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을 두고 논란을 거듭해야 하는 이슈가 한국에는 참 많다. 국제적으로 비교만 해봐도 결론이 뻔한데 기득권 세력의 힘과 그들을 대변하는 나팔수들의 목소리가 크다 보니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표적인 게 ‘복지 포퓰리즘’ 논란이다. 세상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공공사회복지 지출이 꼴찌 수준인 나라에 어떻게 ‘복지 포퓰리즘’ 딱지를 붙인단 말인가. 생활필수품도 제대로 못 사는 저소득층에게 사치하지 말라는 꼴이다.
고속성장으로 과세대상·소득이 늘어서
법인세 논란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법인세율 부담이 세계적으로 상당히 낮은 축에 속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런데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 주장이 나와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법인세액 비중이 OECD 4위이니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몇 년 전부터 떠들더니 이제는 기획재정부와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까지 이런 근거를 내세워 ‘법인세 인하’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악의적 왜곡과 심각한 논리적 오류의 산물이다.
따져보자. GDP 대비 법인세액 비중이 올라갈 가능성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크게 1) 과세 대상자가 늘거나 2) 과세대상 소득이 늘거나 3) 세율이 올라가는 것 등이다. 하지만 개별 기업 처지에서 보면 법인세 부담이 커지는 경우는 법인세 세율이 올라가는 것(세제상 나타난 명목 법인세율뿐만 아니라 비과세·감면 혜택 등이 줄어 실질 법인세율이 올라가는 것을 포함)을 말한다.
[%%IMAGE2%%]그런데 기득권 세력들은 GDP 대비 법인세액 비중이 크다는 사실을 국내 기업들의 법인세율이 높다는 주장과 교묘히 등치시킨다. 하지만 한국의 GDP 대비 법인세액 비중이 높은 것은 세율이 높아서라기보다는 1), 2)번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세통계연보에 수록된 1982년 이래 2010년까지 법인 수는 17.9배 늘어났다. 그런데 그사이 이들 법인이 가져가는 국민처분가능소득의 몫은 65.7배 늘었고, 법인세 과세소득 금액은 83.9배 늘었다. 하지만 과세금액은 52.5배 느는 데 그쳤다. 그사이 1개 법인당 과세소득 금액은 4.7배 늘었지만, 1개 법인당 과세금액은 2.9배 느는 데 그쳤다. 즉, 평균적으로 법인세 과세소득이 늘어난 것에 비하면 과세액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줄어든 것이다. 지난 30년 가까이 법인세액이 늘어난 것은 한국 경제와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고속성장을 해 과세 대상자가 늘고 과세 대상 소득이 크게 늘어서지 세율이 올라서가 아니라는 뜻이다.
개별 기업들의 법인세 부담을 정확히 나타내주는 지표는 말 그대로 실효 법인세율이다. 실효 법인세율은 나라마다 달라 국제적으로 비교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명목 법인세율은 한국이 OECD 평균보다 상당히 낮다. 2012년 기준 한국의 명목 법인세율은 24.2%로, OECD 34개국 가운데 21번째로 낮은 편에 속한다. 한국보다 법인세율이 낮은 13개국은 자본을 유치해야 먹고사는 아일랜드·아이슬란드 같은 도시형 국가거나 헝가리·폴란드·슬로베니아 등 과거 동유럽 국가가 대부분이다. 법인세율이 가장 높은 일본과 미국 등의 경우를 보면 오히려 선진국일수록 법인세율은 높은 편이다.
외국에선 개인소득도 한국에선 법인소득 간주
명목 법인세율이 이렇게 낮은데, 대기업들에 부과되는 실효세율은 이보다 훨씬 낮다. 역대 정부에서 대기업들을 중심으로 각종 세액공제 혜택을 제공한 덕이 크다. 실제로 에서 볼 수 있듯 국세통계연보의 수치로 분석해본 2010년 기준 한국의 평균 실효세율은 명목 세율보다 훨씬 낮은 16.56%에 불과하다. 더구나 전경련이나 기재부, 박근혜 후보 등의 관심 대상인 5천억원 이상 42개 대기업의 실효 법인세율은 과세소득 수백억원대 중견기업이 내는 실효 법인세율보다도 낮다.
이처럼 한국 개별 기업들이 내는 법인세 부담은 국제적으로 비교할 때 오히려 상당히 낮은 편이다. 최근 경제위기를 거치며 OECD 국가 가운데 일부가 경기 진작을 위해 법인세율을 내린 것은 맞다. 그렇다고 해서 당초부터 법인세율이 낮았던데다 특히 경제위기 속에서도 사상 최대의 실적을 연거푸 올린 재벌 대기업들을 위해 한국이 법인세율을 낮출 이유는 전혀 없다. 오히려 대기업들의 비과세 감면 혜택을 대폭 줄여 실효세율을 높이고, 명목 법인세율을 누진 구조로 일정하게 올릴 여지도 있다. 실제로 5천억원 이상 법인 42개 기업이 수백억원대 중견기업 수준의 세금만 내도 2010년 기준 약 9천억원의 세금을 더 거둘 수 있다. 이 대기업들이 내지 않은 세금만큼 국민 호주머니에서 세금이 더 나가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빠트릴 수 없는 중요한 사실은 GDP 대비 법인세액 비중을 비교할 때 중요한 함정이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 법인세로 잡히는 상당 부분의 소득이 미국·독일·프랑스 등 상당수 국가에서는 개인소득으로 잡힌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파트너십 회사나 S코포레이션(S-corporation)이라고 하는 기업들의 소득은 개인소득세로 잡힌다. 그런데 이런 파트너십 회사나 S코포레이션 등의 기업이 숫자로는 70%, 세수 비중으로는 30~40%에 이른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세부 회사 구분이 없기 때문에 모두 법인세수로 잡힌다.
이 때문에 OECD 비교통계에서 GDP 대비 한국의 법인세액은 상대적으로 과대평가되고 개인소득세액은 과소평가되는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만약 미국이나 독일과 같은 방식으로 구분한다면 한국의 GDP 대비 법인세액 순위는 지금보다도 크게 떨어질 것이다. (GDP 대비 법인세 부담액의 비중 차이가 국가별로 큰 차이가 안 나 조금만 비중이 늘거나 줄어도 순위가 크게 달라진다)
전경련 주장 그대로 읊조리는 대선 후보
결론적으로 ‘GDP 대비 법인세액 비중이 높으니 법인세율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관계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논리적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국제 비교통계상의 맹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주장이다. 몇 년 전부터 전경련 등에서 나오던 주장을 이제 기재부 장관과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앵무새처럼 읊조리고 있다. 과연 이들은 국민의 편인가, 재벌 대기업들의 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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