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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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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격하게 늘어난 여축 선수 국외 진출…그들은 왜 한국을 떠나나

등록 2025-08-22 09:30 수정 2025-08-27 12:05
정다빈 선수가 2025년 7월24일 인천 영종도 인천공항에서 출국 준비를 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정다빈 선수가 2025년 7월24일 인천 영종도 인천공항에서 출국 준비를 하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무표정한 경기장에서의 모습과 달리 살짝 웃는 모습이 앳돼 보였다. 2025년 7월24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3층 출국장에 도착한 정다빈(20) 선수는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얼굴엔 긴장감과 기대감이 공존했지만 눈빛엔 설렘이 가득했다. 정작 뒤따라오는 가족의 얼굴에선 기쁨과 함께 걱정의 마음도 엿보였다. “고기 듬뿍 먹고 왔어요.” 한국에서의 마지막 식사에 대해 물어보자 정다빈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려대 2학년인 정다빈은 최근 노르웨이 여자축구 1부리그의 스타베크 포트발과 계약했다. 이날은 홀로 노르웨이로 떠나는 날이었다. 국내 여자축구 선수들의 국외 진출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더블유케이(WK)리그를 거치지 않고 대학에서 곧바로 국외로 직행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정다빈은 “국외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은 계속 갖고 있었다”며 “국외에서 뛰면서 더 발전하고 싶은 생각이 제일 크다”고 말했다.

2024년 20살 이하(U20) 대표팀에 소집돼 콜롬비아 월드컵을 경험한 정다빈은 2025년 A대표팀에 데뷔했다. 대표팀에서 뛸 때 외국 선수들과 부딪히며 외국 진출에 대한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한국 여자축구의 무대가 점점 좁아지는 것도 한몫했다. 2025년 동원대 축구부가 해체되면서 전국의 대학 여자축구부는 7개로 줄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그래도 팀이 10개는 넘었거든요. 그것도 되게 적다고 생각했는데 대학교 때 더 적어지니까 안타까웠어요. 늘 하던 팀과 경기하고, 팀마다 실력 차이가 많이 나는 것도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2025년 들어 (새로운 선수들과 붙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정다빈은 2024년까지만 해도 WK리그가 목표였다. 그런데 U20 월드컵 등 국제 무대를 경험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한번 경험해보니 (국외 무대에서 축구를) 해보고도 싶고, 충분히 잘해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정다빈이 노르웨이 1부리그를 선택한 것은 당장 뛸 수 있는 팀을 가고 싶어서다. 2025년 시즌 목표를 묻자 손가락 5개를 들어 보였다. “시즌 중간에 투입되지만 그래도 다섯 골은 목표로 하겠다”고 했다. 노르웨이를 시작으로 영국이나 독일 등 더 큰 무대로 가는 것이 다음 목표다.

 

국외 진출 선수 최소 40명… 2024년부터 급격히 늘어

2005년 한국 축구계에 역사적인 일이 있었다. 여자축구 선수가 처음 국외 축구팀에 입단한다는 소식이 알려진 것이다. 주인공은 당시 열아홉 살이던 이진화다. 당시는 WK리그가 출범하기도 전이었는데, 국제대회에서 이진화를 눈여겨본 일본의 아이낙 고베 레오네사 구단에서 계약을 제안했다. 이진화는 2006년 입단했다. 이진화를 시작으로 2009년 박희영과 차연희의 최초 유럽(독일) 리그 진출, 2014년 지소연의 최초 영국 리그 진출 등 ‘최초’의 역사가 이어졌다. 2010년대 들어선 매년 한두명씩 국외로 진출했다. 일본이 가장 많았고 간혹 미국이나 유럽 등의 진출 소식도 알려졌다.

한겨레21이 지난 20년 동안 언론 보도와 이결스포츠에이전시의 집계 등을 종합해 국외로 진출한 국내 선수들을 집계해봤더니, 이진화가 최초로 외국 리그에 진출한 2005년 이후 2025년 8월까지 20년 동안 최소 40명의 선수가 국외 진출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거나 에이전트 없이 계약한 선수들까지 더하면 인원은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여자축구 선수 국외 진출 현황

여자축구 선수 국외 진출 현황


20년 동안 진행된 국외 진출 사례를 보면, 흥미로운 점이 두 가지 발견된다. 하나는 국외 진출의 절반 이상이 최근 2년 사이에 몰려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출하는 국가가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2010년대까지만 해도 주로 일본과 미국, 일부 유럽 진출이 전부였지만 2020년대 들어서는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 캐나다, 중국, 노르웨이, 말레이시아 등 진출하는 국가의 폭이 넓어졌다.

오스트레일리아 2부리그 수비아코AFC에서 뛰던 김소이 선수는 2025년 7월 세르비아 1부리그 ZFK 스파르타크로 이적했다. 이결스포츠에이전시 제공

오스트레일리아 2부리그 수비아코AFC에서 뛰던 김소이 선수는 2025년 7월 세르비아 1부리그 ZFK 스파르타크로 이적했다. 이결스포츠에이전시 제공


“지소연이나 최유리, 이금민 등은 한창 선수로서 잘하고 있을 때 나간 케이스죠. 2010년대엔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요즘엔 실력으로 정말 잘하는 게 아니더라도 더 많은 경험과 도전을 하고 싶어 나가는 선수가 많아졌습니다. 캐나다 등지에서 프로리그를 새로 시작한 영향도 있고요.” 김성희 이결스포츠에이전시 공동대표가 말했다. WK리그를 경험한 선수 출신인 김 대표는 은퇴하고 여자축구 선수 이적을 전문으로 하는 에이전트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날 출국한 정다빈도 이결스포츠에이전시를 통해 노르웨이로 나가게 됐다.

정다빈의 출국길에 만난 김 대표는 선수들의 국외 진출이 최근 많이 늘었다고 해서 절대 쉬운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실패하고 돌아오는 선수가 정말 많아요. 한 시즌도 못 버티고 온 선수가 수두룩하거든요. 2개월도 못 채우고 향수병 나서 돌아온 선수도 있고요. 한국의 구단은 자는 것부터 먹는 것, 입는 것까지 다 해주잖아요. 국외는 셀프로 다 해야 해요. 그렇다고 연봉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요. 이런 것을 다 감당할 수 있는 선수가 많지 않아요.”

 

도전, 도전, 도전

실제 국외 진출 뒤 두 시즌 이상 뛴 선수는 손에 꼽는다. 일본 고베에서 2014년 첼시FC위민으로 이적해 영국에서만 꼬박 8년을 뛴 지소연이나 2018년 노르웨이 리그를 시작으로 유럽에 입성한 뒤 2025년까지 웨스트햄유나이티드WFC와 토트넘FC위민 등을 거친 조소현, 2019년 맨체스터시티WFC로 이적한 뒤 현재까지 계속 영국에서 뛰고 있는 이금민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이민아처럼 국외로 나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뒤 도전을 위해 다시 나간 선수도 있다.

고액 연봉을 받고 가는 경우도 드물다. 대부분은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축소해서 간다. 김 대표는 “외국은 수당 개념도 없고 세금도 많이 내야 해서 오히려 실수령액이 한국보다 더 적은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최근 국외로 나가는 선수들의 목적이 ‘도전’에 방점이 찍히는 이유다. 대표적인 선수가 전체 1순위로 지목돼 WK리그에 입성한 뒤 10년 동안 선수 생활을 하다가 2025년 초 오스트레일리아 2부리그로 이적한 김소이 선수다.

김소이는 WK리그에서 가장 좋은 대우를 받는 축에 속했다. 그가 이적한 팀은 오스트레일리아 2부리그에 속한 수비아코AFC다. 김소이는 이전에 받던 연봉에 견주면 턱없이 적은 조건으로 계약했다. 심지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풋살팀 코치로도 일했다. 안락한 한국에서의 생활을 포기하고 악조건의 국외로 나간 이유는 단 하나다. 어려서부터 꿈꿨던, 불가능해 보였던 국외 진출이라는 도전을 위해서였다.

“어렸을 때부터 국외 진출이 꿈이었어요. 처음엔 정말 불가능해 보였거든요. 그런데 막상 알아보니 정말 잘하는 선수가 아니어도 갈 수 있는 곳이 많더라고요. 문제는 많이 내려놔야 한다는 거였어요. 저도 솔직히 고민 많이 했죠. 여기서 생활하면서 들어가는 돈도 있으니까 돈을 벌어야 하거든요. 한국에서는 운동에만 전념하면 되는데 여기선 실력도 보여줘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하고 영어도 배워야 하니까. 그래도 한번 부딪쳐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단 도전해본 거죠.” 2025년 3월17일 화상으로 만난 김소이가 말했다. 그는 최근 세르비아 1부리그로 이적했다.

김소이가 국내 리그에서 시작해 국외 리그로 이적한 경우라면, 일본 여자축구 프로리그인 위(WE)리그의 알비렉스 니가타 레이디스에서 뛰고 있는 남승은 선수는 고교 졸업과 함께 국외 리그에 도전한 사례다. 2024년 고등학교 3학년이던 그는 2025년 초 졸업과 함께 알비렉스와 계약하고 일본으로 넘어갔다. 현재 주전으로 경기에 나가진 못하지만 일본 생활은 만족한다고 했다.

아시아축구연맹(AFC) U20 아시안컵 예선전에 나가기 위해 잠시 한국에 들어온 남승은은 2025년 7월31일 한겨레21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 가서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해요. 코칭이 매우 실용적이에요. 잘한 건 잘했다고 해주고, 부족한 것도 바로 말해주거든요. 전술 훈련이 정말 많고 세밀하게 진행하는 것도 좋아요. 클럽하우스 같은 여건도 좋고요.” 기숙사를 제공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직접 집을 구해야 하지만 크게 개의치 않아 했다.

 

WK리그로서는 위기

선수들이 어렸을 때부터 국외로 나가 도전하고 발전하는 것은 선수 자신에게도, 크게 보면 한국 여자축구에도 도움되는 일이다. 그러나 국내 여자축구 최상위 리그인 WK리그로서는 좋지만은 않은 소식이다.

고문희 대덕대 여자축구부 감독은 “선수들의 국외 진출은 여러 의미가 있지만 무조건 더 나가는 게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드래프트에서 지명돼 WK리그로 가더라도, 경기를 뛸 수 있는 선수는 한정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고 감독의 말대로 WK리그에 정체 현상(46쪽 기사 참조)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WK리그에 가서 못 뛰는 것보다 국외로 나가서 부딪치고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나갔다 오면 견문도 넓어지고 지금보다 선수들이 목소리를 더 낼 수 있는 상황도 만들어질 거고요.”

남승은(왼쪽) 선수가 2024년 3월6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U20 여자 아시안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 대만 선수를 제치고 공을 몰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남승은(왼쪽) 선수가 2024년 3월6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U20 여자 아시안컵 조별리그 2차전에서 대만 선수를 제치고 공을 몰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반면 박길영 수원FC위민 감독은 “선수들이 국외로 진출하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그만큼 국내 (WK리그) 질은 떨어질 것”이라며 “좋은 선수들의 드래프트 참여가 줄어들면 몇 년 안에 리그 경기가 훨씬 더 재미없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WK리그 감독들이 위기감을 느껴야 하는 상황”이라고 냉정하게 진단했다. WK리그 선수 출신인 권예은 해설위원은 “현실적으로 자국 리그에서의 경험만으로는 월드컵 등 국제대회 경쟁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국외에서의 경험을 통해 개인 능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대표팀 수준을 높여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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