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감 넘치는 음반에 비해 연주와 보컬 모두 형편없었던 내한 공연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지난 1월22일 밤 8시30분, 올림픽홀에서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내한 공연이 열렸다. 공연을 보면서 지나간 청춘의 에피소드 한 자락이 떠올랐다. 소개팅을 시켜준다던 친구는 그녀의 미니홈피를 알려줬다. 사진 속의 그녀를 보면서 나는 감동했다. 화사한 조명과 정성스레 치장한 화장을 감안하더라도, 그녀는 예뻤다. 이런 꽃미녀를 만날 수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인생의 지복이 아니겠는가, 생각하며 그녀를 만날 날을 애타게 기다렸다. 그녀를 만났다. 응? 사진 속의 꽃미녀는 대체 어디로? 당혹스러웠다. 조명발, 화장발을 능가하는 21세기의 쾌거인 ‘포토숍발’에 속은 것이다. 마이 케미컬 로맨스 공연을 보는데 왜 이런 생뚱맞은 일이 생각난 것인가.
이모 평크의 가능성 개척
미국에서 록은 더 이상 주류 장르가 아니다. 평론가와 애호가를 들뜨게 하는 걸작은 대부분 인디 레이블을 통해 발매된다. 인터넷의 발달로 굳이 메이저 레이블을 통하지 않더라도 자신들의 존재를 널리 알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존재만 알리는 게 아니라 음반도 더 많이 팔 수 있고 공연 수익도 더 높일 수 있게 됐다(국내 사정과는 많이 다르다). 그러다 보니 음악계에 대세가 사라졌다. 얼터너티브로 대변되는 90년대, 헤비메탈로 대변되는 80년대, 이런 수식이 21세기에는 성립하지 않는다. 스트록스, 화이트 스트라이프스 같은 개라지 록이나 린킨 파크, 림프 비즈킷 같은 뉴 메탈 등이 한 시대를 풍미하려 했으나 떠오르다가 졌다. 21세기의 패권을 노리는 새로운 도전자는 이모 펑크였다. 감성적인 멜로디와 가사, 놀기 좋은 비트와 중고음을 강조하는 사운드를 특징으로 하는 이모 펑크는 그러나 10대 백인 소년들의 음악이라는 한계를 넘지 못했다. 이모 펑크로 분류할 수 있는 마이 케미컬 로맨스는 이런 한계를 뛰어넘을 가능성을 보인 밴드다. 2006년 작품인 〈The Black Parade〉는 평단에서 뽑은 그해의 음반으로 손색이 없었다. 첫 싱글인 〈Welcome To The Black Parade〉를 비롯해 〈Mama〉 같은 곡들은 기존의 이모 펑크에선 없었던 거대한 양식미를 갖추고 있었다. 예측할 수 없는 박진감이 음반 전체에 스며들어 있었다. 이들은 퀸이 시작한 오페라 록을 동시대 트렌드를 빌려 구현했다. 그래서 이 음반은 10대뿐만 아니라, 퀸의 음악을 들으며 사춘기를 보냈던 세대에게도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하이스쿨 댄스홀에서 출발했던 로큰롤이 70년대에 이르러 아레나로 향할 수 있던 그 비장함과 웅장함의 미학을 마이 케미컬 로맨스는 새삼 일깨웠다. 기존의 이모 펑크가 구질을 예측할 수 있는 변화구 이상의 감정 폭과 표현 수단을 갖고 있었다면, 이들은 직구와 변화구, 그리고 가끔 마구를 섞어 아홉 이닝을 완투하는 투수의 등판을 떠올리게 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 음반을 통해 후일 대형 스타디움을 가득 메울 수 있는 빅 밴드가 될 가장 유력한 후보에 올랐다.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공연을 보러간 것은 그런 기대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연은 그런 기대를 채워주지 못했다. 멀리서도 멤버들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스크린이 없었던 건 좋다. 전체적인 음량이 다소 낮았던 것도 그렇다 치자. 그러나 1시간30분가량 연주하며 〈Welcome To The Black Parade〉 〈Dead!〉 〈Mama〉 같은 이번 음반의 히트곡은 물론이고, 〈Helena〉 〈Famous last words〉 등 그야말로 레퍼토리를 몽땅 쏟아붓는 내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연주는 엉성했고, 멤버들의 호흡도 썩 좋지 못했다. 무엇보다 제라드 웨이의 보컬이 아쉬웠다. 아니, 실망스러웠다고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음반에서 종이로 목을 베는 듯 날카로웠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었다. 고음 부분은 낮춰 불렀고 호흡은 불안했다. 음정은 종종 나갔다. 함께 공연을 보던 친구가 말했다. “내가 노래방에서 불러도 다 부를 수 있는 노래를 왜 본인이 못 부르는 건가.” 사실, 그들의 라이브 실력이 음반만 못하다는 평가는 해외 팬들의 이야기로 알고 있었다. 그걸 감안한다 하더라도 좋은 점수를 줄 수는 없었다. 나는 잘 느낀다. 그래서 웬만한 공연은 그 현장감만으로도 쩌릿쩌릿한 감동을 받곤 한다. 그러나 여느 내한 공연에서나 마찬가지로, 미친 듯이 열광적이었던 관객의 반응도 실망스러운 무대를 덮어주지는 못했다.
작곡만 잘하는 밴드?
평범한 밴드가 있을 뿐이었다. 작곡에서는 흠잡을 수 없으되, 정작 라이브에서는 그 노래들의 맛을 살리지 못하는, 그래서 한계가 뻔히 보이는 평범한 밴드가. 최근의 내한 공연 붐으로 에릭 클랩턴부터 뮤즈에 이르는 선수들의 공연에 눈이 높아질 대로 높아지지 않았다면, 감흥이 좀 달랐을까. 틀린 음정을 잡아주는 오토튠이나 음역대를 높여주는 피치 웨이퍼, 웅장함을 배가시켜주는 오버더빙 등의 레코딩 기술을 지워낸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공연의 의미는 하나였다. 전성기를 지났거나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는 팀이 아닌, 이제 전성기를 맞이하려는 밴드를 눈앞에서 봤다는 것뿐. 라이브를 봐야 진가를 알 수 있는 팀이 있고, 음반만 좋은 팀이 있다. 마이 케미컬 로맨스는 전형적인 후자의 사례였다. 포토숍에 속았던 문제의 소개팅 사건이 떠오른 건 그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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