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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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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선 같다”는 조롱이 향하는 곳

청결에 집착하는 사회, 공공 도덕에 대한 도발적 질문 ‘닿으니 향이 나고’
등록 2026-05-07 20:54 수정 2026-05-14 16:36
‘닿으니 향이 나고’ 표지. 이미지 출처 대원씨아이

‘닿으니 향이 나고’ 표지. 이미지 출처 대원씨아이


“광장에 나간 건 당연한 일이었어요. 화장실에 다녀오면 손을 씻는 공공 도덕처럼요.”

2025년 초 탄핵 시위 경험을 에세이로 쓴 뒤 한 인터뷰에서 내가 한 말이다. 내뱉는 순간, 주워 담고 싶었다. 위생 관리 문제를 딱히 도덕의 일로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결이 불쾌감을 유발할 수는 있다. 하지만 도덕은 선악의 문제이지 않나. ‘의료인도 아닌데 손 씻는 게 왜 공공 도덕이야. 씻는 게 도덕적이면 안 씻는 건 악한 거야? 계엄 마당에 손씻기가 뭐, 국운이라도 결정해?’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어 속으로 트집만 잡아댔던 기억이 씁쓸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소신과 다른 말이 무심코 튀어나온 건, 내심 그 표현이 공감을 얻으리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손씻기나 체취 관리에 소홀한 것이 민폐와 몰상식을 넘어 부도덕한 일이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은은히 감지하고 있던 사회의 기준이 나도 모르는 새 스며들어 남을 설득하는 데 활용된 것이다. 착각이 아니라는 듯, 해당 구절은 굵은 글자로 인용돼 기사의 소제목을 차지했다.

 

만화 ‘닿으니 향이 나고’는 대단한 후각을 지닌 조향사 쿠조와 츠즈라의 연애를 다룬 작품이다. 이미지 출처 대원씨아이

만화 ‘닿으니 향이 나고’는 대단한 후각을 지닌 조향사 쿠조와 츠즈라의 연애를 다룬 작품이다. 이미지 출처 대원씨아이


불결한 존재의 사정

 

인간의 정치적 입장이란 지극히 개인의 사정에서 출발할 때가 많아서, 위생과 도덕 문제에 관한 나의 입장 역시 어디까지나 나를 변호하려는 맥락에서 빚어졌다. 손은 씻는다. 그러나 더우면 땀을 흘리고 노화와 병들어갈 일만 남은 인간으로서 완벽히 체취를 감추는 것은 도저히 자신이 없다. 안 그래도 팍팍한 세상인데 불결한 존재를 넘어 부도덕한 인간까지 되어야 하나? 지하철을 탈 때마다, 타인과 가까워질 때마다, 수치심과 두려움으로 벌벌 떨면서? ‘닿으니 향이 나고’(시호, 대원씨아이)를 나는 이런 맥락에서 읽었다.

만화 ‘닿으니 향이 나고’는 ‘쿠조'와 ‘츠즈라'의 연애 이야기인데, 이야기의 방점은 쿠조에게 찍혀 있다. 그의 독보적인 능력 때문이다. 쿠조는 대단한 후각을 지닌 조향사다. 제품 개발에 들어간 향료나 지하철 안에서 뒤섞인 사람들의 냄새를 낱낱이 파악하는 것은 물론이고, 질병과 기분까지도 냄새를 통해 알아차린다. 향수 회사 ‘조말론’의 창업자가 후각으로 암세포를 감지했다는 일화를 생각하면 쿠조의 능력도 아주 허무맹랑한 것은 아닌 듯하지만, 냄새만으로 건물 안에 갇힌 츠즈라를 수백 미터 바깥에서부터 찾아온 에피소드는 역시 만화적 과장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 작품의 미덕은 꽤 비현실적일 법한 상황도 섬세한 재현을 통해 현실적으로 와닿게 한다는 점이다. 쿠조가 후각으로 인해 인간관계에 실패해온 모습이 그 재현의 일환이다. 지척에서 그의 후각을 경험한 이들은 대부분 당혹감과 두려움을 느낀다. 체취를 낱낱이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그의 곁에 있으면 그 안에 담긴 행적 전부를 간파당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숨기고 싶던 치부까지도 쿠조가 의도치 않게 알아차릴 때마다 상대는 수치심과 당혹감을, 두려움과 죄책감을 경험한다. 그래서 쿠조는 타인과 가까워지는 일을 체념하고 만다.

쿠조에겐 미안하지만, 후각이 둔한 나로서는 그의 고충보다 주변인들의 난처함에 훨씬 이입이 되었다.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향기는커녕 탈취조차 인생의 숙제로 느껴지는 나로서는, 냄새를 통해 타인 앞에서 벌거벗은 기분이 되는 것이 얼마나 난처하고 괴로운 일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만화 ‘닿으니 향이 나고’는 대단한 후각을 지닌 조향사 쿠조와 츠즈라의 연애를 다룬 작품이다. 이미지 출처 대원씨아이

만화 ‘닿으니 향이 나고’는 대단한 후각을 지닌 조향사 쿠조와 츠즈라의 연애를 다룬 작품이다. 이미지 출처 대원씨아이


쾌적한 사회가 밀어내는 사람들

 

의료 문제를 사회학적 시선에서 다룬 책 ‘쾌적한 사회의 불쾌함’(구마시로 도루, 생각지도, 2026)을 참고한다면, 이런 ‘난처함’이 사회 전체의 숙제라고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사회가 쾌적함에 집착할수록 배제되는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사회가 개량됨에 따라 더럽고 냄새나는 사람, 행색이 수상한 사람은 공공장소에서 밀려나고 건강하고 깨끗한 사람, 귀엽고 믿음직한 사람만이 활보할 수 있게 되었다. 위생과 치안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얻는 이익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청결을 실천하는 능력’이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다는 점이다. 청결의 기준은 후천적으로 설정되는 학습의 영역이기에, 이를 선과 악으로 나눠 누군가를 배제하는 흐름을 재고해보자는 것이다. 이런 흐름 안에선 배제의 대상뿐 아니라 그들을 거부하는 ‘예민한’ 이들 역시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청결과 불결의 감각엔 한도가 없기 때문이다.

후각이 지나치게 발달해 두통을 호소하거나 기절하기도 하고, 여러 이유에서 타인과 거리를 둘 수밖에 없던 쿠조의 모습을 따라 읽자면 구마시로 도루의 지적이 한층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고백하자면 체취에 예민한 사람들이 얄밉다고 생각했다. 후각이 둔한 나로선 맡지도 못하는 냄새까지 눈치 보며 챙겨야 하는 것이 억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민한 후각으로 심신이 고생하는 쿠조의 모습을 보니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둔한 사람은 둔한 사람대로, 예민한 사람은 예민한 사람대로 쉽지 않은 세상이다.

하기야 냄새나 위생은 개인 체질마다 워낙 달리 작용하는 터라 섣불리 참으라 할 수 없는 문제긴 하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소독이 과한 수영장을 이용했다가 코피를 흘릴 만큼 점막이 약해서, 독한 향기를 맡으면 코가 아리는 처지다. 이런 고민 속에서 만화를 읽다보면, 쿠조가 타인과의 관계를 풀어가는 이야기가 마치 붐비는 대중교통 안에서 타인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하는 은유로 읽히는 것도 같다. ‘공공’의 자리를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지하철 1호선 같다’는 농담을 좋아하지 않는다. 냄새나고 낡았다, 혼란스럽다, 위험해 보인다 등 좋은 뜻으로 쓰이는 걸 본 적이 없다. 나 역시 1호선을 타니 어떤 의미인지 이해 못할 것은 없지만, 어쩐지 타인의 삶의 단면을 매도하는 느낌이다. 내게는 1호선의 ‘체취’보다도 그런 식의 조롱이 더 거북하다. ‘공공’이라는 명목하에 개개인의 신체와 취향, 감정과 온갖 사정이 획일적으로 매도되는 것이 싫다.

 

만화 ‘닿으니 향이 나고’는 대단한 후각을 지닌 조향사 쿠조와 츠즈라의 연애를 다룬 작품이다. 이미지 출처 대원씨아이

만화 ‘닿으니 향이 나고’는 대단한 후각을 지닌 조향사 쿠조와 츠즈라의 연애를 다룬 작품이다. 이미지 출처 대원씨아이


공존을 위한 전제 조건

 

‘닿으니 향이 나고’는 쿠조와 츠즈라가 사랑하기에 서로를 견디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버스나 지하철에서 스치는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다. 하지만 당장 올여름에도 우리는 좋든 싫든 같은 칸을 써야 한다. 출퇴근길의 인구밀집도를 생각하면 어지간히 각별한 친구보다도 상당한 신체 접촉을 견뎌야 하고 말이다. 그러니 도덕이든 청결이든 ‘공공’에 관한 논의는, 서로가 지울 수도 지워질 수도 없는 존재임을 성가시더라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최윤주 만화평론가

 

*현실 연애엔 무관심하면서도 로맨스 만화는 가세가 기울 만큼 읽어왔다. 그 경력을 살려 다양한 관점에서 로맨스 만화를 읽어보려 한다. 6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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