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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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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쿠자가 된 여고생… 빛과 어둠 적절히 버무린 영화 ‘세일러복과 기관총’

코미디 활극과 거리 멀지만, 남자들의 더러운 유산에 균열
등록 2026-09-24 22:45수정 2026-09-30 12:57
‘세일러복과 기관총’이라는 이질적인 조합이 제목인 이 영화는 일본 대중문화에서 ‘이제 곧 사라질 순수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인 여고생이 갑자기 야쿠자 두목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한국영상자료원 데이터베이스 갈무리

‘세일러복과 기관총’이라는 이질적인 조합이 제목인 이 영화는 일본 대중문화에서 ‘이제 곧 사라질 순수성’을 상징하는 아이콘인 여고생이 갑자기 야쿠자 두목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한국영상자료원 데이터베이스 갈무리


 

‘세일러복과 기관총’, 이질적인 두 단어의 조합이 강렬함을 자아낸다. 영화 제목이 아니라 초현실주의 시구 같기도 하다. 그 유명한 ‘수술대 위의 우산과 재봉틀’처럼 말이다. 요즘은 더 황당한 제목의 소설이나 영화가 부지기수지만 이 영화가 개봉한 시기는 1981년이다.

영화의 줄거리는 제목 그대로다. 평범한 여고생 이즈미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버지를 잃는다. 우연히 먼 친척인 야쿠자 두목도 자신의 핏줄을 후계자로 삼으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는다. 두목의 부하들은 수소문 끝에 이즈미를 찾아내고 그를 우두머리로 추대한다. 야쿠자들의 세력 다툼 문제를 해결하던 이즈미는 아버지의 죽음이 마약과 얽힌 것을 알게 된다.

 

평범한 여고생의 조폭 입문기

 

영화를 보기 전엔 ‘조폭 마누라’ 같은 코미디 활극일 것이라고 넘겨짚었다. 그러나 도입부터 영화의 문법이 우리에게 익숙한 대중 영화와 거리가 멀다는 걸 알 수 있다. 플롯을 복잡하게 꼬아놓고도 설명하지 않는 감독의 실험적인 연출이 때론 과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여기에 후반으로 갈수록 서사의 개연성이 떨어지고 장면들은 매끈하게 이어지지 못한 채 제멋대로다. 그런데도 ‘세일러복과 기관총’은 1980년대 일본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잊을 만하면 리메이크된다. 이는 영화를 제작한 거대 출판사이자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가도카와의 미디어믹스(소설·영화·주제가·아이돌스타 등을 한꺼번에 마케팅) 전략이 시장에서 제대로 작동한 결과였다.

영화 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흥행 요인은 주연배우인 야쿠시마루 히로코의 스타성이다. 그는 사랑스러운데 남자아이 같기도 하고 천진하면서도 비밀을 간직한 것 같은 매력을 발산한다. 평범하면서 비범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데 이상한 힘을 발휘하는 주인공 캐릭터와 완벽하게 어울린다.

여기서 일본 사회와 대중문화라는 영화 외적인 배경을 파고들면 또 다른 흥행 요인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세일러복을 입은 여성 청소년의 성장담이 일본에서는 실패하기가 더 어려운 일종의 치트키라는 사실이다. 일본의 근대사회는 집단이 개인을 강하게 규율한 역사와 문화를 바탕으로 세워졌다. 이런 사회에서 고등학생은 신체와 정신은 어른에 가깝지만 아직 어른의 역할은 떠안지 않은, 짧고 불안정한 유예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여고생은 아내도 엄마도 아닌, 어리면서도 어느 정도 성숙한 여성이다. 일본의 대중문화는 이런 소녀들을 이제 곧 사라질 순수와 가능성의 상징으로 애틋하게 바라보면서 성애화하고 상품화하기도 한다.

그래서 ‘세일러복과 기관총’은 액션영화이기보단 빛과 어둠을 적절히 첨가해 잘 버무려낸 소녀의 성장담에 더 가깝다. 이즈미는 폭력과 마약이 지배하는 이상한 나라에 떨어져 야쿠자들과 함께 삶과 죽음, 쾌락과 고통, 인생의 처절함과 비밀에 대해 배워나간다.

영화는 ‘어른이 된다는 것’을 성장보단 ‘추락’에 가깝다는 것을 드러낸다. 한국영상자료원 데이터베이스 갈무리

영화는 ‘어른이 된다는 것’을 성장보단 ‘추락’에 가깝다는 것을 드러낸다. 한국영상자료원 데이터베이스 갈무리


이즈미를 이상한 나라로 끌어들인 야쿠자 부하들의 운명은 기구해진다. 그들은 이즈미에게 충성하면서 아이처럼 돌보고 때로는 치명적인 위험에 빠트리기도 한다. 흥미로운 건 그들이 이즈미와 깊게 교류하거나 친밀감, 우정, 사랑에 가까운 감정에 빠져들자마자 차례대로 죽는다는 점이다.

이즈미는 주연인 게 무색할 정도로 액션을 거의 보여주지 않지만 나름대로 저항하기도 한다. 그는 딱 한 장면에서 기관총을 난사하는데 바로 아빠의 죽음과 연관된 마약이 든 로션 병을 깨부수는 장면이다. 이즈미의 힘으로는 야쿠자의 세계를 정복할 수 없지만 남자들이 만든 더러운 유산을 부술 수는 있다.

 

성인 여성이 된다는 것

 

그렇다면 성장의 유예기간이 끝났을 때 이즈미는 어떤 어른이 될까? 그의 미래는 원작 소설에선 지나가는 조연이지만 영화에선 비중이 훨씬 커진 마유미에게서 찾을 수 있다. 마유미는 죽은 아빠의 애인으로 그의 아버지 역시 거대 야쿠자 조직의 보스다. 후반부에서는 이즈미의 부하인 사쿠마와 사랑에 빠진다.

마유미는 남성의 세계에서 이용당하고 버려진 여성이다. 그는 이즈미가 아직 도착하지 못한 어른 세계의 어둠을 대변한다. 영화는 마유미를 통해 성인 여성이 되는 건 성장이라기보다 추락에 더 가깝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이즈미의 가장 충성스러운 부하이자 마유미의 연인인 사쿠마가 죽었을 때 이즈미가 사쿠마의 주검에 입을 맞추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이즈미는 ‘생애 첫 입맞춤을 아저씨에게 준 저는 바보 같은 여자가 될 것 같다’라는 독백으로 자신의 미래를 예감한다.

이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더욱 기묘하다. 이즈미는 여전히 맨얼굴에 쇼트커트이고 세일러복을 입고 있다. 그런데 무표정한 얼굴로 번화가를 걷는 그의 발에 빨간 하이힐이 신겨져 있다. 이즈미는 지하철 환풍구 위에 서서 치마를 펄럭이며 빙글빙글 돌고 담배 피우는 시늉도 한다. 그러자 여러 사람이 다가와 그를 에워싸고 구경한다. 이즈미는 그렇게 소녀에서 여자가 된다.

‘안녕이란 말은 이별의 말이 아니고 다시 만날 때까지의 머나먼 약속….’ 야쿠시마루 히로코가 직접 부른 주제가와 다르게 이즈미에겐 다시 만날 이도, 약속할 이도 없다. 모두 이별한 사람들뿐이다. 그래서인지 이즈미의 마지막 모습은 그가 엿본 미래처럼 슬프고 이상하다.

 

양민영 주짓떼라·‘운동하는 여자’ 저자

 

*액션 읽는 여자: 여성 주연 영화를 보며 여성의 시선으로 ‘싸우는 몸’을 발견하는 시간. 여성의 몸을 향한 협소한 시선을 확장하는 칼럼. 4주마다 연재.

 

자기방어 팁 : 베어허그 디펜스

 

이즈미는 영화에서 몇 번이나 상대편 야쿠자들에게 납치당한다. 덩치 큰 남자들이 이즈미의 허리를 안고 가벼운 물건을 들듯 올리는데 이럴 때 쓸 수 있는 기술이 ‘베어허그 디펜스’다. 베어허그는 레슬링에서 양팔로 상대의 허리를 조여 압박하는 기술을 뜻한다. 실전에서는 가해자가 상대를 뒤에서 안은 채로 들어 올려 납치할 때 많이 쓰인다.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가능하면 가해자를 마주 보고 뒤에서 껴안지 못하도록 방어해야 한다. 만약 이미 뒤에서 허리를 안았다면 두 손을 모은 채로 팔꿈치를 바깥으로 벌려 공간을 만든 다음 체중을 아래로 실어 빠져나온다. 이 방어법은 허공에 들어 올려졌을 때도 유효하지만 껴안자마자 신속하게 사용한다면 훨씬 쉽게 빠져나올 수 있다. 빠져나온 뒤에는 자세를 낮추고 있을 가해자의 얼굴이나 가슴팍을 발로 차고 거리를 벌려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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