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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시즌2, 미식이 ‘단짠’을 넘어서는 이유

넷플릭스 예능에 숨은 신경과학… 뇌를 흥분시키는 맛과 설계를 구현하는 지적 유희의 결합
등록 2025-12-25 21:04 수정 2026-01-01 07:51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가 공개됐다. 첫 회부터 긴장감 넘치는 대결이 이어지는 가운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쇼의 진정한 주인공은 요리사의 화려한 기술이나 냄비 속 식재료가 아니었다. 시청자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심사위원을 맡은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안성재 셰프의 입술이었다. “고기가 이븐(even·골고루)하게 익지 않았어요”로 대표되는 안성재의 날카로운 지적과 “오직 맛으로만 평가하겠다”는 백종원의 감탄. 때로는 같고 때로는 갈라지는 두 평가 사이에는 어떤 과학적 차이가 존재할까? 두 심사위원의 심사평 속에 숨겨진 신경과학의 지도를 따라가보자.

맛은 그저 혀의 일일까

우리는 흔히 맛을 혀의 일이라고만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 미식은 지극히 신경학적인 사건이다. 혀가 느끼는 단맛, 짠맛, 신맛, 쓴맛, 감칠맛은 맛의 기본 데이터에 불과하다. 이 데이터가 코로 들어온 냄새 분자와 결합하고, 치아와 턱 근육이 전달하는 질감 정보와 섞인 뒤, 최종적으로 뇌의 미각 피질에서 통합될 때 우리는 비로소 ‘맛’이라는 복합적인 판단을 내린다. 백종원과 안성재는 이 복잡한 연산 장치를 평가하는 서로 다른 방식을 제안한다. 이 둘의 심사평은 단순히 개인의 취향을 넘어 미식의 두 축인 원초적 쾌락과 인지적 완결성을 대변한다.

백종원 심사위원이 안대를 쓰고 음식을 먹는다. 그의 반응은 대개 감탄사로 시작하며 즉각적이다. “어우, 이건 맛있지!”라든가 “이게 뭐여… 어억? 오옹?” 같은 식. 실제로 백종원이 강조하는 직관적인 맛은 뇌과학에서 이야기하는 보상체계 시스템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척추동물은 맛으로 음식과 독을 가려낼 수 있도록 진화해왔다. 단맛은 생존에 필수적인 탄수화물의 증거다. 짠맛은 나트륨 이온에서 나오는데, 나트륨 이온은 몸의 수분 균형을 유지하고 대사를 촉진하는 데 쓰인다. 반대로 쓴맛은 독이 들었다는 경고이고 신맛은 음식이 부패했음을 시사한다. 상식과 달리 우리 혀에는 ‘맛 지도’라는 것이 없고 미뢰는 모든 맛을 감지할 수 있으나, 맛의 종류에 따라 수집하는 정보의 양이 다른 것은 여전히 사실이다. 인간은 한두 개의 단맛 감지 센서를 가졌다. 쓴맛을 감지하는 센서는 스무 가지가 넘는다. 우리의 먼 조상에게는 미식보다도 독을 피하는 일이 최우선이었다.

하지만 식(食)은 결코 고행이었던 적이 없다. 인류는 신맛과 쓴맛을 피하고 단맛과 짠맛을 선호하도록 진화했으나, 피해야 하는 맛의 불쾌보다 먹어야 하는 맛의 쾌가 컸다. 특히 우리 뇌는 고열량의 상징인 당과 지방이 내는 단맛에 환장한다. 당과 지방이 입안에 들어오면 뇌는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을 폭발적으로 분비한다. 특정 비율로 배합된 당분과 지방은 약물중독과 비슷한 수준으로 뇌를 흥분시킬 수도 있다. 백종원이 “입에 쫙쫙 붙는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맛의 실체는 바로 이 보상회로를 정교하게 타격한 결과다. 강렬한 감칠맛과 조화로운 단짠(단맛과 짠맛)은 우리를 원초적인 쾌락으로 인도한다.

먹는 순서, 질감, 플레이팅까지 따지는 까닭

한편 안성재는 먹는 순서나 질감, 플레이팅(음식을 그릇에 담은 모양새)까지도 예민하게 따진다. 대표적으로 시즌1에서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식용 꽃을 사용해 플레이팅했다는 이유로 ‘나폴리 맛피아’(권성준 셰프)에게 ‘보류’를 준 사건을 꼽을 수 있겠다. 그런데 음식의 본질은 맛이 아닌가? 맛만 좋으면 됐지 왜 그렇게까지 따지고 들까? 예술로서 미식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신경과학적 관점에서도 이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사실 앞서 이야기한 원초적 쾌락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다. 바로 맛이란 입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각은 소화과정 전체에 분포하는 감각이다. 식도, 위, 소장, 췌장, 심지어 대장에도 미각세포가 있다. 혀가 맛을 통해 무엇을 섭취할지 판단하는 제1선이라면, 장의 미각세포는 그 판단을 보충하고 소화과정을 준비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먹을 때는 괜찮았는데 시간이 지난 뒤 속이 안 좋아졌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게 소화기관의 미각세포가 제 역할을 해서 뒤늦게 독을 감지한 결과다.

당과 지방에서 오는 쾌락은 본능적이고 강력하지만, 그 쾌락의 총량을 경험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흑백요리사’의 심사위원에게는 음식을 천천히 소화하고 포만감까지 느낄 시간이 없다. ‘단짠’은 그런 환경에서 최고의 만족감을 제공하지 못한다. 오히려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인지적 완결성이다.

음식을 입에 넣기 전, 인간의 뇌는 시각 정보와 요리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음식에 대한 사전 기대치를 설정한다. 가령 잣을 이용한 요리라는 소개를 들으면 뇌는 과거의 식사 경험을 바탕으로 잣의 맛과 향, 식감에 관한 표상을 떠올린다. 그런 다음 해당 표상과 실제 음식을 비교하며 먹게 된다. “고기가 이븐하게 익지 않았다”는 안성재의 평을 떠올려보자. 겉보기에는 잘 구워진 듯한 스테이크에 날것의 물컹한 식감이 남아 있다면, 뇌는 예측 오류를 일으킨다. 아무리 양념이 훌륭해도 이는 요리의 완성도를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결함으로 인지된다.

안성재의 심사에서 강조되는 요리사의 의도는 말하자면 일종의 지적 유희다. 요리사가 설계한 맛의 의도가 물리적 구현을 통해 한 치의 오차 없이 전달될 때, 그는 비로소 완벽하다고 평한다. 물론 때로는 기대를 멋지게 배신하는 좋은 요리도 있으며 많은 요리사가 이를 추구한다. 그러나 멋진 배신이란 어디까지나 심사위원이 떠올린 표상과 관련해서만 일어난다. 요리사들이 요리 정보를 숨긴 다음 알아맞혀보라는 식의 반전을 추구하지 않고 미리 요리 이름과 재료, 요리 방식을 알려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두 마리 토끼 잡는 프로그램

인류는 생존을 위해 본능적인 단맛과 지방에 열광하도록 진화했다. 그러나 동시에 무질서한 자연 속에서 패턴과 질서를 찾아내며 지적 유희를 느끼는 종이기도 하다. 우리가 ‘흑백요리사’에 열광하는 이유는 어쩌면 우리 마음속에 그러한 두 특성이 공존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본능을 만족시키는 풍미 위에 요리사의 정교한 논리가 켜켜이 쌓일 때, 우리 뇌는 원초적 욕구와 지적 갈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다.

 

서윤빈 소설가

 

*세상 모든 콘텐츠에서 과학을 추출해보는 시간. 공대 출신 SF 소설가가 건네는 짧고 굵은 과학잡학.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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