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이버 시리즈 ‘스킵과 로퍼’ 단행본 1권 표지 이미지. YNK미디어 제공
6·3 지방선거 개표 방송을 시청하며 오랜만에 전국 지역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각 시·도를 공평하게 주목하고, 그 안의 세부 지역을 일일이 언급하는 시간은 지방선거가 아니고서야 좀처럼 경험하기 어렵다. 한국은 전국 200여 지역 중 절반 이상이 소멸 위기에 처해 있다. 의료·교통·교육 등 사회 제반 시설 모두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기이할 정도로 몰려 있으니, 지역의 인구 유출은 불균형한 발전의 결과인 동시에 원인이 되어 문제를 가속한다. 그런데도 경각심이 부족하고 대처 방안은 요원하니 암담한 상황이다.
한국이 아닌 일본 배경이지만, ‘스킵과 로퍼’(타카마츠 미사키, YNK미디어)의 주인공 ‘미츠미’는 진지하게 이 문제를 고민한다. 미츠미의 고향은 ‘이카지마’라는 가상의, 그러나 분명하게 현실의 지역을 모델로 한 마을이다. 중학교 전교생이 8명이고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려면 버스로 세 시간을 나가야 하는 곳. 모르는 이에게 소개하려면 ‘시골’이란 말을 쓸 수밖에 없을 변두리의 작은 지역으로부터, 미츠미는 장래를 위해 도쿄의 고등학교에 왔다.

네이버 시리즈 ‘스킵과 로퍼’ 단행본 표지 이미지. YNK미디어 제공
미츠미의 장래 희망은 관료가 되는 것이다. 고향처럼 심각한 인구 유출 문제를 겪는 지역을 위해 일하고, 은퇴 뒤 나고 자란 이카지마로 돌아가 마을을 위해 힘쓰고 싶다. 자신의 출신을 명확하게 기억하는 이가 가질 수 있는 꿈이다. 가상을 빌려 약간은 비켜서 있지만 충분히 구체적인 배경이 돋보이는 만화 ‘스킵과 로퍼’ 전반은 이러한 미츠미의 꿈과 시야를 공유한다.
시골 출신인 미츠미의 시선에서 때때로 낯설게 비치는 도쿄의 풍경, 익숙함과 그리움을 담아 응시하는 이카지마의 풍경을 통과하며 ‘스킵과 로퍼’는 뭉근히 지역성을 쌓아나간다. 작품은 현존 지역을 모델로 삼고 있음을 숨길 생각이 없다. 귀성길을 그리는 데 세 쪽이나 되는 분량을 할애하고, 지붕의 결과 그림자 하나까지 세세히 묘사함으로써 작가가 실제 보고 자랐고, 여전히 누군가에겐 생활 터전인 지역의 풍경을 보존하듯 기록한다. 인물을 그릴 때도 섬세한 작화가 돋보이는 작품이, 이카지마의 풍경을 그릴 때 유난히 정성스러운 것은 우연이 아닐 듯하다. 정성을 애정이란 말로 치환해도 어색하지 않다.
미츠미의 단골 가게이던 교자집에 관한 일화는 그런 맥락에서 특별히 눈에 띈다. 작가가 추억을 떠올리며 작품에 그린 교자집을, 그 지역 독자들은 단번에 알아보고 반가워했다고 한다. 그 가게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도, 가겟집 아들이 보낸 편지와 교자 사진도 만화를 계기로 작가에게 전해졌다. 이제는 한 가정의 식탁에만 올라가게 된 지역의 명물이, 작품을 통해 많은 사람의 기억에 새겨졌다. 지역을 매개로 작품과 현실, 작가와 독자가 기분 좋게 연결되는 오묘한 순간이었다.

변두리의 작은 마을 ‘이카지마’ 출신의 미츠미의 장래 희망은 관료가 되는 것이다. 고향처럼 심각한 인구 유출 문제를 겪는 지역들을 위해 일하고 싶기 때문이다. YNK미디어 제공
작품과 지역, 그 안의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유관하게 연결돼 있음을 또 한 번 일깨운 것은 열 번째 단행본에 실린 작가의 말이었다. ‘노토반도 지진으로 피해를 당하신 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는 말로 시작하는 후기는, 재해를 겪은 지역민들의 사정을 조심스레 전한다. ‘미츠미 고향의 모델인 이시카와현 스즈시가 진도 6강의 지진으로 가옥 대부분이 무너져 내렸고, 고향집으로 그려진 조부모의 가옥 역시 완전히 무너져 삶의 터전을 잃으셨다’는 내용이었다. 하필이면 미츠미와 친구들이 이카지마를 함께 여행한 에피소드의 끝에서 전해진 소식은, 독자에게도 그 무게를 한층 더 실감시켰다.
후기의 끝에서 작가는 바람이자 다짐을 덧붙인다. “인생이 후회와 상실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깨닫게 해주는 친구처럼, 편하게 다가가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그의 말대로 ‘스킵과 로퍼’는 막막하고 외로운 순간에 곁을 지켜주는 작품이다. 어디의 누군가에게는 ‘소멸’이라 불릴 바로 그 순간들에 말이다. 그것은 노토반도 지진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해당 권의 수익금을 기부하기로 한 실천 때문만은 아니다. 소멸해가는 마을의 풍경을 꼼꼼하게 그려나가는 데서 느껴졌던 애정 역시, 작품을 읽는 독자의 곁에서 많은 것을 보존하고 지탱해주는 듯했다. 작가의 말대로, 가상의 마을인 이카지마는 앞으로도 작품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그 사라졌으나 보존된 풍경이, 아직 완결되지 않은 작품을 통해 조금 더 오래 계속되는 것이다.
한국의 지역 문제를 생각하면서 일본 만화 ‘스킵과 로퍼’를 읽은 이유는, 사실 한국 웹툰에서 이만큼 지역 문제를 담아내는 작품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단 로맨스로 한정하지 않아도 한국 웹툰은 수도권 바깥을 그리는 데 유감스러울 정도로 취약하다. 어느 작품이든 당연하게 등장하는 지하철역이나 번화한 거리를 보고 있자면, 서울과 경기도가 교묘하게 조합된 가상의 도시국가를 보는 것 같다. 어쩌다 ‘시골’이 등장할 때도 마냥 아름다운 모습이거나 순박한 노인들이 가득한, 도시 출신 인물이 비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배경으로 그려질 때가 많다. 적어도 지역이라는 렌즈를 통해서는 웹툰을 한 번도 내 이야기라고 느꼈던 적이 없다.
‘스킵과 로퍼’를 유난히 친근하게 느꼈던 이유는 나 역시 미츠미처럼 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나온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 보령은 충청남도에 있는 작은 도시인데, 행정구역상 ‘시’로 분류되지만 나와서 보니 영락없는 시골이었다. 당연히 지하철은 없고, 몇 년 전까진 모바일 택시 앱을 쓸 수도 없던 곳. 버스는 그럭저럭 다니지만 운행 시간은 제공되지 않는 곳. 식당이나 마트에 가면 높은 확률로 지인을 마주칠 수 있고, 형제자매는 물론 부모와도 같은 학교 출신이 될 수 있는 곳. 그리고 소멸 위기 지역 10위권 안에 드는 곳. 이런 고즈넉하고도 위태로운 풍경을, 웹툰 어디에서도 아직은 만나본 적이 없다.

변두리의 작은 마을 ‘이카지마’ 출신의 미츠미의 장래 희망은 관료가 되는 것이다. 고향처럼 심각한 인구 유출 문제를 겪는 지역들을 위해 일하고 싶기 때문이다. YNK미디어 제공
고등학교 때부터 고향을 떠나왔으니, 이젠 고향 밖에서 지낸 기간이 더 길어졌다. 점점 더 지역에 관한 나의 기억과 감각이 흔적기관처럼 희미해지는 것을 느낀다.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그러면 내가 고향에서 보고 자랐던 그 모든 풍경은 결국 소멸할 수밖에 없을까? 우리 기억 속에도, 작품 속에도 없다면 대체 어디서 그 흔적을 볼 수 있을까? 때로 만화가 정말 막막한 현실에 친구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면 나는 그 친구가, 조금은 더 나와 같은 풍경을 바라봐줬으면 좋겠다.
최윤주 만화평론가
*현실 연애엔 무관심하면서도 로맨스 만화는 가세가 기울 만큼 읽어왔다. 그 경력을 살려 다양한 관점에서 로맨스 만화를 읽어보려 한다. 6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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