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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 시대, 국가장학금 폐지는 악수다

지식에 대한 갈망으로 성장의 문화 일궈낸 ‘문예 공화국’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
등록 2025-12-18 21:50 수정 2025-12-21 14:46
‘성장의 문화’, 조엘 모키어 지음, 에코리브르 펴냄

‘성장의 문화’, 조엘 모키어 지음, 에코리브르 펴냄


매년 세밑이면 세계적인 은행과 신용평가사가 국가별 예상 성장률을 발표한다. 일종의 ‘연례행사’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엔 세간의 관심이 예전만 못하다. 성장률 자체가 크게 떨어진 탓이다. 가령 2025년 아시아개발은행(ADB)이 발표한 2026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1.7%로, 그나마도 기존 1.6%에서 0.1%포인트 올린 것이다. 20세기 고도성장기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 경제의 ‘저성장’을 걱정하던 2000년대와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수치다.

성장 자체가 낯설게 느껴지는 시대여서일까. 2025년 노벨경제학상은 성장과 혁신 연구자들에게 돌아갔다. 특히 수상자 중 한 명인 조엘 모키어는 “기술 진보를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의 전제 조건”을 역사적으로 규명한 연구자다. 모키어가 밝힌 성장의 조건은 다름 아닌 ‘문화’다. 202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경제성장에서 ‘제도’의 역할에 주목한 다론 아제모을루였다는 사실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제도가 성장의 하드웨어라면, 문화는 소프트웨어다.

‘성장의 문화’(에코리브르 펴냄, 2018)는 한국어로 번역된 모키어의 유일한 저작이다. “왜 서구에서만 산업혁명과 경제성장이 가능했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모키어는 문화 때문이라는, 역시 ‘오래된’ 답을 내놓는다. 분업과 효율화를 통해 부의 총량을 늘리는 ‘스미스적 성장’은 제도만으로도 가능하다. 그러나 혁신이라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 부의 성격 자체를 변화시키는 ‘슘페터적 성장’에는 문화가 필수적이다. 애초에 ‘성장의 문화’는 모키어가 2010년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 했던 슘페터 강의에서 출발한 책이다.

모키어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촉진한 문화가 서구에는 있었고, 중국을 비롯한 비서구에는 없었다고 설명한다. 그의 주장은 얼핏 막스 베버의 ‘자본주의 정신’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편견의 반복인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성장의 문화를 길러낸 생태계를 명확히 지목함으로써 서구중심주의자라는 혐의를 피해간다. 바로 근대 초 유럽의 ‘문예 공화국’이다. 이 시기 유럽의 지식인들은 국경을 넘어 자유롭게 편지를 주고받았으며, 새로운 생각을 공유했고, 지식에 대한 공통의 태도를 형성했다.

대단히 흥미로운, 혹은 역설적인 점은 ‘문예 공화국’의 시민들을 추동한 힘이 경제적 이익과 거리가 멀었다는 사실이다. 이들을 움직인 건 지식에 대한 갈망, 그리고 동료들의 인정이었다. ‘문예 공화국’이라는 아이디어 시장의 화폐는 새로운 지식이었고, 대가는 권위와 명예였다. 이론상 ‘문예 공화국’의 문은 모두에게 열려 있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이나 아이작 뉴턴 같은 소수의 ‘문화적 사업가’가 혁신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도 수많은 무명의 지식인이 ‘문예 공화국’의 동등한 시민으로서 지식을 수용하고 전파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성장과 혁신은 곧 생태계의 문제다. 경제학자 조귀동이 ‘전라디언의 굴레’(생각의힘 펴냄, 2021)에서 지적했듯, 호남이 저발전의 늪에 빠진 건 1950년대 ‘원조경제’에서 소외됨으로써 투자-연구-개발의 선순환 구조가 구축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회학자 양승훈이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부키 펴냄, 2024)에서 지목한 동남권 쇠퇴의 원인 역시 연구와 생산의 분리로 인한 산업생태계 붕괴에 있다.

최근 교육부는 등록금을 동결한 대학에만 지급하는 국가장학금Ⅱ 유형을 2027년부터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자칫 산업생태계의 핵심인 지역 사립대를 무너뜨려 ‘문예 공화국’의 뿌리를 뽑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유찬근 대학원생

*유찬근의 역사책 달리기는 달리기가 취미인 대학원생의 역사책 리뷰.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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