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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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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생물학] 입덧하면 유산 확률은 낮다?

임신부터 난도가 4배로 높아지는 쌍둥이, 첫 번째 복병은 입덧
등록 2020-12-27 00:18 수정 2020-12-28 10:44
쌍둥이 임신은 출산의 어려움을 제곱으로 올린다. REUTERS

쌍둥이 임신은 출산의 어려움을 제곱으로 올린다. REUTERS

제가 매주 금요일 아침이면 꼬박꼬박 미리보기로 결제해서 보는 웹툰이 있습니다. 바로 다음 웹툰에서 연재되는 유영 작가의 <열무와 알타리>입니다. ‘열무’와 ‘알타리’는 이른둥이로 태어난 쌍둥이입니다. 남들보다 일찍 태어났기에, 조금 작고 조금 약해 그만큼 느리게 자라는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가 그려낸 힘겨운 육아일기입니다. 처음에는 쌍둥이를 키운다는 첫 화만 보고 쌍둥이 엄마로서 동질감에 이끌려 보기 시작했지만, 보면 볼수록 쌍둥이 임신과 출산과 육아, 게다가 장애를 가진 쌍둥이의 육아가 얼마나 어려운지 절실히 깨닫게 해주는 보기 드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회 될 때마다 많은 이에게 알리려고 합니다.

너무 귀엽겠네요 vs 고생 많이 하셨네요

제게 쌍둥이 아이들이 있다는 걸 처음 아는 이들은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보입니다. 먼저 “어머나, 쌍둥이라니! 너무 귀엽겠어요. 쌍둥이는 제 로망이에요. 한 번에 둘을 얻으니 이득이잖아요!”라며 해맑게 웃거나, 약 3초간 정적이 흐른 뒤 “쌍둥이라니… 고생 많이 하셨겠네요”라며 안쓰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거죠. 흥미롭게도 젊거나, 미혼이거나, 아이를 낳아 직접 길러본 적이 없는 분은 전자의 반응을 많이 보이고, 후자의 눈길을 보내는 분은 십중팔구 아이가 있고 직접 육아를 맡은 경험이 있습니다.

애초에 존재 자체가 예쁘고 귀여운 아기가 둘이나 있다면, 그리고 그 둘이 똑 닮았거나 비슷하다면 귀여움은 배가되곤 합니다. 저도 쌍둥이가 아기였던 시절, 앙증맞은 옷을 맞춰 입히고 사진 찍는 것을 즐겼지요. 하지만 쌍둥이를 임신한다는 건 마트의 ‘1+1 상품’처럼 그저 아이 하나에 다른 아이 하나를 더하는 일이 아닙니다. 1인용 의자에 두 명이 앉아도 편치 못한 마당에, 아이 한 명이 있어도 좁은 공간에 둘이나 깃들인다는 건, 임신 전 과정의 어려움을 2배가 아니라 22으로 올려버리거든요. 저는 운 좋게도 그 수많은 허들을 무사히 넘어 만삭을 채우고 아이 둘을 모두 건강하게 얻었지만, 그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답니다.

쌍둥이를 가지고 처음 찾아온 복병은 입덧이었습니다. 첫아이 때는 입덧이 거의 없어서 잘 몰랐는데, 쌍둥이 임신은 심한 입덧으로 임신 초기 매우 괴로웠습니다. 입덧은 임신부의 50~80%가 겪는 대표 임신 증상으로 주로 메슥거림, 식성 변화, 구토 등을 동반합니다.

대개는 임신 초기에 시작됐다가 임신 3~4개월에 정점을 찍고 6개월에 들어서면 점차 사라지지만, 임신부 1~2%는 출산 전 기간에 입덧에 시달립니다. 대부분의 입덧은 모체와 태아의 건강에 별다른 악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약 1%는 ‘임신오조’라는 치료가 필요한 병적 증상이나 합병증을 동반하기도 합니다.

첫 번째 복병, 입덧

입덧의 원인과 발생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기존 연구 결과, 인간융모성생식샘자극호르몬(HCG·Human Chorionic Gonadotropin)과 갑상샘호르몬 등 호르몬 농도 변화로 인한 체내 조절 시스템의 불안정, 유전(심한 입덧을 겪은 임신부의 딸은 심한 입덧을 겪을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임신부보다 3배 이상 높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질병 유무(헬리코박터파일로리균에 감염된 경우에도 입덧이 심해집니다), 심리 상태 등이 입덧에 영향을 주는 요인입니다. 임신부가 젊고, 저체중이며, 딸을 임신하고, 초산인 경우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앞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제가 두 번째 임신에서 심한 입덧을 겪었던 것은 호르몬 불균형 때문일 가능성이 큽니다. HCG는 임신 여부를 알려주는 임신 진단 테스트기의 재료입니다. HCG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세포가 태반을 구성하는 영양막 세포이기 때문입니다. 임신 3~4주가 되면, 요 쌀알만큼도 안 되는 세포 덩어리가 분비하는 HCG가 모체의 혈액이나 소변으로 검출되며, 이후 태아는 2~3일을 주기로 HCG 농도를 2배씩 올려서 배출하다가, 임신 10주께 최고조를 찍고는 서서히 줄어 임신 20주가 되면 안정적인 농도를 유지합니다. 입덧의 시작 시기와 최고조기, 안정기가 HCG 농도 변화와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HCG는 입덧을 일으키는 주요 대상으로 지목되곤 합니다.

그런데 쌍둥이를 볼까요? 태반은 엄마가 만드는 게 아니라 아기가 만드는 것이니, 아기가 둘이면 태반도 둘이 되고, 결국 태반에서 분비되는 HCG 농도 역시 2배 혹은 그 이상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막연히 쌍둥이를 임신할 때 입덧이 단태아 때보다 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자료를 더 찾아보니 HCG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통해 입덧을 유발하는지 정확한 설명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애초에 HCG의 역할을 보면 오히려 입덧을 막아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HCG는 임신 내내 태아의 생존에 유리하도록 자궁 환경을 유지하는 구실을 합니다. 다시 말해, HCG는 황체 퇴화를 막아 임신을 유지해주는 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이 계속 분비되도록 하며, 모체의 면역학 체계에선 이물질로 간주되는 태반 주위로 몰려드는 엄마의 면역세포인 T세포의 사멸을 유도해 스스로를 지켜내며, 태아의 성장을 돕는 물질인 트로포블라스트를 내부로 유입시켜 태아의 성장을 돕기도 합니다. 또한 모체의 갑상샘을 자극해 갑상샘호르몬을 더 많이 분비시키기도 합니다. 갑상샘호르몬은 인체의 모든 세포에 작용하는 일종의 부스터(booster) 호르몬으로, 기초대사율을 높여 탄수화물·지방·단백질의 대사를 촉진합니다. 엄마 몸에 저장된 이런 영양소의 대사 속도가 빨라질수록 혈액 속에 흐르는 양분이 많아지므로, 이 역시 태아의 성장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을 테니까요.

태반, 태아를 지켜라

기본적으로 태반은 태아를 위하는 기관입니다. 그래서 역시 임신 5~36주에 태반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사람태반락토겐(HPL)은 지방을 분해해 혈중 유리지방산을 증가시키고, 혈당을 낮추는 호르몬인 인슐린에 저항성을 가집니다. 또한 대표적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역시 임신 전에는 주로 난소에서 생성되지만, 임신 중에는 태반에서 생성돼 혈관을 더 탄력 있게 확장시켜 자궁으로 들어오는 혈류를 증진하는 작용을 합니다. 즉, 임신 기간 내내 분비되는 태반호르몬은 엄마 몸에 있는 자원을 가능한 한 끌어다가 태아에게 몰아주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HCG가 태아의 성장을 위해 특화된 호르몬이라면, 엄마가 입덧하지 않고 음식을 마음껏 먹게 하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체내 HCG 농도가 높아질수록 입덧의 강도도 세지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태아의 신체 분화가 활발하게 이뤄져 아주 사소한 문제도 태아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시기(20세기 중반 46개국에서 1만 명 이상의 아이에게 선천적 장애의 원인이 되어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던 약물 ‘탈리도마이드’의 경우도, 복용량보다는 복용 시점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예를 들어 임신 6~8주에 탈리도마이드를 복용한 임신부의 아이에게 심각한 팔다리 결손을 가져왔지만, 임신 주수가 지날수록 결손 범위는 줄었고, 임신 중기 이후 섭취한 경우는 별다른 이상이 없었다고 합니다)에 태아를 보호하기 위한 예방적 신체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기 태아는 아직 매우 작아서 임신부가 충분한 식이를 하지 못해도 기존 모체에 저장된 물질만으로도 충분히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실제 입덧이 심한 산모일수록 초기 자연유산율이 낮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HCG는 정말 입덧의 원인일까

HCG가 입덧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HCG가 입덧의 원인이라는 설명이 가능한 건 아닙니다. 임신 초기 입덧이 시작될 때 HCG 농도는 임신 20주 이후 HCG 농도가 안정기로 들어선 이후와 별다른 차이가 없거나, 임신 후기에 더 높기도 합니다. 이는 일부 임신부가 출산 때까지 입덧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지만, 더 많은 임신부가 겪는 임신 중후반기 입덧 소실과는 맞지 않는 형태입니다. 도대체 왜?

우리 몸이 이렇게 진화한 것에 정답은 늘 하나입니다. 우연하게도 그런 유전변이를 가지고 있던 개체가 조금 더 주변 환경에 잘 적응해 살아남았고, 그 변이들이 오랜 세월을 거쳐 자연의 손에 선택돼 남았다고 말입니다. 태반에서 HCG를 비롯해 태아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여러 호르몬을 분비하는 것도, 이 시기 임신부가 입덧에 시달리는 것도, 그 변이를 지닌 개체가 생존에 조금 더 유리했기에 살아남아 후손을 남겼고, 우리는 그들의 후손이라는 것이죠. 하지만 자연에는 손만 있고 눈이 없지만, 우리에겐 손과 눈이 다 있습니다. 자연이 눈 가리고 선택한 것도, 우리는 두 눈 크게 뜨고 무슨 일인지 정확히 밝혀내고, 그것이 삶의 질을 떨어뜨린다면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진짜 ‘인간다운’ 대처법이 될 것입니다.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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