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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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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존의 모순 폭로한 그리스 재정위기 사태

통화주의 바탕으로 이뤄진 독일 중심 유로존의 실상 유럽 전체가 떠안아야 할 역사의 짐 먼저 진 그리스
등록 2012-03-03 12:20 수정 2020-05-03 04:26

2월21일 유로존 국가 재무장관들이 그리스에 대한 1300억유로의 2차 구제금융에 합의했다. 덕분에 그리스는 당장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는 피하게 되었다. 한동안 폭발 일보 직전 양상을 보이던 그리스 재정위기는 이것으로 일단 다시 소강 국면에 접어든 것 같다.

왜 그리스 좌파 안에서 EU 탈퇴론 나오나

하지만 낙관론은 아직 이르다. 구제금융 조건으로 그리스에 강요된 긴축정책이 경제 회생의 발목을 잡아 조만간 재정위기가 재연될 수밖에 없다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좌파 경제학자들만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유럽연합(EU) 고위층에서도 이런 비관론이 새나오고 있다.

그리스 안에서도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있어서 더욱 그렇다. 사회민주주의 왼쪽의 두 정당, 공산당(KKE)과 급진좌파연합(Syriza)의 지지율이 합쳐서 거의 30%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지금 이 나라의 격동을 잘 보여준다. 만약 이 두 정당이 공동 집권에 합의한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좌경한 정부가 선거로 등장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합의는 현재로서는 불가능할 것 같다. 무엇보다도 유로존·EU에 대한 심각한 견해차 때문이다. 공산당이 유로존, 더 나아가 EU에서 탈퇴하자는 견해인 데 반해 급진좌파연합은 EU 안에 머물며 그 내부 민주화를 추진하자는 쪽이다. 구제금융 조건으로 이제 경제정책 결정권을 사실상 유로존 재무장관들에게 넘기게 된 그리스인들에게 이것은 한가한 이론적 문제가 아니다. 지금 당장 결단해야 할 정치적 선택의 문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의문이 생긴다. 보통 ‘우파는 민족주의, 좌파는 국제주의’라는 게 상식이다. 게다가 EU는 미국식 자본주의에 대한 ‘진보적’ 대안으로 이야기되곤 한다(제러미 리프킨의 같은 책이 이런 인상을 널리 퍼뜨렸다). 그런데 왜 그리스 좌파 안에서는 유로존, 더 나아가 EU 탈퇴론까지 나오는 것일까? 이 상황을 이해하려면, 유로존의 실상을 제대로 살펴봐야 한다. 특히 유럽 통화 통합 과정을 되짚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멀리 보면, 현 EU의 뿌리인 유럽경제공동체(EEC)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유럽 통합은 이미 이때부터 각 나라의 민주주의 절차와는 상관없는 경제 엘리트들의 독무대라고 비판받았다. 그래서 EEC 탈퇴 여부를 물은 1975년 영국 국민투표에서는 누구보다도 노동당 좌파가 가장 강경한 EEC 탈퇴 입장에 서기도 했다. 당시 노동당 좌파의 리더였던 토니 벤은 이것이 단지 국가 주권을 지키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존폐에 대한 선택이라고 일갈했다.

하지만 유로존의 직접적 기원은 이보다는 좀더 가까운 과거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1979년에 수립된 유럽통화시스템(EMS)이다. EMS의 핵심은 유럽환율메커니즘(ERM)이라는 통화 바스켓 제도에 있었다. 가입국인 독일(당시 서독),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등의 통화가 다른 회원국 통화에 대해 2.25% 이상으로는 변동할 수 없다는 게 그 골자였다. 이렇게 되면, 이들 나라의 통화는 달러나 파운드, 엔에 대해서는 변동환율제의 지배를 받지만 다른 EMS 회원국 통화에 대해서는 제한적인 고정환율제 아래 있게 된다. 서유럽 국가들은 이를 통해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이후의 통화 가치 불안에 대응하려 했다.

자본주의 중심부 내의 마지막 시도 좌절

모든 회원국 통화 가치를 서로 연동시켰다고는 하지만, 그 주된 기준은 어디까지나 독일 마르크화였다. 가장 강세를 보이던 마르크에 프랑과 리라, 길더를 연동했던 것이다. 이는 마치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달러에 다른 모든 나라의 통화 가치를 연동하던 것을 연상시켰다. 이 질서가 붕괴된 1970년대 상황에서 EMS는 서유럽 몇몇 나라에서나마 브레턴우즈 체제의 ‘좋았던 옛날’을 복원할 길처럼 보였다. 변동환율제의 격랑 속에서 이것은 유일한 구명선 같았다.

하지만 외양과 실상은 달랐다.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미국은 다른 나라의 통화 가치 평가절하나 재정 확대 정책을 용인하며 초국적 케인스주의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그러나 EMS에서 독일이 자처한 역할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정반대였다.

독일 연방은행은 한 번도 케인스주의를 진지하게 받아들인 적이 없었다. 독일 경제정책 담당자들의 공식 신조는 질서자유주의였다. 질서자유주의는 통화 가치에 관한 한 케인스주의보다는 그 적대 진영, 즉 통화주의에 가까웠다. 완전고용이나 수요 확대 같은 다른 경제정책 목표들을 포기하더라도 통화 가치를 안정시키는 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관점이었다. EMS 안에서 독일은 다른 회원국들도 이런 신조를 따를 것을 요구했다. 즉, 독일은 EMS를 통해 유럽 내 통화주의의 기둥 역할을 했다.

한때 한 나라가 여기에 반발한 적이 있다. 바로 프랑스다. 1981년 프랑수아 미테랑의 대통령 당선으로 들어선 프랑스 좌파연합 정부는 당시 다른 모든 선진국이 긴축정책을 펼치는 상황에서 홀로 확장 정책을 밀어붙였다. 역사적으로 이것은 2008년 이전에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케인스주의적 재정 확대 정책을 실시한 마지막 사례로 기억된다. 시류를 거스른 이런 정책 선택은 당장 영미계 금융자본의 반발을 불러왔다. 외환시장에서 반복적으로 프랑화 투매 사태가 벌어졌고, 그때마다 프랑스은행의 외환보유고에 빨간불이 켜졌다.

미테랑 정부는 프랑화 평가절하로 사태를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그러자면 EMS의 협약에 따라 독일 쪽과 프랑-마르크 환율 조정을 협상해야 했다. 독일은 협상에 나설 때마다 조건을 요구했다. 그것은 프랑스 정부의 재정 확대 정책 포기였다. 케인스주의를 포기하고 독일 연방은행의 통화주의적 정책 기조에 동조하라는 것이었다. 지금 독일과 프랑스가 단짝이 되어 그리스의 목을 조르고 있지만, 이때는 프랑스가 독일에 멱살을 잡혔던 것이다.

당시 프랑스 좌파연합 정부 안에는 지금의 그리스 급진 좌파들을 연상시키는 견해도 없지 않았다. 차라리 EMS, 아니 더 나아가 유럽공동체(EC)에서 탈퇴할지언정 독일의 협박에 굴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좌파가 최종 선택한 방안은 이런 결사항전이 아니었다. 이미 다른 전쟁에서 독일에 어이없이 무릎 꿇은 적이 있던 프랑스는 이번에는 총성 없는 경제 전쟁에서 또다시 무참한 패배를 받아들였다. 1983년 3월, 프랑스 정부는 독일과의 환율 조정 협상 뒤에 긴축정책을 선언했다. 시장지상주의에 역류하려던 자본주의 중심부 내의 마지막 시도가 좌절되는 순간이었다.

‘사회적 유럽’ 좌절 뒤, 남은 건 유로존뿐

프랑스 좌파는 단지 굴복만 한 게 아니었다. 승자의 신조를 철저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 상징적 인물이 자크 들로르다. 미테랑 정부의 재무장관이던 들로르는 독일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고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사람이었다. 그는 프랑스 정부의 정책 전환을 성사시킨 뒤 곧바로(1985년) EU 집행위원회 의장이 되었다. 그가 ‘브뤼셀의 차르’라 불리며 야심차게 추진한 것은 유럽 통화 통합이었다. 이 노력은 결국 1992년 마스트리흐트 조약으로 결실을 맺어 유로화가 탄생하기에 이른다. EMS가 단일 통화 지역, 즉 유로존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런데 들로르는 단일 통화 외에 한 가지를 더 약속했었다. 그것은 ‘사회적 유럽’(Social Europe)이었다. 이제까지 개별 국민국가 수준에서 실현되었던 사회국가(=복지국가)를 EU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원대한 비전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단서가 붙었다. 1단계로 통화 통합을 완성한 뒤에야 2단계로 사회적 유럽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미테랑 정부의 일국 케인스주의의 실패를 경험한 들로르는 오직 유럽 차원의 안정된 통화 질서를 수립한 다음에야 완전고용과 복지 확대를 다시 추진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마스트리흐트 조약이 성사되고 나서 들로르는 실제로 ‘사회적 유럽’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EU 채권 발행으로 자금을 마련해 1500만 개의 새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제안은 EU 재무장관 회의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브뤼셀의 차르’의 권위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그리고 1년 뒤 들로르의 임기가 끝났다. 그때 이후 EU는 한 번도 이 정도의 거대한 사회적 프로그램을 진지하게 논의해본 적이 없다.

남은 것은 결국 유로존뿐이다. 새롭게 유로화가 등장했고 유럽중앙은행(ECB)도 설립됐지만, 이것들은 각각 EMS 시대의 마르크와 독일 연방은행의 확대판에 불과하다. 그나마 EMS 시절에는 독일과 협상이라도 했지만 이제 유로존 회원국들에는 그럴 권한조차 없다. 이미 통화 주권은 EU와 ECB에 넘어가 있고, 이들 기구의 최종 결재권자는 결국 독일 정부이기 때문이다.

만약 독일이 유로존 내 진정한 헤게모니 국가라면,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독일 내외에서 동시에 과감한 확장 정책을 단행했을 것이다. 독일 내에서 수요를 확대해 다른 유럽 국가의 수출 산업에 활로를 열어줬을 것이며, 동시에 유럽 전체의 투자 확대로 낙후 지역이나 위기 국가를 지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독일은 그럴 의향이 없다. 다른 유럽 국가들에 대해 수지(收支) 흑자를 즐기며 오로지 유로화 통화 가치 안정의 관리자 역할을 고수하려 할 뿐이다. 이것이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구축된 독일 중심 유럽 통화 질서의 실상이다.

유럽 좌파 전체가 직시해야 할 현실

이번 그리스 재정위기는 이런 유로존의 모순을 더없이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그래서 총선을 앞둔 그리스 좌파 사이에서 유로와 EU 문제가 그토록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할까? 그리스 공산당이 주장하는 대로 유로존을 탈퇴해야 할까? 하지만 이것은 혼란을 동반할 게 빤한 미지의 길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아니면, 급진좌파연합의 주장처럼 유로존·EU에 머물며 그것을 내부에서 뜯어고쳐야 하는가? 하지만 이것은 독일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길이 없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물음에 직면하는 게 앞으로 그리스만은 아닐 것이다. 유럽 좌파 일부가 동참해 만들어놓은 이 혼돈은 결국 유럽 좌파 전체가 직시해야 할 현실이다. 말하자면, 지금 그리스 민중은 단순히 국가 부채를 짊어지고 있는 게 아니다. 유럽 민중 전체가 떠안아야 할, 그리고 결국은 떠안지 않을 수 없을 역사의 짐을 홀로 먼저 지고 있을 뿐이다.




   진보신당 상상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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