 뒤 국힘 점퍼 입어”
“119 잘하나 보려고” 논에 불 지른 경북도의원…대체 무슨 짓
제주공항 도착 항공기에서 50대 승객 숨져
기류 달라진 한동훈 ‘김건희 특검법 찬반 얘기할 필요 없다’
“김건희 고모가 ‘벼락맞을 한동훈 집안’ 글 올려”…친윤-친한 진흙탕
한은, 기준금리 2연속 인하…내년 성장률 전망 1%대로
이례적 가을 ‘눈폭탄’…오늘도 전국 곳곳 최대 15㎝ 이상 예보
기준금리 연 3%로 깜짝 인하…15년 만에 두 차례 연속 내려
머스크, 한국 ‘인구 붕괴’ 또 경고…“3분의 2가 사라질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