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거진 지하철 9호선 요금 50% 인상 문제는 한국의 기형적 민자사업의 문제점과 폐해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민자사업 물량은 국제적으로 볼 때, 도입 역사의 일천함이나 경제 규모 등을 생각할 때 과도할 정도로 많다. 매킨지컨설팅이 주요 국가별 민자사업 투자 예정 물량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06년 기준으로 한국의 민자사업 예정량은 약 270억달러(2006년 평균환율 환산 약 27조원)에 이른다. 이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8% 정도로 민자사업의 종주국이라고 할 수 있는 영국의 1.5%나 미국의 0.4%에 비해 훨씬 높은 수치다. 이처럼 국내에서 민자사업 물량이 단기간에 급증한 것은 건설업체들이 큰 위험 없이 폭리를 취할 수 있는 특혜성 사업으로 민자사업이 변질된 데 기인한다. 어떤 점에서 그런지 살펴보자.
#민자사업에 거액의 재정 보조한국의 기형적 민자사업은 그 명칭과 달리 건설 과정에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막대한 재정 보조를 받는다. 외국의 민자사업은 거의 100% 민간자본으로 사업을 진행한다. 하지만 국내 민자사업들은 정부나 지자체 등 공공이 거액의 건설보조금을 지원해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건설보조금이 총공사비의 30~50%에 해당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이번에 문제가 된 지하철 9호선은 3조5천억원 가까운 사업비 가운데 민간자본이 5500억원 정도밖에 투입되지 않고, 세금이 80% 이상 들어갔다. 이처럼 대규모 공공 재원이 투입된 사업을 어떻게 민자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런데 지하철 9호선 상부 구간 공사만 따져도 공공 지원이 46%나 된다. 실컷 재정을 들여 사업해놓고 민자사업자에게 사업운영권을 준 격이니, 이건 민간자본 기여분에 비해 막대한 특혜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이에 더해 국내에서는 민자사업자가 금융권에서 돈을 끌어올 경우 정부와 지자체가 보증까지 서주는 방식으로 간접적 재정 보조를 하기도 한다.
2009년 기준, 적자보전액 20조원 넘어
#다른 나라에 없는 최소운영수입 보장제도민자사업자가 건설한 뒤 운영하는 시설의 운영수입이 추정 운영수입보다 적으면 일정 비율에 따라 국가가 적자를 보전해주는 ‘최소운영수입보장’ 제도의 문제점은 이미 숱하게 지적됐다. 예를 들어 천안~논산 고속도로는 2007년까지 총 1984억원의 적자보전금이 지급됐고, 우면산터널 도로도 2013년까지 608억여원이 지급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일일이 모두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2009년 9월 기준으로 국가와 지자체가 관리하는 ‘수익형 민자사업’(BTO) 169건(53.8조원 투자 규모)의 총적자보전액은 20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참고로 같은 시점에서 ‘임대형 민간투자사업’(BTL) 292건 14.8조원의 향후 리스 지급금 역시 20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최소운영수입보장제도는 다른 나라에 없는 제도다. 이 때문에 최소운영수입보장제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자 기획재정부는 2006년부터 적용된 민자사업 기본계획에서 민간제안사업의 경우 운영수입보장을 폐지했다. 2009년에는 정부고시사업에서도 이를 폐지했다. 하지만 정부는 해당 사업을 재정으로 추진했을 때 발생할 원가 한도 안에서 수입 부족분을 지원하기로 했다. 여전히 민자사업 수익을 재정으로 일정하게 보장해주고 있는 것이다.
#공사비 폭리막대하게 부풀려진 공사비를 통해 건설사가 폭리를 취하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사업비에 대한 전문적 검증 절차 없이 업계의 로비로 공사비가 부풀려질 개연성이 높은 민자사업의 낙찰률은 사실상 100%라고 할 수 있다. 최저가 낙찰제 공사의 평균낙찰률이 약 65%인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부풀려지고 있는 셈이다.
보통 건설업체들의 컨소시엄으로 구성된 사업시행자가 민자사업을 따내면 건설사들은 민자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사전에 약정된 비율만큼 지분을 투자해 특수목적회사(SPC·Special Purpose Company)를 설립하고 그 출자 비율에 따라 시공권을 나눠 갖는다. 참여 건설업체들은 책정된 총공사비의 30~40%를 남긴 뒤 기존 국내 건설사업처럼 다단계 하도급을 거쳐 공사를 진행한다.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자. 대구~부산 고속도로의 도급 및 실행 내역을 살펴보면 민자사업 공사비가 얼마나 부풀려졌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이 사업의 총공사비는 1조7360억여원이다. 이 가운데 직접공사비 8720억원과 간접공사비 1699억원 등 실제로 투입된 비용은 1조419억원이다. 결국 참여 건설업체들은 이 사업에서만 무려 40%가량을 남긴 것이다.
공사비의 40% 이익 남기기도
#민자사업자로 둔갑한 건설업체들민자사업에서 건설업체들이 폭리를 취할 수 있는 이유는 민자사업 추진 과정과 구조가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등 민자사업이 활성화돼 있는 선진국에서는, 부동산개발업체 등이 정부가 고시하는 사업에서 프로젝트를 따내 시설 운영에서 발생하는 미래의 현금흐름을 근거로 재무적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유치해 시설물을 건설한 뒤 시설 운영에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수십 년간에 걸쳐 투자수익을 회수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즉, 재무적 투자자가 중심이 되는 사업구조다.
하지만 국내 민자사업은 겉으로는 SPC를 설립하고 일부 재무적 투자자를 끌어들여 흉내를 내고 있지만, 실제로는 철저히 건설업체들 중심의 사업구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상위 재벌급 건설업체들이 한두 개의 컨소시엄을 구성해 민자사업을 따낸 뒤 출자 비율만큼 서로 시공권을 나눠 갖는 담합 구조를 보인다. 외부 재무적 투자자의 비율이 현저하게 낮고, 건설업체들끼리 상호 출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도로사업은 거의 대부분 사업을 따낸 건설업체 컨소시엄만으로 SPC가 구성된다(표 참조).
이처럼 국내 민자사업은 건설업체들과 이에 투자한 기관투자자들에게 시공과 운영 과정에서 막대한 ‘저위험 고수익’을 누리게 해주는 특혜라고 할 수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번에 논란이 된 지하철 9호선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수수방관하고 있는 정부 당국으로 인해 시민들의 세금과 통행료 부담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선대인경제전략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