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가 2026년 8월12일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얼마 전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는 육군 논산훈련소에 입소해 2박3일간 신병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훈련받을 때는 정말 죽는 줄 알았다”며 “저야 잠깐이지만 우리 국군 장병의 노고가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습니다. 정치인들의 체험 이벤트를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립니다. ‘쇼하지 마라’는 비판도 있고 ‘보여주기라도 하는 게 어디냐’는 옹호도 있습니다. 그 자리에 가보면, 정말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될까요? 얼마나 오래, 얼마나 절박하게 겪어야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는 이 주제를 탐색하기에 아주 적절한 소설입니다.
“런던의 어느 가을날에 캔티라는 가난한 집안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집에서는 아무도 원치 않는 아기였다. 같은 날 잉글랜드에서 또 한 명의 사내아이가 부유한 튜더 가문에서 태어났으니, 이는 집안 전체가 원하는 아이였다.”
소설의 줄거리는 단순합니다. 똑같이 생긴 왕자와 거지의 신분이 뒤바뀌었다가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과정에서 거지 톰과 왕자 에드워드는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왕자와 거지’ 이야기를 알지만 정작 책을 펼쳐본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좋은 책을 읽지도 않고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는데 메뉴판만 읽고 돌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흔히 이 소설은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평범한 교훈의 예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원작의 내용은 훨씬 미묘하고 정치적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둘이 아니라 사실 한 명입니다. 왕자 에드워드가 거지 체험을 통해 훌륭한 군주가 되어가는 성장기가 핵심 줄거리이고 거지 톰은 왕자의 각성을 이끌어내는 보조자 역할에 그칩니다. 거지 옷을 입은 왕자는 의도치 않게 백성의 삶 안으로 깊숙이 들어갑니다. 이유 없이 악한들에게 매를 맞고, 옥에 갇힌 채 황당한 이유로 화형을 당하는 백성들의 사연을 지켜봅니다. 이 처절한 체험이 왕자를 성장시킵니다.
거지의 자리에서 배움을 안고 원래 자리로 돌아간 왕자는 더 좋은 왕이 되었습니다. 훈련소에서 병사들의 고충을 실감했다는 정치인의 소감도 같은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자리에서 잠깐 벗어났다가 그 벗어남을 발판 삼아 원래 자리로 더 당당하게 돌아가는 구조입니다.
미하일 바흐친은 이런 구조를 ‘카니발’이라 불렀습니다. 카니발이란 일종의 허가된 전복입니다. 카니발 동안 질서는 일시적으로 뒤집히지만 이미 돌아옴을 예정하고 있습니다. 이 축제는 억압된 불만을 안전한 방식으로 배출시키는 안전밸브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축제가 끝나면 기존 질서는 더 단단하게 복원됩니다. 만백성이 착한 왕에게 감사하게 되는 ‘왕자와 거지’의 결말은 이 구조를 충실히 따라갑니다.

천하람 개혁신당 원내대표가 2026년 8월12일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웨인은 신분제가 부당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겉모습으로 신분을 오인해서는 안 된다는 인식론에 머물 뿐입니다. 겉모습에 속지 않아야 한다면, 남는 것은 결국 ‘진짜’를 잘 알아보라는 교훈입니다. 답을 내지 않는 것으로 질서를 지키는 카니발의 작동 원리입니다.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는 누더기를 입은 왕자가 대신들에게 진짜임이 ‘감별’되는 장면입니다. 진짜 왕자가 결국 알아봐진다는 인지의 순간은 기존 질서가 복원될 경우에만 성립합니다. 만약 거지 톰이 그대로 왕좌에 남았다면 이야기는 성립되지 못합니다. 20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오디세우스가 결국 알아봐지는 것처럼, 장르 자체가 복원을 요구하는 셈입니다. 왕자가 거지 체험을 하는 건 진짜 신분 이동이 아니라 복귀가 예정된 체험이고, 그 체험이 왕자를 더 나은 ‘적임자’로 만들어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는 에너지로 사용됩니다. 전복처럼 보이는 장치가 사실은 복원을 위한 예비 단계였던 셈이죠.
독자는 에드워드가 고난을 겪는 내내 돌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돌아올 통로가 있는 체험은 그 통로가 없는 사람의 삶과 근본적으로 다른 경험입니다. 사실은 “가봤다”는 것 자체가 이미 특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돌아오지 못한 사람은 그렇게 말할 수조차 없으니까요. 왕자는 무사히 궁으로 돌아온 뒤에야 자기 경험을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소설이 그에게 “가봤다”고 말할 자격을 부여한 겁니다. 돌아오지 못했다면 그는 애초에 ‘거지로 살아봤다’는 말의 주어가 될 수 없었습니다.
정치인들의 서민 체험은 왕자의 ‘계급 관광’과 닮은 측면이 있습니다. 천하람의 2박3일은 처음부터 안전하게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정해진 일정과 그 옆을 따라붙은 카메라는 사전에 적절한 강도를 잡아낼 수 있도록 조절돼 있었습니다. 정치인이 난생처음 고시원을 방문해보고, 옥탑방에서 한 달을 살아본다는 것도 비슷합니다. 체험했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이해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타인의 삶을 체험하려는 사람은 체험과 이해 사이에 필연적 간극이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타인을 이해하기 위한 체험은 무의미한 걸까요? 1959년 미국의 저널리스트 존 하워드 그리핀은 약물과 자외선 치료로 피부를 검게 물들이고 흑인 남성으로 ‘분장’한 채 미국 남부를 돌아다녔습니다. 같은 사람이었지만 피부색이 바뀌자 삶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갑자기 식당에서 거부당하고, 버스에서 자리를 빼앗기고, 백인들의 태도가 적대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핀은 스스로 인종차별의 표적이 되어 살아본 이 체험을 담아 ‘블랙 라이크 미’라는 책을 출간합니다. 이 책은 인종차별의 실상을 생생하게 전달하면서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리핀의 체험에는 보통의 ‘계급 관광’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흑인으로 단 몇 주를 살았지만 카메라도 별도의 안전장치도 없이 거리에서 매일 진짜 표적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이 책은 큰 논쟁을 낳았습니다. 비판자들은 그가 흑인으로 ‘살아본’ 게 아니라 단지 흑인으로 ‘방문’했을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복귀가 예정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그리핀의 체험 역시 에드워드 왕자와 같은 한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핀은 언젠가는 화장이 지워진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다시 존경받는 백인 저널리스트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매일 밤 숙소에서 안도할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진짜 흑인’이 아니라는 걸 아는 상태로 체험하고 있었으니, 심리적으로도 이미 다른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책이 출간된 뒤 그는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살해 협박에 시달리며 가족과 함께 고향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 체험에 목숨을 걸었고, 실제로 대가를 치른 겁니다. 그런데도 완전한 이해에 이르렀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이토록 위험을 감수한 그리핀조차 온전한 이해에 이르지 못했다면, 체험이라는 방법 자체에 한계가 있는 건 아닐까요.
왕자는 거지가 되어봤지만 거지의 삶을 살아본 것은 아닙니다. 그리핀은 흑인이 되어봤지만 흑인의 삶을 완전히 경험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겪어보지 않고도 이해에 이른 사람이 있습니다. 트웨인은 왕자도 거지도 되어본 적이 없습니다. 18세기 영국을 살아보지도 않았던 트웨인이라는 소설가는 가보지 않고도 이 고전을 써냈습니다. ‘왕자와 거지’ 이야기 자체가 가보지 않고도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는 증거인 셈입니다. 여기서 문학의 존재 이유를 설명할 수 있습니다. 직접 가봐야만 이해할 수 있다면 소설이라는 장르 전체가 사기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트웨인은 가보지 않고도 분명 뭔가를 짚어냈습니다. 인간은 그 자리에 가보지 않아도 가본 것처럼 상상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다만 트웨인이 무엇을 짚어낸 것인지는 모호합니다. 만약 ‘왕다움’이 수행을 통해 얻어지는 거라면 누구든 그 역할을 체험하는 순간 진짜에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 됩니다. 반대로 ‘왕다움’이 타고남을 통해 얻어진다면 아무리 용을 쓰고 체험해도 닿을 수 없다는 뜻이 됩니다. 이것이 ‘가봐야 아는가’라는 질문의 갈림길입니다. 그런데 ‘왕자와 거지’에서는 ‘왕다움’이 몸에 새겨진 본질인지 수행을 통한 성숙인지가 소설 내내 흔들립니다.

‘왕자와 거지’, 마크 트웨인 지음, 황윤영 옮김, 보물창고 펴냄. 2023년
트웨인은 이 물음에 답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가 재밌어한 것은 신분이 바뀌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얼마나 쉽게 겉모습을 진실로 받아들이는가였습니다. 트웨인은 평생 이 질문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는 진짜 신분과 사기꾼들의 가짜 신분의 대비를, ‘톰 소여의 모험’에서는 진짜 삶과 연극처럼 꾸며낸 삶의 대비를 그려냈습니다. 이 문법은 ‘왕자와 거지’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었습니다. 궁으로 돌아간 에드워드는 이전의 에드워드가 아니었다는 것을요.
저는 쉽게 ‘가봤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공감을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 자리에 가봐야 알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본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르다고요. 2박3일 다녀왔다는 사실과 그 삶을 매일 살아야 하는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라는 겁니다.
‘가봤다’는 확신보다 가볼 수 없다는 겸손이 이해에 더 가까울 때가 있습니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내가 그 자리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사람의 삶을 오래 바라보고 상상하는 일인지 모릅니다. 가보지 않은 곳까지 상상하게 하는 것, 그것이 문학이 하는 일입니다.
정주식 팟캐스트 ‘발굴독서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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