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폰15 프로맥스 20개를 연결해 180도 각도로 감염자의 움직임을 촬영하는 영화 ‘28년 후’ 제작 장면. 소니픽처스코리아 제공
2025년 6월19일, 좀비 아포칼립스(인류 멸망) 영화 ‘28일 후’ 프랜차이즈의 세 번째 작품 ‘28년 후’가 개봉했다. 감염자를 수십 초 만에 흉포한 좀비로 변모시키는 바이러스는 1만228일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강력하게 진화했다. 진화한 좀비들은 단순히 소리를 지르며 비감염자를 쫓아오는 것이 아니라 기습하거나 체계적으로 사냥한다. 말도 하고 다른 좀비를 지휘할 정도의 지능을 가진 이른바 ‘알파 좀비’도 등장했다. 바닥 아래에는 지하실이 있다고 했던가? 이미 망한 줄 알았던 세계가 한 번 더 대차게 망했다. 코로나19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좀비 아포칼립스가 판타지라는 걸 알면서도 슬쩍 걱정하게 된다. 정말로 좀비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을까? 혹시 모르니 통조림과 라면을 쟁여두고 살아야 할까?
논의를 위해 먼저 좀비를 좀 더 정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좀비란 말을 최초로 제목에 사용한 작품 ‘화이트 좀비’(1932)에서 좀비는 부두술에 조종당하는 시체였다. 현대 좀비 영화의 효시인 ‘살아 있는 시체들의 밤’(1968)에서도 좀비는 방사능에 의해 힘을 얻어 인간을 잡아먹으려 드는 시체였다. 시체 좀비는 시체답게 느리고 둔하게 움직였다. 느릿한 좀비는 그 무지막지한 수와 맹목적인 공격성, 기이한 움직임으로 관객의 공포심을 자극했다. 21세기에 이르러 좀비는 모종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이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감염자 좀비는 마구 뛰어다니며 더 다이내믹한 공포의 존재로 거듭났다. 그러니 좀비의 현실성을 논하려면 움직이는 시체라는 특성과 감염병이라는 특성 양면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좀비의 움직임은 마법적이라기보다는 실제 인간의 운동을 과장해 표현한다. 이는 좀비를 움직이는 힘이 근육에서 연유함을 의미한다. 얼핏 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유념해야 할 점은, 시체가 단순히 기능이 정지된 몸이 아니라 부패하기까지 한 몸이라는 것이다. 좀비가 악취를 풍긴다는 설정은 이를 충실하게 반영한 것인데, 거기에는 자기모순이 내포됐다. 악취는 온몸의 세포가 미생물 등에 의해 분해되면서 발생한다. 다시 말해 좀비의 근육은 마치 썩은 음식물처럼 흐물흐물하게, 비가역적으로 손상된 상태라는 뜻이다. 근육이 힘을 쓰기 위해서는 근섬유가 수축해야 한다. 근섬유 수축은 근육을 구성하는 액틴이란 단백질이 에너지를 사용해 미오신이라는 단백질 사이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섬세한 상호작용의 결과다. 완전히 손상된 근육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어릴 적 과학실에서 했던 개구리 실험을 떠올려보라. 개구리에게 전기를 흘리면 다리가 경련을 일으키는, 지금은 윤리적 문제로 거의 하지 않는 실험 말이다. 실험에 사용된 개구리가 어떤 상태로 제공됐는지도 기억하는가? 아마 살아 있는 개구리 혹은 보존 처리된 개구리가 제공됐을 것이다. 부패한 개구리의 근육은 전기를 흘려도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죽은 지 오래된 시체가 근육의 힘으로 움직이는 건 과학적으로는 불가능한 마법의 영역이다.
그렇다면 막 물려서 시체가 된 ‘싱싱한’ 좀비는 어떨까? 아직 근육세포가 부패하기 전이라면 열심히 사람을 물어 근육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지 않을까? 일반적으로 좀비는 사람만 보면 달려들어 물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은 근육에 영양분을 공급하려는 안간힘이 아니었을까, 하고 해석해보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 역시 비현실적이다. 사람이 죽어 호흡을 멈추면 더는 체내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는다. 산소가 끊기면 액틴과 미오신의 결합을 느슨하게 해주는 아데노신삼인산(ATP·에이티피)이라는 물질을 더는 만들 수 없다. 그 결과 근육은 제멋대로 수축한다. 죽은 지 2시간 뒤부터 턱관절과 목관절이 뻣뻣하게 굳기 시작해 12시간 정도 지나면 온몸이 벽돌처럼 딱딱해져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게 된다. 사후경직이 일어나는 것이다. 사후경직이 완전히 풀리려면 48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좀비 처지에선 48시간 뒤면 이미 늦었다. 사후경직이 풀리는 이유는 낮은 체온으로 근육 내 단백질이 변형되고, 단백질 분해 효소에 의해 근육이 분해되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부패의 과정이 일어나는 것이다. 아무리 싱싱한 좀비라도 단 2시간만 사냥에 실패하면 사후경직으로 몸이 딱딱하게 굳어 예정된 부패를 기다려야 하는 처량한 처지가 된다.
이쯤 되면 좀비가 좀 불쌍하니 이런 가정은 어떨까? 좀비 아포칼립스란 애초에 극단적 상황이니 여러 우연이 겹쳐 모든 좀비가 끊임없는 사냥에 성공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좀비 천하’가 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불가능하다. 바로 좀비의 천적, 파리 때문이다. 파리는 썩은 고기에 알을 낳는다. 그 알에서 나온 유충이 그 유명한 구더기인데, 잘 알려졌다시피 구더기는 썩은 고기를 먹고 산다. 여름철 음식물을 잘못 보관한 경험이 있다면 파리가 얼마나 빨리 번식하는지 잘 알 것이다. 파리는 며칠 내로 좀비의 전신에 알을 까놓을 것이고, 거기서 나온 구더기들은 좀비를 백골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좀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파리 하나 없는 무충 벙커에 꼭꼭 숨어있어야 한다. 적어도 파리가 멸종하기 전까진 좀비 아포칼립스보다는 좀비의 안위를 걱정하는 편이 낫다.
좀비가 시체가 아니라 시체처럼 보일 뿐인 감염병 환자라는 측면도 검토해보자. 되살아난 시체가 아니라 ‘28일 후’ 프랜차이즈의 좀비들처럼 살아 있는 광인인 경우를 말이다. 실제 바이러스는 살아 있는 세포의 디엔에이(DNA)에 감염돼 그 세포의 기관을 이용해 스스로를 복제하고 퍼져나가는 반생물이니, 좀비가 바이러스 감염의 결과로 탄생했다면 감염자(좀비)가 시체일 수는 없다. 설령 그렇다 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좀비가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그들이 살아가기 위한 조건은 평범한 신체를 가진 우리와 동일하다. 인간은 물 없이 3일, 음식 없이는 3주 정도밖에 버틸 수 없다. 그걸로도 모자라 인간만 보면 전력 질주해 피를 토하면서 감염시킨다면 수분 부족이나 영양실조 이전에 탈진으로 사망할 것이다. 열역학 제1법칙도 무시할 수 없다. 좀비의 에너지원이 감염시키기 위해 물어뜯는 다른 인간의 살점이라면, 좀비는 살아남기 위해 새로 좀비가 될 인간의 신체를 상당량 섭취해야만 한다. 새로운 좀비는 태어나자마자 심각한 출혈과 감염으로 죽을 위기에 처할 것이다.
감염 자체의 문제도 있다. 작품에 따라 다르지만 좀비에 물린 사람은 길어야 수십 분, 이르면 수십 초 만에 좀비로 변한다. 그런데 현재 알려진 바이러스 중 그 정도로 빨리 신체를 장악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감기처럼 적어도 2~3일은 필요하다. 만약 물렸다고 하더라도 증상을 보고 격리 치료를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모든 생명은 기적이라고 했던가. 이 정도 악조건을 뚫고 탄생한 좀비를 만약 목격한다면 도망치기보다는 힘내라고 응원의 한마디라도 건네보는 게 어떨까. 인간의 치악력(씹는 힘)은 대개 30kgf 정도인데, 면 티셔츠 한 장을 찢기 위해선 40kgf 이상의 힘이 필요하다. 옷깃만 잘 여며도 물어뜯길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서윤빈 소설가
*세상 모든 콘텐츠에서 과학을 추출해보는 시간. 공대 출신 SF 소설가가 건네는 짧고 굵은 과학잡학.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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