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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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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에서 만난 콜라비

등록 2023-01-23 18:00 수정 2023-01-23 23:41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일러스트레이션 슬로우어스

2022년 연말 전남 신안군에서 진행하는 ‘그림책 아일랜드’ 작가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일주일간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작가 레지던시는 작가에게 공간을 제공하고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목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나처럼 도시에서만 살던 사람에게는 섬에서 일주일이나 생활해보는 경험은 더없이 고마운 일이었다. 차가 없는 나는 안좌도 숙소 주변을 하염없이 걸어다니며 섬의 풍광을 구경했다.

맨손어업 면허 받은 아이들

눈이 온 추운 날씨였는데도 신안의 들판은 푸릇푸릇하기만 했다. 마늘도 대파도 콜라비도 잘 자라고 있었다. 특히 너른 대파밭은 어찌나 늠름해 보이던지 대파가 모두 열병식을 하는 그림책 속 병사들 같았다. 기차 타고 지나가며 친구들과 거인의 마시멜로가 왜 들판에 떨어져 있는가 하며 농담하던 흰 비닐 껍질을 덮어쓴 볏짚 뭉치(곤포 사일리지)는 가까이 가보니 생각보다 더 컸다. 그 볏짚들은 퇴비가 되는 줄 알았더니 소의 식량이 된다고 했다. 한 덩어리가 500㎏이나 하는데 소 한 마리가 1년에 그 볏짚 덩이를 8~9개 먹는다고 한다.

작가 레지던시에 참여한 여섯 작가는 마을학교 어린이와 가족들에게 하루씩 예술특강을 하고 같이 저녁도 먹는 시간이 있었다. 젊은 엄마들은 자녀를 많이 낳지 않는다고 알았는데 안좌도에는 자녀가 셋 혹은 넷인 집이 많았다. 학원이나 예체능센터가 없는 지역이다보니 엄마들이 마을학교를 만들어 번갈아 수업을 맡으며 자녀들에게 여러 체험교육을 했다. 무언가 새로운 걸 가르치려면 한 엄마가 목포까지 나가 배워와서 가르치는 방식이었다. 요즘 젊은 엄마들은 내 자식만 챙긴다는 말은 진실이 아니었다.

신안 압해도 어린이들과 이미 여러 번 그림책 수업을 했던 오치근 작가는 더 멋진 이야기를 해줬다. “신안 갯벌에서 낙지를 잡으려면 맨손어업 면허가 있어야 하는데 어린이 48명이 면허를 받아서 낙지를 잡았어요. 그걸 수협에 팔아서 어떤 친구는 100만원 넘는 돈을 저축했더라고요.” 그 어린이들은 그 체험을 바탕으로 그림책을 만들었다. 섬에서 자라는 어린이들은 자연체험은 풍부하겠지만 문화체험은 부족하리라는 내 예상도 틀렸다.

한 작가는 신안에 오면 바닷가에 모래가 많을 줄 알고 어린이들이 모래를 퍼와서 같이 하는 활동을 예상했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신안에는 모래해수욕장은 거의 없고 펄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작가가 가져온 모래로 어린이들과 활동했다. 단지 일주일을 있었지만 내가 가진 많은 생각을 수정하는 기회가 됐다. 지레짐작으로, 혹은 소문만으로 어렴풋이 알던 많은 것을 제대로 알게 돼 다행이었다. 현장에서 보고 듣고 배우는 게 진짜구나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세척한 줄 알았던 콜라비가

이번에 새로 배운 것 중 가장 놀라운 것을 고백하자면 콜라비의 정체였다. 나는 그동안 콜라비를 많이 먹었지만 늘 콜라비가 순무같이 땅속에서 자라는 뿌리채소라고 믿었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콜라비 몸통이 깨끗한 것은 세척해 판매하는 거라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신안에서 자라는 콜라비를 보니 다 땅 위에 올라와 있었다. 이럴 수가. 서울 사는 친구들에게 너 콜라비가 어디서 자라는지 아니 하고 물어보니 여럿이 나처럼 땅속에서 자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연체험이 부족한 이 백성들을 용서하소서. 배우고 또 배운다.

임정진 동화작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비행기에서 쓴 비밀 쪽지> 등 많은 어린이·청소년 책을 쓴 임정진 동화작가가 이번호부터 새로운 필자로 합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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