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장판 주술회전: 시부야사변×사멸회유’에서 주인공 이타도리 유지가 주술을 펼치기 전 수인을 맺고 있다. 네이버 영화 포토 갈무리
2026년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돼 전세계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기쁜 소식이 도착했다. 바로 ‘주술회전’ 시즌3이 공개된 것이다. 숨 가쁜 전투가 이어지는 와중에, 시청자가 가장 기대하는 것은 강력한 주술사가 특유의 수인을 맺으며 이렇게 읊조리는 순간일 것이다. “영역 전개.” 현실이 사라지고 주술사의 내면세계가 투영된 이질적인 공간이 펼쳐진다. 칠흑 같은 어둠이 깔리거나 기괴한 뼈의 산이 솟아오르는 식이다. 자신의 ‘영역’ 안에서 주술사는 무적에 가까운 권능을 얻는다. 말 그대로 필살기인 셈. 이렇게만 들으면 순 판타지 같지만, 의외로 영역 전개에는 제법 과학적인 구석이 있다. 영역은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계’(System)로 설명될 수 있다.
계를 설정하는 것은 세상을 내가 보고 싶은 것과 그 외 나머지로 분리하는 일이다. 가상의 경계선을 긋는 일인데, 계는 실체가 없다 해도 물리학적 분석의 기본이자 핵심이 된다. 분석 주체는 적절한 계 설정을 통해 우주의 삼라만상을 단순화해 관심 있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냉장고와 방 온도에 관한 분석을 수행하려는 상황이다. 합리적인 방법은 냉장고를 하나의 계로 설정해 냉장고와 방 사이에 일어나는 에너지 교환을 따져보는 것이다. 만약 냉장고를 하나의 계로 설정하지 않으면 연구자는 냉장고 안에 있는 음식을 하나하나 고려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계는 외부와 물질이나 에너지를 얼마나 주고받느냐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뉜다. 닫힌 방처럼 물질은 통과하지 못하지만 에너지는 통과할 수 있는 계를 ‘닫힌계’라고 부른다. 뚜껑 없는 냄비처럼 물질과 에너지가 모두 오가는 경우 이를 ‘열린계’라고 부른다. 그리고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경우를 ‘고립계’라고 부른다. ‘주술회전’의 영역 전개는 이 중 가장 극단적인 형태인 고립계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만화 연출에 따르면 영역에는 다음과 같은 효과가 있다. 영역의 안과 밖은 서로 보이지 않는다. 영역은 외부로부터의 공격과 간섭에서 자유롭다. 이는 영역이 에너지와 물질을 완전히 차단한다는 의미와 같다.
주술사가 현실에 임의로 고립계를 만들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라고 한다면, 영역 전개의 꽃이라 불리는 ‘필중 효과’(주술이 반드시 명중하는 것)에서도 나름의 근거를 찾아볼 수 있겠다. 왜냐하면 이 세계에 고립계는 우주 그 자체밖에 없기 때문이다. 어떤 보온병을 쓰더라도 물은 언젠가 식기 마련이고, 물질은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므로 한 주술사가 영역 전개를 할 때 실제 일어나는 일은 주술사가 상대를 데리고 자신만의 다른 우주로 이동하는 것이다. 현실 세계와는 다른 자신만의 우주가 있고, 그 우주가 주술사의 힘으로 만들어졌다면, 주술사의 힘이 곧 해당 우주의 물리 상수일 것이다. 다시 말해 지구가 공기로 가득 찬 것처럼 영역은 주술사의 힘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 화살을 쏜다고 상상해보자. 그 화살이 상대방을 맞힐지는 공기저항이나 중력, 상대의 움직임까지 수많은 변수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영역 안에서는 화살을 쏠 필요조차 없다. 영역은 화살로 가득 차 있고, 주술사는 그 화살들이 얼마나 빨리 날아가도록 할지 정하기만 하면 된다.
이런 논의의 연장선에서 영역 전개에 관한 또 한 가지 기묘한 설정 역시 해명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에 따르면 두 주술사가 전투를 벌일 때 영역을 전개할 수 있는 건 한 사람뿐이다. 만약 두 주술사가 함께 영역을 전개한다면, 약한 주술사의 영역은 파괴된다. 영역을 에너지장(에너지가 펼쳐진 영역)의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이는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이다. 왜냐하면 에너지는 얼마든지 중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노이즈 캔슬링’ 기술이다. 소리는 다른 소리를 만나면 중첩된다. 그에 따라 소리는 더 커지거나 작아진다. 노이즈 캔슬링 기술은 바깥의 소음을 분석해 그에 정확히 반대되는 소리를 내보냄으로써 소음을 없애버린다. 따라서 영역 전개가 에너지장의 개념이라면 두 주술사가 함께 영역을 전개했을 때 두 영역은 어떤 지점은 강화되고 어떤 지점은 약해지는 방식으로 뒤섞이는 것이 옳다. 하지만 앞서 논의한 대로 영역 전개는 상대방을 데리고 자신만의 우주로 공간 이동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부자연스러움 역시 부드럽게 해소된다. 영역 전개가 한 사람만 가능한 것은 누구의 힘이 더 강하냐에 따라 도착하는 우주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역에는 도대체 어떻게 가는 것일까? 완전한 고립계라는 점에서 영역은 우주 바깥에 있는 무의 공간에 있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영역은 현실에서 적어도 우주의 크기만큼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는데, 만화를 보면 영역 밖에서 영역 안으로 침입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이는 영역 자체는 다른 우주일지라도 영역을 구성하는 경계는 현실 세계에 속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경계가 현실 세계와 맞닿아 있다면 마치 보온병 안에 든 물이 점점 미지근해지듯이 완전한 고립계가 될 수 없다. 이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가능한 한 가지 설명은 주술사가 일종의 웜홀을 통해 영역에 도달하는 것이라는 가정이다. 우주는 4차원으로 된 일종의 캔버스 천이다. 우리가 사는 시공간은 그 천 위의 한 점이다. 천은 빳빳하게 펴져 있지 않고 얼마든지 구부러지거나 눌릴 수 있는데(이 글에서 설명하진 않겠지만 천이 눌려서 만들어진 굴곡이 곧 중력의 정체다), 웜홀은 이러한 우주의 캔버스 천에 난 구멍이다. 구멍을 통해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이동하면 천의 표면을 따라 이동하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 속도로 우주를 여행할 수 있다. 옷감을 접어 바느질하는 것을 상상하면 쉽다. 옷감 표면을 따라서는 멀리 떨어진 두 점을 바늘은 단숨에 이어버릴 수 있지 않은가? 기본적으로 웜홀 개념은 천 위의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고속 이동하는 것이지만, ‘주술회전’의 영역 전개는 천을 뚫고 나가버리는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다. 천 바깥은 우주가 아니므로 영역은 그곳에 있는 것이다. 나아가 천을 뚫으면서 생긴 작은 구멍이 영역의 경계라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겠다. 구멍과 영역 사이에는 무가 자리하므로 영역은 고립계가 된다. 그러나 웜홀이 있으므로, 만약 침입자에게 웜홀을 통과할 만한 충분한 힘이 있다면 다른 이의 영역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우주를 탈출하고 자기만의 우주에 도달하고 싶을 정도의 외로움이 주술사가 가진 힘의 원천이라면, 주술은 곧 저주와 일맥상통한다는 ‘주술회전’의 세계관도 마냥 비틀려 있는 것만은 아니겠다. 하지만 평범한 우리는 결코 고립계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니 닫힌계의 미지근한 외로움에 잠식되기보다는 방문을 열고 세상과의 불가피한 연결을 좀더 누려보는 것은 어떨까?
서윤빈 소설가
*세상 모든 콘텐츠에서 과학을 추출해보는 시간. 공대 출신 SF 소설가가 건네는 짧고 굵은 과학잡학.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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